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기를.
"우연은 그녀를 이끌고, 그녀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본다. 아녜스 바르다가 바라본 아름다운 visages, villages.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오랜만에 프랑스 영화를 보았습니다. 인물, 배경이 모두 사라지고 뉘앙스만 남아도 프랑스 영화구나 느낄 정도로 그곳의 감성이 짙게 묻어 나왔습니다. 이야기는 상당히 짜임새가 있었고 중반의 잠시 루즈한 전개과정을 제외하고는 즐겁게 영화를 보았지만, 전율을 느낄 정도의 감동은 느끼지 못하여 쓸 말이 뭐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평론가들의 평이 굉장히 높게 나온 것을 보고 반대로 이야기해 볼 지점이 떠올라 적어봤습니다. 사설로 프랑스는 저에게 너무도 도도하게 아름다운 여인 같습니다. 갖고 싶지만 끝내 갖지 못했던, 언젠가는 다시 만나고 싶은, 저에게는 많은 추억들이 떠오르는 곳입니다. 이런 마음이다 보니 프랑스 영화에 더욱 애착이 가게 되는데, 다른 분들도 복잡 다단한 프랑스 영화의 감성들을 더욱더 즐기시길 바랩니다.
1. 아녜스와 JR이 서로 교차하는 도입부 설정
아방가르드의 여전사 아녜스는 우연성을 굉장히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로 모르는 사이로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우리들이 어느 순간 서로를 의식하고 교감하고 창조한다. 그녀는 JR과 테이블에 앉아 영화를 같이 제작하자고 한다. 무엇을 찍을까라는 물음에, 목적지 없이 가자고 한다. 자연스럽게.
2. 허물어져가는 광부촌
철거를 목전에 둔 광부촌. 그곳의 마지막을 함께 하겠다는 백발의 여인. 그녀가 감동했다. 유년시절부터 모든 과거가 집약된 광부촌에서의 삶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아녜스는 그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JR과 아녜스는 광부촌 마을 주민들의 사진을 찍어 마을 건물 벽면에 붙였다. 존경을 담아낸 그들의 작업에 그녀는 자신의 사진 앞에서 감동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느 말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 아녜스가 바라보는 아름다움. 보는 이도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스럽게 보게 된다.
3. 교회 주변 마을에서 빵을 문 아이들과 주민들의 사진
광부촌의 백발 여인은 과거 아버지의 석탄 가루 빵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가 점심으로 버터를 듬뿍 바른 바게트를 가져가시면 바게트는 석탄재가 범벅이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그녀는 그 빵이 특이하고 일품인 맛이었다고 한다.
과거에 광부들은 그토록 중노동을 하며 식구를 먹여 살렸다. 세대를 건너 건너 생은 이어지고 과거는 축적되며 생을 이어받은 자들은 각자의 개성 넘치는 아름다운 얼굴들로 그다음을 이어간다. 마을 벽면에 JR과 아녜스는 바게트를 문 그들의 모습을 주우욱 이어 붙인다. 생은 계속 이어진다. 각자의 얼굴로.
4. 농부, 우체부, 카페 여종업원, 소금공장 노동자들, 연금생활 히피 노인의 사진.
그들은 연예인이 아니다. 유명인사들도 아니다.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를 고수하며 그들의 공간에 살아간 사람들이다. 아녜스에게는 이들이 아름답게 보였던 것이다. JR은 사진에 담고, 아녜스는 영상에 담고, 사진은 그들이 사는 공간에 커다랗게 붙여지고, 아녜스는 이 모든 행위를 염상에 담았다. 공간에 이름 붙이듯이 공간에 사진을 붙여 넣었다. 생을 살아 나가는 터전의 주인은 오롯이 생을 이어나가는 자들의 것이라는 듯.
종을 치는 마을 주민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카메라 시점을 아래에서 위로 잡으며 종을 울리는 모습을 잡아내는데 전통처럼 내려오는 그 모습이 종교의식과 같은 성스러운 느낌이 났다.
