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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호 Jul 28. 2018

[어느 가족] 장면별 리뷰

여름을 닮은 가족애


"가족이란 경계 밖에서 가족 그리기"


여러 훌륭한 작품들을 제치고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작품이 개봉했다. 안 볼 수가 없었다. 역시나 아름다운 예술 작품 하나가 세상에 나왔다. 여타의 관성적인 눈물샘을 자극하는 가족주의 영화와는 급이 다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땀을 뻘뻘 흘리는 여름을 주 배경으로 한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사랑하는 이에게 짜증을 내기보다 영화 '어느 가족'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면 좋겠다. 뜨거운 여름이 가고 언젠가는 겨울이 온다. 퇴약볕 아래 소중한 추억이 새겨져야 가슴 시린 이별도 견뎌지고 누군가를 보듬지 않을까 한다.


1. 폭죽놀이 소리 보기

이 영화에서 최고의 장면이다. 깜깜하고 무더운 여름 저녁, 폭죽놀이 소리가 들려온다. 축제에 구경 갔던 할머니의 경험담과 함께 가족들이 하나둘 문지방에 모여들어 폭죽놀이를 구경하려는 듯 밤하늘을 쳐다본다.

카메라는 위에서 아래로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깜깜한 밤하늘에 그들은 반딧불이처럼 반짝인다. 가족들의 따스한 재잘거림과 함께. 아빠(오사무)는 이야기한다. '소리를 보라고'. 그들은 통상적인 가족의 형태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치정관계에 살인을 저지른 내연남녀, 유괴, 돈을 위한 양육, 어느 하나 온전치 못하지만, 그들을 묶어 놓은 보이지 않는 관계는 어느 가족보다 아름답다. 무덥고 깜깜한 세상 속에 서로를 아끼는 재잘거림을 들으면 반딧불이 같은 그들 모습 자체가 축제의 빤짝 거림이다.


2. 딸(린)과 엄마(노부요)의 목욕탕 씬

처음 유리를 데려 왔을 때 탐탁지 않게 여긴 엄마(노부요)는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니라는', 린 친엄마의 말을 듣고 자신의 집으로 다시 데려온다. 태어난 몸 자체는 어느 하나 닮지 않았지만 엄마(노부요)는 자신의 화상 흉터 이야기를 하다 딸(린)이 내보이는 똑같이 닮은 학대의 흔적을 보고 세상 어느 누구보다 자신을 닮은 딸(린)로 느낀다.


3. 쇼타(오빠)가 도둑질 후 도망가다 낙상하는 장면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쇼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껌딱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동생(린)이 자신을 보고 배운 손동작 후 물건을 훔치자 상점 직원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소란을 피우며 물건을 훔쳐 달아난다.

동생을 아끼는 마음에 죄를 대신하는 오빠(쇼타)의 행동은 뒤에 있을 엄마(노부요)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4. 아빠(오사부)를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탄 아들(쇼타)

쇼타는 아빠(오사부)와 누워 물어본다. '자신을 버리고 도주하려고 했냐고'. 오사부는 한참 후에 '그랬었지'라고 대답한다. 이제 아빠에서 아저씨로 돌아간다는 오사부는 쇼타를 버스에 태워 돌려보낸다. 쇼타는 오사부를 쳐다보지 않고 이야기한다. '물건을 훔쳐 도망갈 때 일부러 잡혔던 거라고'. 이후 버스에 탄 쇼타는 떠나가고 오사부는 미친 듯이 아들을 쫒아간다. 쇼타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쳐다보지 않다가 한참 후에 창문을 통해 뒤를 돌아본다.

영화에서 가장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변명하지 않고 '그랬었지'라고 인정한 아빠(오사부)의 진심을 이해하기로 한 듯 쇼타는 선의의 거짓말로 일부러 잡혔다고 한다. 아빠라고 불리고 싶었던 오사부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쇼타는 자기가 먼저 가족을 버리려고 했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자신에게 짐 지우는 것이 가족이 아닐까?


5. 감옥에서 엄마(노부요)

사회에서 명명한 죄를 혼자 짊어지기로 한 엄마(노부요)는 아빠(오사부)와 쇼타를 함께 부른다. 쇼타에게 어디서 그를 데려오고 어떻게 하면  그의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오사부를 설득한다. '쇼타가 잘 되는 길은 그들이 놓아주는 거라고'. 영화를 보는 이들은 해피앤딩을 꿈꾼다. 그들이 다시 가족으로 살아가길. 엄마(노부요)도 아빠(오사부)도 마음 한편에 그런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노부요)는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상대에게 자신의 욕심을 강요함이 아니고 자유를 주는 것이라는 듯 이야기한다.


