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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히엔 May 13. 2023

제주도 중독자

제주 이야기지만 제주에 간 이야기 아님

현남친, 곧 남편과의 첫 여행지는 제주가 될 예정이었다. 2021년 5월 연휴를 맞아 제주여행을 계획한 우리는 신나는 발걸음 대신 차 액셀을 밟으며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날씨가 좋지는 않았지만 여행 가는 기분이란 날씨를 이겨버리지!


그러나 비행기는 그날의 비바람을 이기지 못했다. 신나게 김포로 향하던 차 안에서 우리는 제주행 비행기 결항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김포공항에 주차를 하고 돌아와서 픽업할 예정으로 운전을 해서 가고 있던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일단 공항을 가보는 수밖에.


그렇게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금세 현실과 마주쳤다. 공항을 가득 메운, 제주에 가고팠으나 가지 못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 비행기는 오후 3시경 비행기였는데 알고 보니 꽤 이전부터 순차적으로 계속 결항이 되었나 보다. 이걸 어쩌지... 하며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중 귀에 들어온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오후 8시 전 비행기들은 다 결항되었어요."

"그럼 그 이후에는 타고 갈 수 있습니까?"

"글쎄요, 연휴라 아마 그 비행기들도 거의 만석일 거예요.


옆에서 들려오던 이 대화가 제주를 포기하게 하는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경험을 통해 우리 커플이 손발이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때는 정식으로 만난 지 고작 3개월 정도밖에 안 되던 시점이었는데 마치 한 십 년 알며 여행을 같이 가본 사람들처럼 업무분담이 척척 이루어졌다. 남자친구가 항공권 예매를 한 곳에 전화를 하여 결항증빙서류의 필요성을 들은 후 내가 결항증빙서류를 공항 항공사 직원분께 문의를 했고, 그 사이 남자친구는 숙소들에 취소문의를 했다. 증빙서류를 받은 나와 남자친구는 다시 예약을 한 곳들에 함께 서류를 보냈다.


이렇게 모든 제주 관련 예약들을 취소한 후, 우리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다른 여행지를 검색했다. 마침 차를 가져와서 다행이었다. 제주도 빼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타고 향한 곳은 바로 여수였다. 남자친구가 학창 시절의 한 때를 평화로이 보낸 곳이자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남자친구는 오랜만에 가보고 싶었고, 나는 거꾸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이라 이곳이 당첨되었다. 


그 길로 김포공항에 주차해 놓았던 우리 차를 픽업하여 여수로 향했다. 바다를 건너가는 제주는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수도 멀긴 멀다. 밝았던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금세 하늘이 깜깜해지고 차창에 흩날리는 빗물이 여실히 보였다. 그렇게 여수에 입성하여 숙소로 가기 전에 저녁으로 먹을 치킨을 사려고 치킨집을 갔다. 차 문을 열고 나간 순간 세찬 비바람에 뺨을 대차게 맞고 생각했다. 그래, 이 정도면 결항하는 게 맞네.


신기하게도 그다음 날부터는 맑은 날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나는 남자친구와 제주도만은 가보지 못했다. 여수를 비롯하여 전주 부산 강릉 등 여러 곳을 같이 갔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그 사이 친구와는 제주도를 두 번이나 갔다. 미안해 현남친 곧 남편. 자기와 일부러 안 가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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