151.7cm의 미니멀한 엄마는 4kg에 육박하는 우량아를 낳았고, 그 우량아는 한 가족의 첫 딸이자 첫 조카이자 첫 손녀가 되었다. 내 일거수일투족은 할머니의 칭찬 포인트였다. 웃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길을 걸어갈 때도 기특한 내 새끼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 무조건적인 사랑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과 글을 좋아했던 나는 특히 할머니와 함께 잠드는 날이면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다가 지쳐 잠들 정도였다. 그리고 할머니의 무서운 이야기는 늘 한결같았다.
"옛날 옛날에 감자 새끼가 지 엄마를 팔아먹고 도망갔대요~"
그게 뭐냐고 하나도 안 무섭고 재미도 없다고 더 길게 해달라고 떼를 쓰면 "예에에엣날예에에에엣날에 그아아아암자스애애애애끼그아아아 즈이이 엄므아아아를~"이라며 나를 놀렸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셨기 때문에 나는 꽤 자주 할머니 댁에 맡겨졌고, 덕분에 할머니와의 추억이 제법 많다.
음식 먹은 것이 왜 오늘의 착한 일인지 설명을 좀 부탁해도 될까?
나는 할머니에게 궁금한 것이 참 많았고, 할머니는 모든 질문에 충실하게 거짓 진술을 했다. 반쯤 잘리고 휘어진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가리키며 왜 그러냐고 물었을 때에는 멍멍이가 왕! 하고 물어갔다고 했고, 어떻게 자식을 넷이나 낳았냐는 말에는 누가 집 앞에 놓고 간 거라고 했으며, 할아버지와 어떻게 만났냐는 질문에는 그냥 눈 떠보니 결혼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안다. 할머니의 손가락은 고작 스무 살 남짓한 어린 나이에 서툰 작두질로 인해 잘려나간 것이고 사실 그녀는 다섯 남매의 엄마였으며 할아버지와는 결혼식 당일에야 얼굴을 보고 펑펑 울었다는 것을.
"할머니 근데 왜 울었어? 결혼하기 싫어서?"
"아니 너무 작고 못생겨서."
빈말 못하는 피는 정말 절대 어디 안 가는 모양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작은 남자와 연을 맺게 된 할머니에게 무한한 애틋함과 동질감이 들어 괜스레 작음이*를 쳐다보았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얼굴은 잘생김)
할머니에게 서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사가 걱정인 할머니가가족들 중 유일하게 신경쓰지 않는 존재가 나인 것같다는 생각이 들던 때가 있었다. 워낙 남에게 의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손에 쥔 것은 놓지 않는 성격이기에 혼자 힘으로 똑부러지게 살아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내 앞에서 다른 식구들 걱정만 하는 할머니를 볼 때면 괜스레 섭섭해졌다. 그리고 그 알량한 마음은, 어느 날 문득 내 손을 잡고 스치듯 건넨 할머니의 한 마디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마워. 내가 우리 큰 손녀 덕분에 잠을 좀 더 자. 이 걱정 저 걱정하다 보면 잠이 오다가도 달아나는데 우리 큰 애기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서 잠이 잘 와."
아직도 할머니 앞에서는 준비한 투정을 늘어놓기 바쁜 철부지 손녀딸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좋다고 하셨던 걸까. 만나면 앉기도 전에 엄마 좀 혼내 달라며 자신의 딸을 일러바치는 손녀인데 우리 애기 밥은 먹었냐는 말을 먼저 건네신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오랜 사랑이다.
이건 비밀인데 내가 할머니의 기분 좋은 수면제인 것처럼 할머니 역시 나를 웃게 하는 영험한 부적이다.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녹음해 둔 전화 목소리를 들으며충전을 하고(대충 달도 안 떴는데 그게 무슨 야근이냐는 말로 시작했으나 어떤 놈이 우리 애기한테 자꾸 일을 시키냐로 마무리되는 내용) 할머니의 손글씨를 휴대폰 케이스에 담아 매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 동순씨와 나의 사랑이 서로를 향해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