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마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던 회사 사이에서 어느새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내가 먼저 이직의 스타트를 끊고 2019년에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했다. 이직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장님이 6월에 비행기를 타고 워크숍을 가시고 싶으시단다. 그렇게 처음으로 개인 여행이 아닌 일로 제주를 가게 되었다.
제주도 중독자인 만큼 새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이미 제주를 다녀왔더랬다. 그때 머물렀던 호텔은 성산에 위치한 젊은이들 타깃의 호텔.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시설대비 매우 가성비가 좋았다. 호텔에서 하는 액티비티도 다양했다. 방에는 방명록이 있었는데 회사 워크숍을 왔다는 글이 있었다. 사장님의 워크숍 준비 지시가 떨어졌을 때에 나는 이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여기다!
금액적으로 여행사 견적과 비교해도 우수하다. 게다가 여행사가 보내준 숙소들은 적으면 두 명, 많으면 네 명이 한방인데 내가 찾은 곳은 독방이 가능했다! 아직 회사 사람들과 같은 방을 써도 편할 정도의 기간이 지나지 않았기에 독방이 된다는 건 큰 메리트였다. 게다가 나는 이번 제주행이 여행보다는 일이었기에 적어도 잠은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푹 자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히 제안은 통과되었다.
워크숍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뉴스에서 우리가 가는 첫날 비가 온단다. 에잇. 백업플랜이 필요했다. 정말 비가 오면 하기로 했던 야외 활동을 취소하기로 하고 실내에서 볼 수 있는 전시회를 예약해 두었다. 다행히 쓰지 않으면 환불이 가능했다. 그리고 정말 비가 왔다.
비 내리는 제주에서의 첫 일정은 점심식사였다. 횟집을 예약해 놓아서 차 두대로 식당에 도착했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비행기 타고 온 것이 전부지만) 식사도 모두 즐겁게 마쳤다. 식사 이후에 바로 전시를 보러 가는 일정이었으므로 나는 미리 대절한 버스로 가서 다음 일정을 기사님께 한 번 더 상기시켜 드리고, 하나 둘 탑승하는 인원을 체크했다.
거의 대부분의 인원이 탑승했을 때였다. 워크숍 준비 TF팀으로 같이 고생하고 있던 직원분께 전화가 왔다.
"히엔님, 결제 안 하셨어요!"
어머!! 다음 일정을 생각하느라 식당 결제를 깜박한 것이다. 다시 빗줄기를 헤치고 식당 안으로 달려가 결제를 마무리지었다.
워크숍 후 한두 달이 지났을까. 함께 TF팀을 했던 다른 직원분께 (이유는 까먹었는데) 계좌이체를 해드려야 할 일이 있었다. 은행 어플에 들어가 돈을 보내고 메신저로 송금했다고 글을 남겼는데, 잠시 후 아직 송금이 안되었다고 답이 왔다. '어? 이상하네'하며 핸드폰을 다시 켜보니 송금버튼을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눌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머쓱하며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서둘러 송금버튼을 눌렀다.
이야기를 들은 직원분은 내게 말했다. "어? 히엔 님 워크숍 때 먹튀하셨다는 소문이 돌더니 정말 그런 분이셨나요?!"
아니에요, 그저 허술한 사람일 뿐. 저 먹고 튀는 그런 사람 아니랍니다. 믿어주세요. 제발!
비가 온 제주에서의 워크샵, 그 곳에서의 첫 기억은 결제를 깜박한 횟집과 그 이후 갔던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