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돌이켜보니 내 조현병 전구기는 인도로 다시 가기 전 한국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 같다. 그리고 인도에 도착한 후로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내가 머물던 집의 주인은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인도인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아주 친절했다. 빠하르간지에 짐을 두고 처음 집을 구했을 때, 기꺼이 자신의 차로 운전해 와 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은 스크럽 타입의 폼 클렌져로 세수를 했는데, 오른쪽 눈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도 보고 물로도 씻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그 뒤로 이상하게 집주인이 내 생각을 읽는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눈에 걸린 것이 스크럽 제품의 알갱이가 아니라, 집주인의 계략으로 내 눈에 몰래 박아놓은 초소형 카메라가 아닌가, 하고 믿게 됐다. 내 시선이 가는 곳을 카메라를 통해 알아내고, 그걸로 내 생각을 유추한다는 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내가 방에서 뭘 하고 지내는지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에 집안에 여럿 걸려 있는 액자에 카메라가 숨겨진 것 같다는 확신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얼마 못 가 다른 동네에 새로 방을 구했다. 이제야 말로 내가 진정 원하던 독방이었다! 개인 화장실까지 딸려있는 방이었고, 주방은 다른 독방에서 지내는 여자와 같이 쓰면 되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해외에 계셔서 실제로는 나와 인도인 여자 한 명만 지내는 셈이었다. 또 지난번 집과는 달리 신식 인테리어였다. 침대가 2인용이라 자리가 부족해 책상은 없었지만 혼자만의 공간에 속으로 환호했다. 드디어 이상한 집주인의 집에서 벗어났으니, 이젠 마음 편히 공부에만 집중을 하자!
그러나 삶은 그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한 번은 혼자 방에 있는데 벨소리가 울려 현관에 나가 도어 뷰어로 밖을 보니 깜깜했다. 분명 낮이었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밖으로 난 창문의 커튼을 걷어 현관문 쪽을 보았다. 그 유리는 안에서 보면 투명해 밖이 보이지만 밖에선 거울로 보였다. 그런데 웬 처음 보는 인도인 남자 두 명이 서있었고, 한 명은 주먹 쥔 팔을 뻗어 도어 뷰어를 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 집에 사람이 없는 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어 번 더 벨이 울렸고, 다행히 그들은 돌아갔다(이들은 누구였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하지만 이들도 나를 감시하러 온 사람인 것처럼 생각되어 한동안 골치가 아팠다.
관계망상은 점점 심해져 갔다. 어느 화창한 오후,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휴대폰은 침대 머리맡에 두고 왔다! 나는 평소 방에 있을 때 방문을 잠그고, 걸쇠를 위로 향하게 해서 한 번 더 잠그고, 화장실에 갈 때는 화장실 문까지 잠갔다. 그런데 이 화장실 문이 아무리 열려고 애를 써도 열리지 않는 거였다. 후에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화장실에 갇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화장실 갈 때도 휴대폰을 들고 가는 게 좋다고. 하지만 당시엔 그런 이야기를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에, 나의 상상력(?)은 이상한 쪽으로 흘렀다. 누군가가 화장실 문고리 틈사이를 조작해 문을 잠갔다! 나는 나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두리번거리다 건물 밖으로 향한 창문을 열었다. 이 창문은 슬라이딩 방식이 아니라 힌지 방식이어서 창문은 활짝 열리지 않았고, 창밖은 제한적으로만 보였다. 그때 사람이 지나갔다.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문이 잠겼어요! 경찰을 불러주세요!"
영어로 말했지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멀뚱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속이 타들어 갔다. 이대로 여기서 죽는구나, 굶주림에 지쳐서 죽고 말 거야……. 자리에 주저앉아 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문을 한 번 더 당겨봤다. 그때였다. 꽉 잠겨있던 문고리가 쉽게 열리는 게 아닌가. 다행이다, 살았다, 싶으면서도 속으로는 화가 났다.
'나를 가지고 노는구나. 나를 놀리느라 문을 잠가놓고, 애타게 살고 싶어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즐겨놓고 다시 문을 열다니.'
그 후로 나는 화장실에 갈 때 꼭 휴대폰을 들고 간다. 한국으로 돌아와 뉴스로 비슷한 소식을 접한 후로 더더욱.
지금은 살면서 한 번쯤 겪을 해프닝이었을 뿐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당시에는 모든 것이 나를 괴롭히고 감시하고 골탕 먹이려는 수작으로만 느껴졌다. 지독한 조현병 전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