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공나 Oct 02. 2023

나는 조현병이다, 그래도 행복하다

나는, 그저, 조현병 환자일 뿐이다

 나는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다. 나이 서른여섯에 20년째 친구라고는 단 한 명도 없고 연인 역시 없다. 또한 나는, 사람들과 마주하면 불편해지는 사람이다. 여기에는 처음 본 사람뿐만 아니라, 안면이 있는 이도 포함된다. 8년 전 결혼한 첫째 언니와 그녀의 남편인 형부 또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보았고, 별말이 없었다. 나는 성격이 이상하지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아니다. 나는, 그저, 조현병 환자일 뿐이다.    

 

 처음 조현병 진단을 받은 것은 2009년 7월 말,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때 난 생에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갔고―그것도 구급차에 실려서―그날 강제입원 되었다. 스물둘, 7월의 정오만큼이나 뜨거웠어야 할 나이의 일이었다. 




2009년 8월 5일 수요일 날씨 : 맑음



 K도 S신경정신병원. 정신병원이 이런 곳이구나. 내가 세상에서 고립된 채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을 때, 8월의 나뭇잎은 이토록 푸르렀구나. 세상 사람들은 햇살이 내리쬐면 쬐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파란 하늘도 보고 사는 동안, 나는 무얼 하고 지낸 걸까?


 정신병원이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무서운 곳은 아닌 것 같다. 다들 그냥 평범한 사람들 같이 보이는데. 어떤 상처들을 갖고 살았길래 여기에 모여 있는 걸까. 영화 <처음 만난 자유>를 보고 정신병원에 대한 환상 아닌 환상이 있었는데...... 병실에는 시계도 없으니 몇 시인지도 모르겠고, 간호사 선생님께 물으니 정신도 온전치 못한 사람이 왜 시간을 궁금해하느냐는 표정을 지으니.


 지금도,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는 것일까? 지금이야말로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나 자신일 뿐일까? 슬프다. 나를 괴롭혔던 뇌 속의 사람들도 슬프고 내가 힘들게 한 사람들도 슬프고...... 그냥 이런 상황에서 무기력한 나 자신도 슬프고. 언제쯤 괜찮아 질까? 이 두꺼운 노트를 다 채울 때쯤? 그때 까지도 난 망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주변의 사람들과 내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어느 것도 답은 아닌 걸까?


 이렇게 간절히 삶을 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인도에서 썼던 일기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이 지루한 삶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범죄 스릴러만 뺀 어떠한 장르든지, 영화 같은 삶을 꿈꾼다고. 지금 이것이 분명 영화 같은 삶은 맞는 것 같은데, 그런 흥미진진한 삶은 훔쳐보거나 구경할 때에만 즐거운 것이지 당사자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이렇게 뼈저리게 느낀다. 누군가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나를 도와줄 사람은 정말 없는 걸까?




 2009년 여름, 나는 정신병원 안정병동에 강제 입원한 후 며칠을 약에 취해 내리 잠만 잤다. 입원한 지 며칠째 인지도 잘 모르던 날, 정신이 들었고 나를 짓누르던 망상과 환청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작은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일기를 썼다. 그 일부분이 위의 글이다. 망상과 환청이 조현병의 대표적 양성 증상이고, 그 증상들이 가장 뚜렷하던 때였지만, 그 외에는 일상생활이 가능했고 가끔은 조현병 환자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상적 사고 회로도 살아 있었다. 


 하지만 나의 뇌 속에는 낯선 중년 남성들의 목소리로 욕설과 살해 협박, 어쩔 때는 날 스파이로 써주겠다는 회유 등이 들려왔다. 나는 그 목소리들에 하나하나 속으로 대꾸하다가 겁에 질리기도 하고 실실 웃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정신이 없던 때의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발병했던 시기의 일들과 내 감정, 가족들과의 대화들도 대부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14년째 조현병 환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제는 약물 치료만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되었고 병식도 있다. 아직 또래의 남들처럼 경제 활동 및 사회생활을 하지 못해 완전한 의미의 치료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틈틈이 행복해하기도 한다. 이게 과연 내가 갖아도 되는 감정인지 두려워하면서. 이른 밤, 잠자리에 들어 침대의 온기를 느끼며 만족해하는, 내가 부리는 가장 큰 사치인 그 감정을, 나는 '행복'이라 부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