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델리대학교는 델리 전역에 80여 곳에 이르는 컬리지가 있었다. 이 컬리지들은 올드 델리와 뉴델리 곳곳에 분포한다. 델리대학교에 합격을 하면 올드 델리에 있는 입학처에 가서 지원하고 싶은 컬리지에 대해 상담한 후 컬리지를 배정받는다. 그 후에 컬리지에 직접 가서 입학지원서를 내고, 합격 여부가 가려지게 된다. 나는 A컬리지에 직접 가서 입학지원서를 냈고 얼마 후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나는 A컬리지의 학생이 되었다.
A컬리지는 한국의 대학과는 달리 오전부터 오후까지 강의가 짜여 있었다. 매 수업마다 강의실이 달랐고, 철학과 1학년 생은 인도 철학, 논리학, 영어 등의 수업을 들었다. 영어로 진행된 수업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수업 시간이 좋았다. 작은 강의실에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교수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 가끔은 창밖의 푸르른 교정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학생들은 나에게 상냥했고 한국 드라마를 봤다며 간단한 한국어로 말을 거는 아이도 있었다.
많은 것들 중에서 나를 가장 설레게 한 것은 S교수였다. 그는 입학지원서를 내러 가던 날 처음 본 교수님으로, 외국인 입학을 담당하는 분 같았다. 인도 사람은 나이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짐작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그 역시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는데, 적으면 30대 중반, 많으면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처음 내 지원서를 받아 들던 그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고 느꼈다.
처음 수업을 듣던 날, 강의실 복도를 서성이며 누군가를 찾고 있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나를 발견하고는 눈이 동그래져서, 일본인이냐고 영어로 물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A컬리지 사회학과 2학년 생으로, 그녀의 친구들이 신입생 중에 일본인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찾고 있는 중이었던, 진짜 일본인이었다. 델리에 머물면서 두어 번 일본인이냐는 물음을 들어봤었다. 그중 한 번은 나에게 스미마셍, 하고 일본어로 말을 걸던 인도인도 있었다. 나는 그때 커다란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들리는 일본어에 놀라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 인도인은 오토릭샤 운전수에게 값을 지불하고 있었는데, 잔돈이 없어 나에게 혹 바꿔줄 수 있냐고 물어보려 했던 것이었다. 아마 그녀가 아는 일본어는 스미마셍, 뿐이었던 듯, 그다음 말은 모두 영어로 했다.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해명을 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기억 속에 나는 영원히 일본인으로 남을 터였다.
입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외국인 학생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일본인 선배인 그녀에게 물어보니, 작년엔 외국인 모임 같은 건 없었다고 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S교수가 떠올랐다.
'작년에는 없었던 외국인 학생 모임이, 내가 입학하니까 생겼다고……?'
분명 나를 다시 마주칠 기회를 만들려는 생각이구나. 가슴이 쿵쾅거리는 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나 외국인 학생 모임이 열렸다. 15명 내외의 학생들이 모였다. 독일, 프랑스, 네팔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S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그는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어떻게 모임이 끝났는지 모르게 내 신경은 온통 그에게 쏠려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학교에 가는 목적이 공부가 아닌 '그'가 되어버린 것은. 그는 통계학 교수였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그의 이름과 그가 통계학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것, 딱 두 가지였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그는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색정망상이었다.
내 색정망상이 더 심해지게 된 계기는 A컬리지의 또 다른 여교수님께 여권사진을 제출하러 갔다가 잠시 나눈 대화였다. 간단한 질문을 주고받다가 교수님이 질문하셨다.
"교환 학생인가요?"
순간, S교수가 떠오르면서
'그 사람이 다른 교수들에게 내가 교환학생이라고 말하고 입학시켰구나. 원래는 합격이 안 되는 건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관심에 내가 있다는 생각에 못내 뿌듯하면서도 짐짓 화난 내색을 하며
"누가 저더러 교환 학생이래요?"
하고 차갑게 말했다. 여교수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입학시키고 싶었던 게 나라니.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