5. 루브르 장면
장 뤽 고다르를 만나기 전 그가 만든 영화의 오마쥬이자 패러디이다. 고전 명화들이 한가득인 공간을 관통해가며 그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아녜스는 찬미한다. 누벨바그의 전위에 서 있던 아녜스의 전통에 대한 관점을 확연히 드러낸다. 누구보다도 변화를 추구했을 그녀에게 역설적일 수 있지만 축적된 유산들은 소중한 것이며 자기 삶을 고수해 나가는 민중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6. 항만부두 여성들
강인한 남성들이 살아가는 항만부두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을 포커싱 했다. 남성들에게 가려져 있을 수도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내고 그녀들의 전신 샷을 거대한 토템 석상 같이 보이게 컨테이너에 붙여 넣었다. 그리고 사진의 심장 부분에 그녀들을 앉혔다. 아찔할 정도로 높디높은 곳에 걸터앉은 그녀들은 그 순간 느낌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높은 곳을 두렵게, 누군가는 기분 좋게 느낀다. 그녀들이 진정 높은 위치에 올라 자신의 가슴이 말하는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영화에서 이 장면이 가장 웅장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하지만 필자 본인이 남성이라 무의식적인 반감이 나왔는지 너무도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 부분은 장 뤽 고다르 에피소드와 연결 지어서 아래에 상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7. 염소 사진
염소와 직장에 나가는 직장인들이 오버랩되어 느껴졌다. 수익성을 위해 뿔도 제거당한 염소들이다. 민둥머리로 수유기 앞에 자발적으로 모여 우유를 뽑힌 당하는 염소들. JR과 아녜스는 염소라면 당연히 뿔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전통 방식으로 염소를 사육하는 농장주를 찾아간다.
염소들은 뿔로 상대를 공격하며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낸다. 인간들도 어쩌면 티격태격하며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내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염소가 당연히 뿔이 있어야 염소답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JR과 아녜스는 마을 벽면에 뿔 달린 대형 염소 사진을 붙인다. 이 와중에 그녀와 그도 아름다움을 쫓아 영화를 만들며 서로 티격태격한다.
8. 버려진 마을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진 찍음
소외되고 폐허가 된 곳에서 조차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아녜스와 JR의 의미부여로 보인다. 그들이 아름다움을 보는 방식이고 그들의 내면이 엿보인다. 충분히 매력적이다.
9. 해변에 떨어진 커다란 시멘트 건조물에 옛 모델의 사진
우연하게 그곳에 놓이게 된 독일 군사시설에서 떨어져 나온 거대한 시멘트 건조물에 JR과 아녜스는 그녀의 옛 모델 사진을 옆으로 비틀어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으로 붙여 넣었다. 우연스러운 공간에 그들 방식으로 새로움을 만들어 내었다. 아쉽지만 이 작품은 파도에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다. 사라지는 게 아쉽지만 그들은 계속해나갈 뿐이다.
10. 아녜스의 눈과 발 사진
JR은 아녜스의 눈과 발을 사진 찍어 움직이는 철도 차량에 붙여낸다. 이를 본 어떤 이가 참으로 예술적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아녜스에게 특별히 눈과 발을 선택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다. 아녜스는 대답으로 자신의 예술론을 피력하며 예술은 보는 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아녜스의 눈과 발이 철도차량과 함께 움직이며 JR은 이야기한다. 아녜스의 눈과 발이 더욱 많은 곳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작품을 만들었다고... 그의 의미부여와 함께 어떤 사진 작품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11. 고다르와의 만남 시도
장 뤽 고다르는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거성이다. 아녜스는 누벨바그 시대를 고다르와 함께한 동지였다. 서로를 잘 아는 그들은 만남을 약속했지만 고다르는 거부했다. 아녜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집 앞에 적어 놓은 채... 그의 문장 속 두 단어는 아녜스를 울린다. 하나는 그녀가 정말 사랑한 죽은 남편의 이름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녀 영화 속 해변 이름이었다. 아녜스는 그의 농담이 이번만큼은 지나쳤다고 되뇌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고다르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그는 이 영화에 출연하지도 않았고 어떤 개입도 시도하지 않았는데, 아녜스가 만든 이 영화에 액자식 구성처럼 그의 의미를 새겨 넣어 버렸다.
