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기억은 없다.
나에게도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중국에서 잠시 머물고 있을 때 하나의 속담을 들었다.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고상한 정신이 깃들기 어렵다
바로 공자의 말이다.
그래서 중국은 밥값 물가에 진심인 편인 것 같다.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에 잘못 알려진 예로 빵 대신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소문에,
한 나라의 왕비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부자가 된 사람 중에서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산 상태로 지옥을 체험한다고 생각한다.
방황하며 어리숙했던 나의 어린 시절 가난하게 출발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난하게 죽는다면 그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이 되어 올라갔다.
가난해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도 아니지만, 사례가 분명 있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가난함이 제공하는 불편함을 무조건 참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어나야만 했다.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야 했다.
20대에 좋고 행복한 청춘의 기억은 없다.
오로지 악착같이, 악착같이, 악착같이만 남은 20대의 내가 있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지금은 의식주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내가 있다.
인생은 길고 긴 마라톤이다.
이 인생 마라톤에서 우승할지 안 할지는 달려봐야 안다.
주식도 마찬가지이다.
주식 투자를 하면 잃는다고 무조건 피하면 돈을 벌 기회조차 없다.
경기에 참여해야 우승도 할 수 있고, 패배도 할 수 있다.
포기하면 언제나 지는 쪽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