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임희 Jan 10. 2025

동생으로부터 빌려준 돈을 받았다.

못 받을 줄 알았다.

빌려줄 당시에는 동생에게 안 받아도 될 정도로 우리 살림이 넉넉해져 있길 바랐다.

하지만 남편의 월급으로 몇 년 모아야 될 정도의 금액이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내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니 남편에게도 미안했다.


동생은 타고난 비즈니스맨이다.

외모, 매너, 말투 그리고 무척 센스 있는 유머까지 잘한다..

성별 나이 상관없이 처음 보는 사람도 내 동생을 금방 좋아한다.

나와 너무 다르기에 한 번씩 깜짝 놀란다.

어휴~ 저 립서비스…. 사람 홀리는 데 뭐 있다니까…

그렇지만 난 눈을 보면 안다.

선한 눈을 가진 동생은 본인의 진심이 그의 큰 눈망울에 투명하게 다 보인다.

배려하고 감사하고 미안해하는 마음들, 심지어는 그의 자신감까지도 말이다.


사람들을 잘 챙긴다.

머리가 좋기도 한 것일 것이다.

나는 잘 까먹기도 하고 또 챙겨야지 하면서도 실행에 못 옮기는데

내 동생은 기억도 잘하고 챙겨야 할 것 인사해야 할 것을 미루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그날 다 해버린다.

나의 체크리스트가 다섯 개 있다면 그중의 하나만 해도 나는 만족한다.(너무 게으른가?)

하지 못한 네 개 중 굳이 필요한 게 있다면 다음으로 넘긴다.

동생은 생각나는 다섯 개를 다 해버린다.


이런 부지런함도 한몫을 했는지 동생은 승승장구했다.

좋은 아파트에 좋은 차에 해외여행도 잘 다니고 좋은 옷도 사고 말이다.

월급쟁이인 우리와는 돈 씀씀이가 달랐다.


그런 동생이 몇 년 전 많이 힘들어했다.

아직 집이 없기에 현금이 좀 있어서 당장 도와줬다.

받으면 고맙지만 안 받아도 될 정도의 금액이다라고 생각했다.

이건 돈 벌지 않는 나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내 동생은 잘 되어야 하고 앞으로 잘 될 거야.

내 동생이 잘 안 되면 누가 잘 돼?

만약 어떻게 되면 내 조카들은 어떡해.

우리가 도와주자. 지금 당장 현금 되잖아.

나는 형제간에 돈 거래하는 거 싫다.

동생한테는 빌려준다라고 했지만 나는 안 받아도 상관없다.

잘 돼서 갚아주면 고맙지만 안 받을 거라 생각하고 빌려주자’


잘못된 논리인지 내 영어가 어설퍼서 인지 아주 현실적인 남편은 헷갈려했다.

‘그래서 받을 수 있는 거야? 아니면 그냥 주는 거야?’

‘아니, 내가 준다라고는 안 했어. 하지만 우리 안 받을 꺼라 생각하고 빌려주자’

‘그래서… 내가 받을 수 있어? 없어?’

‘(한숨)........ 동생이 일 년 안에 갚아 준데’

‘그러면.. no problem’


난 일단 동생을 도와주고 싶었기에 남편을 안심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고….

전화를 한번 했더니 동생이 받지를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바로 연락가능한 동생인지라 나는 바로 직감했다.

미안해서 받지 않는 거구나.

며칠 뒤에 동생으로부터 목소리 듣고 싶지만 돈을 못 줘서 미안하고 염치가 없다는 문자가 왔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너무 가난하던 우리 집이 생각났다.

빚쟁이들 전화에 ‘엄마 집에 없다’라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나의 유년 시절과

하루종일 피해 다니다가 밤에는 돈 달라는 사람이 없어서 잘 때가 제일 행복하다며 이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던 엄마가 생각났다.


내가 딴사람도 아니고 내 동생을 독촉하는 빚쟁이가 되었고

내 전화는 내 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너무 잘 난 내 동생이 왜 이렇게 됐을까 가엽기도 하고

동생이 전화를 피하게 만든 나 자신이 너무 화가 나서 또 울었다.

그리고 혼자 마음속으로 그 돈을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친한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그러면 남편한테 뭐라 할래. 네가 어떻게 무슨 수로 그 돈을 마련하냐.

가족은 돈 주고받는 거 아니다..

혼자 망하면 되지 다 같이 망하는 거 많이 봤다는

걱정 어린 친구의 핀잔은 다시 현실을 제대로 보게 했다.


또 한 해가 지나고 며칠 전 동생이 연락 왔다.

작년에 일이 많아서 이제 좀 돈이 돈다고, 그동안 미안했다고 하며 돈을 보내주었다.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내 것을 먼저 챙겨주는 동생임을 안다.

하지만 남편혼자 힘들게 버는 돈이라 일단은 받아두었는데,

아직도 힘들게 혼자 헤쳐나가는 동생을 나 몰라라 하고 내 것 챙기는 못난 누나라 미안하다.

항상 맘만 아파하고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누나라 미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