아녜스는 고령에도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해나가지만 고다르는 침묵하며 은거 생활을 한다. 영화 전체에서 드러나듯 그녀는 마주치는 것들에 의미 부여를 해나가며 아름답게 보고 그것들을 작품으로 구성해낸다. 만약 고다르가 이 영화에 얼굴을 드러냈다면 아녜스는 그녀가 사랑하는 고다르를 아름답게 각색해냈을 것이다. 사랑하는 얼굴들을 작품으로 만드는 이 영화의 전체 서사구조 속에 파편이 되는 것을 고다르는 거부한다.
고다르는 침묵한다. 그의 생각이 한때는 시대의 전위부대로 모든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 냈지만, 지금 그는 침묵한다. 하지만 아녜스는 그 시대와 별반 다름없는 시점으로 세상을 기록해 나간다. 고다르는 아녜스의 시점을 거부했고 그녀가 과거라는 것을 두 단어로 환기시켰다.
아녜스는 분명 서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형식은 새로울지 몰라도 주제는 진부했다. 형식조차도 고다르 덕분에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12. 고다르와의 만남 후
아름다운 배경을 앞에 두고 아녜스는 슬픈 표정으로 JR에게 고다르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한다. JR은 고다르가 우리 영화의 서사를 무너뜨리는 시도로 만남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리고 아녜스는 무엇을 해야 될지 묻는다. 무엇을 해야 될지 우리에게 묻는 것처럼... JR은 아녜스가 그리도 원했던 선글라스를 벗은 모습을 보인다. 바로 옆, 슬픔에 잠긴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시력이 좋지 않은 아녜스는 흐릿한 시선 속에서라도 따뜻한 마음의 그를 미소 지으며 바라본다.
총평
서술 구조는 훌륭했다. 표면에 드러나는 이미지들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주제는 진부해 보였다. 누벨바그의 전위였던 그녀의 끊임없는 열정에는 놀라움이 일지만 영화 속 엿보이는 그녀의 생각은 이미 들어본 듯하다. 68 혁명 이후 그즈음 생겨났던 사조들은 이미 우리들에게 새로움을 일깨우지는 못하는 듯하다. 일상성의 아름다움, 소외된 것들의 아름다움, 우연성의 아름다움. 모두 다 한 번쯤 들어 보았다. 고다르는 침묵한다. 그는 아녜스와의 영화 속 만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정확히는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그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려는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가 과거라는 것을 되새기게 두 단어를 남긴다.
아녜스가 아름답게 담아내는 얼굴들은 영화 후반 부로 갈수록 사적인 관계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고다르의 만남 거절 후 그녀는 그의 의도를 예감했을 것이고 JR에게 무엇을 해야 될지 묻는다. 그리고 JR은 바로 옆에 있는 아녜스를 위로한다. 결말 부분도 많이 봐왔던 레퍼토리다. 포스트모더니즘류의 이야기들이 담아내는 슬픈 세상 속, 옆에 있는 사람 사랑하기다.
아녜스 바르다는 정열적인 휴머니스트임이 틀림없다. 인간의 나체를 좋아하는 그녀는 인간 그 자체를 누구보다도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차디찬 현대인의 얼음장 같은 감성에 도끼날을 드리우기에는 그녀의 관점이 더는 묵직함도 날카로움도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그녀의 관점이 예술로 승화되기에는 힘에 부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