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화 112, 전화·문자상담 182
살다 보면 같은 행동을 해도 꼭 튀는 사람이 있다. 같이 떠들었는데 혼자만 혼난다거나, 빠진 사람 한둘이 아닌데 콕 집어 이름이 불린다거나 하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게 나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중고등학교 재학 당시만 해도 사랑의 매라고 불리는 체벌이 성행하던 시기였고, 덕분에 나는 맷집이 아주 세졌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특히 2학년, 6학년)은 참 행복했다. 배울 것이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했다. 무력으로 제지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대신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시고 대안을 제시해 주셨다. 그렇게 좋은 가르침을 받고 입학한 중학교, 특히 중 2 담임은 최악이었다. 수틀리면 창문 닦는 물기 제거용 청소 도구로 아이들(이라고 쓰고 나라고 읽는다)을 때렸고, 학부모 상담차 엄마를 불러 놓고 퇴근을 해버린 사람. 그래도 선생님을 뵙는 날이라며 양손에 음료와 간식을 들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엄마를 본 그날, 좀 더 독하고 똑똑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이다.
고등학교 일화를 쓰기 전, 갑자기 선생님 성함이 생각이 나지 않아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니 세상에나 아직 그분들이 다 재직 중이시고 그중 한 분은 무려 교ㅋㅋㅋ장ㅋㅋㅋㅋ선생님잌ㅋㅋㅋㅋ되셨다. 이빨 빠신 호랑이가 되셨기를 바라며, Pray for 후배님들.
교장 선생님이 되신, 얼핏 살 쪽 빠지고 키 큰 이병헌 느낌이 나는 선생님께서는 평소에는 젠틀맨 그 자체셨다. 사회탐구과목 중 하나를 가르치셨는데, 좋아하는 과목이기도 했고 특유의 조근조근+나른한 듯한 말투가 귀에 쏙쏙 들어와 좋아했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의 코털을 건드리는 순간, 문제는 삽시간에 발생한다. 도대체 그 마른 체구에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를 모르겠는데 맞는 애 뼈 부러진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체벌을 가했다. 그리고 무섭도록 차갑게 현장을 마무리했다. 크게 분노하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체벌이 끝나면 교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또 한 분은 평소 유쾌한 말솜씨와 하이텐션을 뽐내는 분이셨다. 그는 그라데이션 분노의 달인이었다. 예를 들면 "맞아 맞아~ 그래서 그랬다니까? (일동 꺄르르) 자 다음 장으로 넘어... 거기 조용~! 다음 장으로 넘어가 보면 이제... 아니 거기... 조용히 하라니까? 내가... 조용히 하라고 할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지금 뭐 내가 웃깁니까? 아니 나와봐. 나와서 얘기를 해봐. 내. 가. 우. 스. 워? 우습냐고!!!!!!!!!!!!!!!!!!!!!!"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삼류 드라마 대본 같은 저 감정선은 100% 팩트에 기반한다.
어쨌든 맞을 때도 조금 요령껏 맞는 것이 필요한데 쓸데없이 굳건했던 나는 곧 죽어도 잘못했다고 말하거나 아픈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맞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주 알차게, 준비된 폭력을 스펀지처럼 쏙쏙 흡수했다.
얼마 전 PD수첩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편을 보며 굉장히 분개했다. 상식 이하의 언행을 일삼는 학부모들을 보면서 무력을 밥 먹듯이 행하던 교사들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학생들이, 잘못 성장하여 똑같이 수준 떨어지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진정성 있게 아이들을 대하고 싶었던 선생님들께로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정말로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 모두가 인정할 만큼 노력해 왔던 친구가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휴직을 거쳐 결국 교단에서 내려오는 모습도 지켜보았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의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비단 학교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가족 간의 가정폭력도 끊이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 캠페인에서나 할 법한 말이지만 '존중'과 '배려'의 자세를 다시금 되새기는 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