6. 할머니의 장례

화장 비용이 없다며 그들은 할머니의 시신을 집에다 묻는다. 나중에 이것이 알려지며 노부요에게는 시신 유기죄도 추가된다. 아키(손녀)를 데려다 키우며 부모에게서 삥을 뜯는 할머니, 돈을 벌기 위해 홍등가에서 일하는 아키, 오사부가 다리를 다치자 산재보험금에 기뻐하는 가족들, 죽은 할머니가 삥 뜯은 돈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노부요와 오사부. 그들을 보는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한 속물은 없을 것으로 비친다. 그런데 깊게 생각해 보면 그들을 속물로 보는 우리가 진정 속물이다. 돈을 중심으로 이 가족을 바라보면 세상의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관점에서 돈은 부차적인 것이다. 할머니는 삥 뜯은 돈으로 손녀(아키)와 음식을 나누고 심지어 다 쓰지도 않고 죽는다. 아키는 자해하는 남자의 고통에 울어주고, 오사부는 할머니처럼 자신도 집의 연못에 묻어주라 하며, 노부요는 직장과 딸(린) 중에 린을 선택한다. 어느 하나 자신을 위한 탐욕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돈을 최상위 가치로 놓고 판단할 때 주인공들은 시신 유기범, 유괴범, 절도범이 된다.


7. 노부요와 오사부의 취조 장면

화면에 노부요와 오사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취조받는 얼굴이 잡힌다. 도둑질을 아이들에게 가르친 죄책감을 묻는 질문에 가르칠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는 오사부와 버린 것이 아니라 주운 것이라 대답하며 화면을 응시하는 노부요는 역으로 관객에게 질문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진심으로 자신들처럼 가족을 사랑했는지.


8. 밀개떡을 먹는 린(딸)

주워온 딸(린)이 가족들의 식사 중에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밀개떡을 먹을려냐는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할머니가 먹여주는 밀개떡을 먹는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다 같이 밥을 먹으며 떡을 나누는 행위는 린이 진정으로 식구가 되는 모습이며, 식구란 밥을 같이 먹는 존재라는 의미를 되새겨준다. 


9. 거울 앞에 린과 아키

오사부(아빠)는 쇼타에게 자신의 본명 쇼타를 물려주었고 아키는 유리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며 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후 거울 앞에서 린을 감싸 안은채 자신의 본명을 말해준다. 자신의 본명을 이름으로 쓰길 넌지시 린에게 묻고 린이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든다는 아이를 더 따뜻하게 보듬아 준다.

부모가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는 행위는 내가 꿈꿨던 모든 행복과 즐거움이 자식에게서 이뤄지기를 바라는 소망 아닐까 한다. 물론 자식에게는 다른 이름을 가지듯이 각자의 길이 있고 자유가 있다. 다른 관객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빠로 불리기를 바라던 오사부와 그의 본명을 물려받은 쇼타의 헤어짐이 어느 장면보다 안타까웠던 이유는 이름을 통해 누구보다도 연이 깊었기 때문 아닐까 한다.


총평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훌륭하다. 그가 만든 가족에 관한 영화들은 '가슴 먹먹함'과 동의어 같다. 이번 영화처럼 가슴 먹먹함을 자아내는 영화는 흔치 않고 권위 있는 상을 타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사회 통념상 인정되지 않는 가족의 형태로 가족이란 무엇인지 묻고 있는 영화 '어느 가족'은 감독의 전작들보다 더욱 완성된 모습이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폭풍이 지나가고', '어느 가족'으로 이어지는 감독의 가족 시리즈 영화는 차츰 가족의 형태를 해체해 나가며 가족의 의미를 탐구한다. 그 과정 속에 영화 '어느 가족'은 완성태로 보이며 더 이상 보여 줄 것이 없지 않나 하는 감탄사를 자아낸다. 하지만 감독 영화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감동을 준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걸어도 걸어도'를 선택한다. 영화적 구성과 스토리 전개로 평가하면 '어느 가족'은 정말 훌륭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느껴지는 '가슴 먹먹함' 그 자체는 '걸어도 걸어도'를 범접할 수 없다.

황금종려상을 수상 할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경쟁작(비교하자면 '버닝')과 이전 작품 '걸어도 걸어도'를 놓고 보면 역시 상을 탄다는 것은 운이라는 요소를 무시 못하는 것 같다. 만약 심사위원이 남녀 동수였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기 너무나 어려운 시대에 가족의 소중함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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