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타 Nov 01. 2022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 속 연기자다

어제는 착한 딸, 오늘은 보고를 앞둔 회사원, 내일은 주정뱅이

사람에게는 누구나 강점이자 약점이 되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태도가 어제는 사려 깊은 사람으로 비쳤지만 오늘은 실속도 못 차리는 호구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작음이*에게 너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잘 관리한 중년이 되고 싶다며 1일 1팩 중)


내가 보기에도 작음이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흔히 말하는 댕댕이 성향을 보유하고 있어 대체로 많은 사람들과 유연하게 지내며 사람들 속에 뛰어드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이렇게 남을 좋아하고 믿는 만큼 상대가 본인을 동등하게 대해주지 않으면 흔히 말하는 발작 버튼이 눌린다. 그 정도로 응할 건 아니지 않나 싶은데도 화르르 타올랐다가 또 금세 풀려 꼬리를 흔드는 게 작음이다.


생각난 김에 마침 카톡을 하고 있던 이현정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니 '어른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예의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특히, 업무적인 관계로 얽힌 어른에게 이러한 태도가 극대화되다 보니 스스로 을의 입장을 자처하게 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현정이는 많이 배운 만큼 예의가 바른 편이다. 처음 본 어른들께도 전국 팔도 공연을 섭렵한 행사 전문 가수처럼 말을 걸고 다가가는 나를 보며, 경기를 일으킴과 동시에 부러움을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아킬레스건은 스스로 깨닫게 된 경우도 있겠지만 남들에 의해 씌워진 프레임이 살아오면서 더욱 단단해진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는 이런 장점이 있어.", "저 친구는 저걸 참 잘해."라는 말을 듣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당 역량을 본인의 강점으로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고, 원하지 않는 형태의 반대급부도 함께 얻어간다.

 


표창장으로 본인의 착함을 인정받은 작음이는 착함을 연기하다 실제로 착한 사람이 되었다


작음이가 착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주변의 인정이 큰 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작음이 사람들로부터 착하다는 인정을 받았고, 그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을 것이다.


내 아킬레스건은 '겉과 속이 같다'는 거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라 숨김이 없고 솔직하지만 약삭빠르게 계산을 하는 편은 아니다. 이전 글에서 손에 쥔 것은 절대 놓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는데, 내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쓰면서도 웃기지만 그게 나이기에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내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포커페이스에 탁월하고, 뒤에서는 욕을 할지라도 앞에서는 모두와 잘 지내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머리를 써야 하는 관계를 원하지 않고, 그런 류의 사람과 가까워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회사생활이나 조직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롱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한 업무 성과보다는 관계에 능한 경우가 많다. 나는 임원들의 재미없는 아재 개그에 웃는 방법을 모르고, 불쾌한 농담을 가볍게 넘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렇기에 내가 주변에 두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부여된 역할에 충실하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그들을 높게 평가하는 만큼 나 역시 그 사람들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예를 들면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5kg 높은 무게를 들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눈앞에 펼쳐진 육회를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글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44년생 중에 제일 예쁜 우리 동순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