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준호 Jul 26. 2018

[인랑] 후기

보지 마시오.


'영화의 탈을 쓴 망작이 당신을 노린다. 도망가라!'


언젠가 신장개업 커피숍에서 맛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4잔의 에스프레소였는데 죄다 맛이 없었다. 참으로 곤욕스러웠다. 사장님은 의욕에 찬 눈빛으로 어떠냐고 물으시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우스개 소리로, 맛없는 것 중에서 덜 맛없는 것을 고르는 일은 정말로 미묘하고도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주관적인 판단이 작용하는 영역에서 훌륭한 것을 분석하고 논하는 일은 섬광과 같은 직관이 번뜩이며 즐거운 일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인 못난 것이 왜 이리도 못나게 된 건지 알려는 노력은 허무하고 이유를 밝히기 힘들다.

반칙왕,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과 같은 잘된 영화 중에 어떤 영화가 가장 훌륭한지 평하기는 쉽다. 반대로 리얼, 악녀, 7년의 밤, 인랑 -근래 최악의 한국영화- 중에 가장 맛없는 영화를 고르기는 무척이나 곤혹스럽고 왜 망작이 되었는지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이런 영화가 안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영화에서 눈에 거슬렸던 몇몇 부분들을 지적해 보겠다.


1. 인트로 부분 - 내레이션을 통한 배경 설명

너무 장황하게 앞으로 이어질 영화의 배경 설정을 설명해준다. 보자마자 이 영화 망했구나 느꼈다. 망한 영화들은 거개가 설명이 길다. 시작 부분이나 끝 부분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배우의 대사를 통해서든 내레이션을 통해서든 주구장창 떠들어댄다. 그것도 굉장히 폼을 잡고 진지하게.


2. 감정이입 안 되는 로맨스

왜 슬픈 표정을 짓지? 왜 눈물을 흘리지? 왜 키스를 하지? 배우의 감정 라인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인간의 탈을 쓴 늑대와 여자 스파이가 서로 흑심을 품고 접근했다는 것이 반전으로 알려지기 때문에 그래서 두 주인공의 애정씬이 어색했구나 하고 힘들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론  부근에 와서 의도적인 접근 속에서도 서로의 진심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럼 그 맥락 없던 로맨스는 뭐지? 다시 이해불가다.


3. 긴 배경 설명을 무색하게 만드는 내용 전개

통일 한국하에 경제공황이 왔다는 전제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영화 전개는 굳이 그런 이질적인 극 설정이 필요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상상력은 좋으나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는 설정이어야 한다. 차라리 배경 설명 없이 미래 한국의 디스토피아적 상황으로 관객이 알아서 인지할 수 있게 만들고 스토리는 권력 조직 간의 계파 싸움에 희생당하는 개인의 모습을 그리는데 집중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4. 주제가 없다.

원작의 세계관과 김지운 감독의 세계관이 어정쩡하게 겉도는 것 같다. 보는 이로서는 뭘 말하고 싶은지 헷갈린다.


총평

이 영화는 정우성이 대사로 다 설명해준다.

이제 그림이 그려지나?

이제 다 이해가 되나?

병신 새끼


다시 말해 도저히 영화의 전체적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따라서 스토리가 이해조차 불가하다. 관객에게 이러이러한 배경이라는 세뇌를 시키려 하고 얼개가 안 맞으니 극 중 주인공이 강요를 한다. 내가 이렇게 말했으니 영화적 맥락이 그림 그려지냐고. 이렇게 설명했으면 이해가 되지 않냐고. 감독 머릿속에서도 얼마나 스토리 전달에 초조했으면 대사로 강요를 했을까 한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 영화계에 훌륭한 신인감독과 새로운 작품들이 안 나오는 것 같다. 의심스럽다. 돈과 권력이 위에서 새로운 창작물들을 가로막는 듯한 느낌이다. 쓰레기 작품에 쓰일 인적 물적 에너지가 반에 반이라도 기회를 기다리는 곳에 쓰이면 얼마나 좋을까. 씁쓸하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장면별 감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