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가 나를 기다린다

by 허공나

스무 살이었던 2007년, 나는 인도 델리로 향했다. 왜 그 나라에 갔느냐고? 선택의 이유는 많고도 명확했다. 당시 나는 환경이며 동물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순면으로 생리대를 만들어 직접 빨아 쓰기에 도전했고,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완전히 배제하는 식단을 일 년간 지키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완전한 비건 생활을 실천하자면 어려움이 많았다. 자연히 종교적인 이유로 채식이 보편화되어 있는 인도에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두(인도에서는 '모모'라고 부른다) 하나만 봐도 한국에선 돼지고기가 빠진 야채만두나 김치만두를 찾기가 어렵지만, 인도에서는 채식인들을 위한 야채 만두, 비채식인들을 위한 닭고기만두가 나뉘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인도에는 종교에서 금하는 바로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서 불교가 창시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씩 마음에 요란스러운 파도가 칠 때면 절을 찾았다. 스님들이 대법당에서 목탁을 치며 불경을 외는 것을 들으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엄마, 아빠가 결혼식을 성당에서 했고 둘 다 세례명도 있다. 큰언니도 중학생 때 세례를 받았으나, 둘째 언니와 나는 성당에 꾸준히 다닌 적은 없었고 세례명도 없었다. 불교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집인데, 나만 고등학교 자퇴 후 심각하게 출가도 고민해 봤고 힘들 때는 혼자 절을 찾곤 했다. 인도는 불교 신자나 스님들이 성지 순례를 위해 찾는 나라이기도하다. 나에게도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불어서 인도는 요가의 나라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스무 살의 나는, 언젠가는 어려운 요가 자세도 척척 해내는 요가 천재(?)가 되고 싶었다.


마지막 이유가 가장 현실적이고 야심 찬 것이었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인도이기 때문이었다. 인도는 영어가 공용어이고, 대학교 수업 또한 대부분 영어로 진행한다고 들었다. 현실적으로 우리 집 형편으로 영어 사용 국가로 유학을 가려면, 선택지는 인도뿐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물가가 너무 비쌌다. 인도의 대학교 등록금은 몇 십만 원 수준이었다. 나는 요가 천재뿐만 아니라 영어 천재는 더더욱 되고 싶었다.


일본 나리타 공항을 경유해서 델리로 가던 길, 나는 그 길에서 돌아오는 내 모습이 어떠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들뜬 마음뿐이었다. 출국하던 날, 이른 새벽잠이 깬 그날의 일기장 마지막 줄엔 이런 문장이 있다.


'이천칠 년 오월, 델리가 나에게 선물할 것들에 벌써부터 심장이 뛰어온다!'


델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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