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酒)간보고>는 술과 함께 풀어내는,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은 비정기 연재 콘텐츠입니다.
술은 인생과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다음 날까지 안 좋은 영향을 준다. 이것이 나의 지론이다. 회사에서도 회식 자리가 생길 기미가 보이면 어떤 핑계를 대야 실뱀처럼 스르륵 빠져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술 보다 커피를 선호한다.
이런 내가 술을 마시는 날은 십중팔구 술과 함께 술술 넘어갈 만한 사연이 기다린다. 오늘은 앉아서 먹을 수 있으면서 서서갈비라는 상호명으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멤버는 나와 사수, 우리 팀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후배, 그리고 나의 첫 팀장님이다. 유난히 맑았던 작년 봄, 팀장님은 과장이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나 또한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왜 우리 팀장님이 과장이 된 걸까. 지금 재직 중인 회사는 내 인생 두 번째 회사다. 팀장님은 날 뽑아주신 분이셨고, 좋게 말해 당차고 쉽게 말해 꼰대들과 맞지 않는 성격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며 절대 나의 색을 잃지 말라고 해주신 분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 팀이 되었고 숨 가쁘게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죽어라 준비한 보고가 죽어라 까이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웃음 포인트와 빡침 포인트가 같았던 우리는 물색없이 웃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임원의 호출을 받고 돌아온 팀장님이 조용히 사수를 불렀다. 대부분의 경우 "아 뭔데! 또 무슨 일을 받았는데요!" 하며 눈을 까뒤집고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드는 나지만, 그날은 그럴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큰일이 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 같다. 팀장님과 이야기를 마친 사수는 나를 불렀다. 새 팀장님이 오실 것 같다고 했다. 오실 것 같은 게 뭐냐고 정확하게 말해달라고 반문하는 나에게 사수는 새 팀장이 뽑혔고 다다음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왜요? 우리가 지금 팀장이 없어요? 팀장이 팀장 역할을 못해요?"
"나도 모르겠다 이게 무슨 일인지. 그렇게 됐대."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역한 기분이 들었다. 팀장님은 적어도 후배들, 팀원들에게는 최고의 팀장이었다. 보고 내용을 자꾸 잊으시는 바람에 어제 했던 말을 오늘 다시 해야 한다거나,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길친데 이 길이 맞냐며 의지하는 것 정도가 그의 단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위에서 그를 예쁘게 보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팀장님은 방패였다. 우리 애들 지금도 일 많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며 마구잡이로 떨어지는 잡무의 절반 이상을 쳐냈고, 불합리한 지시에는 아닌 것 같다는 소신을 밝혔다. 막 나가진 않지만 쉽지 않은 후배였기에 다루기 쉬운 심복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와 잘 맞았던 만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던 팀장님이셨기에, 그날 나는 회사에 대한 모든 기대와 희망을 내려놓았다. 물론 타고난 업무 욕심 때문에 일을 띄엄띄엄하지는 못했지만 철저하게 나 자신과 회사를 분리했다.
팀장님은 과장님이 된 이후 더 멋진 사람이 되었다. 제발 기죽거나 주눅 늘지 않기를 바랐는데 역시나 그는 유쾌하고 호탕했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아이고 우리 팀장과장님~~~"하며 놀렸지만 누군가가 팀장님에 대해 뒷말을 만들려는 조짐을 보이면, 마치 더러운 것을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온몸으로 극혐을 표했다. 까도 내가 깔 거라 지키는 것도 내가 한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새해가 밝았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는 팀장으로 복귀했다. 더 이상 원팀으로 함께 일할 수는 없지만 그의 복귀 소식에 누구보다 기뻤고, 다들 축하의 말을 전하기 바쁠 때 "아 이제 더 이상 과장이라고 못 놀리네. 꿀잼이었는데ㅠㅠㅠ"라고 놀리기 바빴으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앉아서 먹은 서서갈비에서의 회식은 돌아온 그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 현타야 너는 차야.
- 저 차 없는데요.
- 장기 말이야. 차와 포가 있으면 장기는 역전승을 할 수 있는 거야. 쫄들이 없어도 고수라면 다 이긴다. 넌 차니까 잘 버텨. 어떻게 해서든 돌아가는 게 직장이고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답이 나와. 언제나 중도를 지켜. 그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