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A라고 해놓고 오늘은 B라고 한다거나,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을 얹는다거나,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여럿이 한 사람을 몰아가는 상황을 본다거나. 마치 발작 버튼을 누르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같은데, 가장 높은 빈도로 반응하는 것이 성역할에 대한 차별적 발언 또는 고정관념에 대한 것이다.
시작은 '기 센 여자'라는 워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에 대해 기가 센 여자라고 표현하는 것도 자주 접했고, 나 역시 종종 타인으로부터 기가 세다는 평가를 받곤 하는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기 센 남자'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었나?'
남자에게는 당당하고 기백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들이 왜 여자에게는 기가 세고 드센 모습으로 표현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세다기보다는 당신이 약한 것은 아닐까요?" 하고 되묻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아줌마'라는 단어도 나의 트리거 중 하나다. 나는 아줌마라는 말에 비하 의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다.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하지 뭐라고 해? 아저씨도 아저씨라고 부르잖아? 그냥 중년 여성을 칭하는 말일 뿐이야."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네 뜻이 그러하니 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면 "어? 아줌마, 안녕하세요."라고 할 것이며, 너의 팀장님도 여성분이시니 "아, 이 아줌마가 그때 네가 말한 팀장님이셔?"라고 해도 상관없지 않냐고 물었고, 그는 구구절절한 변명을 이어갔다.
위와 같은 논쟁은 이미 마르고 닳도록 거론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미 몇 년 전 국립국어원에도 아줌마에 비하의 의도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이 올라왔고, 이에 대한 답변은 아래와 같다.
안녕하십니까?
문의하신 ‘아줌마’와 ‘아저씨’는 <보기 1>의 쓰임에 해당하는데, 사전에서 보이고 있는 대로, ‘아저씨’는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인데 반하여 ‘아줌마’는,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인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입니다. 사전에 실린 정보는 실제 쓰임을 바탕으로 하여 마련된 것이므로, 거꾸로, 사전에 실려 있는 정보로써 실제 쓰임이 어떠한지를 살필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여 사전 내용을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다.
<보기 1>
아줌마
「명사」
「1」‘아주머니「3」’를 낮추어 이르는 말.
¶ 이봐요, 아줌마, 여기 술 한 병 더!≪전상국, 음지의 눈≫/내가 아줌마 대신 식모 노릇 하면 될 거 아냐?≪박완서, 도시의 흉년≫
아저씨
「3」 남남끼리에서 성인 남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 국군 아저씨/이웃집 아저씨/기사 아저씨, 여기서 세워 주세요./우체부 아저씨는 손에 한 움큼 들고 있던 우편물 중에서 편지 한 통을 뽑아 나에게 건네주었다.≪김용성, 도둑 일기≫
어쩌면 예시조차 아줌마는 술을 가져다주거나 식모 노릇을 하는 사람이고, 아저씨는 국군과 우체부인 건지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작음이* 또한 일반적인 대한민국 남성이기에 젠더 감수성이 특출 나게 높지는 않다. 다만 다른 사람에 비해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역량은 확실하게 우수한 덕분에, 무의식 중에 사용하던 차별적 언행을 의식적으로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늦바람 나서 매주 옷 사러 가자고 난리)
보통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문이라도 뻥 찰 텐데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기 잼
제목은 '어머니'인데 내용은 제 때 오지 않은 엄마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고, 1cm가 성장하여 들뜬 이야기(그러나 그게 끝인 줄은 몰랐겠지ㅎ)에서 자신의 겁쟁이 모먼트로 이어지는 묘한 일기를 읽으니, 오던 식곤증도 달아날 판이다.
나와 작음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 옷을 입는 게 당연한 사회였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열려있는 방문에서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하고, 서운한 일들을 털어놓으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작음이에게 고리타분한 남성다움을 강요하다니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다행히 현시점의 (내 기준) 이상적인 남성상은 겁은 많아도 요리와 살림에 능숙하고, 내가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며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기에 작음이는 제법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아마 오늘 내 글을 읽으며 "얘도 페미야?" 하며 비아냥거리실 분들도 있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분들께는 아주 또박또박한 딕션으로 모든 사람은 페미니스트여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변질된 페미니즘이 아닌 진짜 페미니즘의 의미를 확인해달라는 말과 함께.
성별로 인해 생기는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기 위해 불편한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오케이다. 그 옛날, 내 새끼가 왜 남의 집 죽은 귀신을 챙겨야 하냐며 총대를 메고 제사를 없앴던 할머니와 임신이 해고의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엄마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게 나다. 아직 어린 내 동생이, 그리고 내 친구의 딸과 아들이 조금 더 상식적으로 살 수 있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