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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호 Oct 16. 2020

[도망친 여자] 해설 2

홍상수의 끊임없는 차이와 반복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 있다.

진짜 있는 그게 뭘까?

진심을 표현하는 말일까?

타인을 대하는 표정일까?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행동일까?


홍상수는 답한다.

온갖 변화 속에서도

네가 반복적으로 하는

그게 진짜고 진심이고

존재하는 거라고.


주인공 김민희는 남편이 출장 갔다는 핑계로 세명의 친구를 만난다. 사랑이 지극해서 한시도 떨어져 본 적 없는데 이번이 처음이라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증명할 바 없는 이유를 말한다. 그것도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서로 다른 세명의 친구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계속 말하니 변명 같고 거짓말 같다. 혹여 남편과의 불화로 도망치듯 친구들을 만나며 떠도는 건 아닐까? 친구들과의 만남은 계속 변하는 상황 속에서 반복적인 무언가를 자아낸다. 이 글에서는 각각의 상황 속에서 표현해내는 것들을 해설해 보려 한다.





1. 첫 번째 친구 (장면 1)

한적한 교외에 거주하는 친구. 밭을 가꾸는 와중에 20대 젊은 이웃 여자가 다가와 오늘 면접 보러 간다고 한다. 화면에 등을 등지고 이야기하는 친구는 젊은이에게 응원의 말을 보탠다. 좋은 말들이 오가지만 표정을 볼 수 없기에 진심인지 알 수 없는 상투적 표현으로 들린다. 대화가 끝나고 친구는 등을 돌려, 가는 이를 쳐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과 함께...


2. 첫 번째 친구 (장면 2)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홍상수 트레이드 마크인 술과 대화로 이어진다.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는 주인공. 송아지의 눈망울을 보면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뱅뱅 돌아 그래도 고기가 맛있다고 한다. 송아지를 생각하며 채식주의를 말하는 그녀가 본래 모습일까, 아니면 고기를 맛있게 먹는 행동이 그녀의 진심을 대변할까? 알 수 없다.



3 첫 번째 친구 (장면 3)

새로 이사 왔다는 이웃 남자가 등을 등지고 등장한다. 도둑고양이 때문에 왔다고 한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니 계속 동네를 배회하고,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와이프가 마당 앞을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이웃 남자는 정중하게 부탁하지만, 여자는 고양이도 살 권리가 있지 않냐며 거절한다. 이웃 남자는 재차 사람이 우선이지 않냐고 반문한다.


사정을 호소하는 남자 말의 이면에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도둑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 피력되어있고, 이에 반하여 유기 고양이가 살 수 있게 밥을 주는 행위는 옳다는 여자의 주장이다. 도덕적 판단에 옳고 그름이 존재하기 힘들듯이, 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안 준다는 말은 답답할 정도로 언쟁 속에 단 한 번도 발화되지 않는다. 오직 서로에 대한 도덕적 입장 차이만 있게 된다.


'도둑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와이프가 있어요.'라는 이웃 남자의 말의 이면에는 진짜 하고자 하는 말이 따로 있고, 유기 고양이도 밥 먹을 권리가 있다는 여자의 말도 속내는 '고양이에게 계속 밥 줄 거예요.'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표정은 통제 변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표면적인 말도 진짜가 아니고 표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있는 것이라고는 서로에 대한 차이뿐이다.


4. 첫 번째 친구 (장면 4)

면접 보러 간 젊은 이웃이 친구 집 밖에서 담배 피우고 있다. 밤 중에 혼자 있는 모습이 cctv에 녹화되고 있고 그것을 본 김민희는 친구에게 무섭게 왜 저러고 있냐고 묻는다.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친구는 면접 보고 온 그녀를 달래주고 오겠다고 한다. cctv를 지켜보는 주인공의 눈에 와락 안겨드는 이웃 그녀가 보인다. cctv에는 대화도 없고 표정도 없으니, 밑도 끝도 없는 철부지의 맥락 없는 행동으로 비친다.



5. 첫 번째 친구 (장면 5)

새벽녘에 잠이 깬 주인공은 친구에게 3층 다락방에 비밀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 친구는 그저 지저분해서 못 들어가게 한 거라며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은 진실일까? 정말 다락방에는 아무것도 없을까?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그곳에는 뭔가 있는 것 아닐까? 진짜 감추려고 하는 것이 있고 눈으로 확인도 가능하지만 그저 친구가 못 들어가게 하는 것 아닐까? 말은 의심스럽다. 표정은 알 수 없다. 행동은 제약된다. 우리는 진짜를 추측만 할 수 있는 걸까? 의문스럽다.





6. 두 번째 친구 (장면 6)

시작도 끝도 집값 이야기다. 예술가라는 타이틀도 현재 집을 1억이나 저렴하게 얻는 데 사용되고, 명품 디자이너의 이름은 기억이 또렷하지만 조선 화가 정선의 이름은 가물가물한 그녀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본인 기억력에 대한 책망도 집 풍경을 말하려다 나왔다. 새로 썸을 타는 남자도 이 집과 연관되어 있다. 그녀는 무대 연출가라는 직업도 2-3년에 한 번씩만 하고 필라테스 강사 일도 생계를 위해서 할 뿐이다. 그녀가 반복적으로 한 것은 집 이야기와 돈을 버는 일이고 남은 것은 통장잔고 10억이다. 진짜 있는 것은 그녀에게 집과 돈이다.





7. 세 번째 친구 (장면 7)

작가로 성공한 남편을 둔 친구이다. 남편의 성공에 대해 직원과 이야기하며 같은 직업군을 가진 사람으로서 부러움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남편의 잘됨과 못됨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본인의 발전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전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변화됨이 '나'를 존재한다는 실존주의적 생각이다.


그녀는 주인공 김민희의 남자를 가로채서 결혼하였다. 우연히 만난 주인공에게 그때 일은 미안하다고 말한다. 미안하다는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녀가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까? 그녀는 정말 변화된 존재일까? 알 수 없다.


8 세 번째 친구 (장면 8)

영화를 본 주인공은 극장을 나왔다. 우연히 입구에 빼앗긴 작가 남편이 등을 지고 서있다. 서로의 대화에는 날이 서있다. 감정의 앙금이 남은 채로 헤어진 사이인가 보다. 남자는 자신을 보러 극장에 왔냐고 끊임없이 돌려 돌려 말한다. 여자는 '아니라고' 그쪽 보려고 온 거 아니라고, '영화 보러 왔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만 남자는 믿지 않고 계속 추궁한다. 여자는 그곳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가려다 발길을 돌린다. 극장으로 들어가 본 영화를 다시 본다.


'아니'라는 말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파도치듯 변화되어 해석되지만 그녀의 '다시 영화 봄'은 정말 영화를 보려 한 그녀의 진심이 엿보인다. 다시 보는 영화 속 화면에는 이전과 같이 우중충한 날씨에 끊임없이 파도치는 반복만 남아 있다.




여기까지 영화의 장면별 해설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주제 편에서 언급했듯이 홍상수 감독이 어떤 위치에서 이러한 장면들을 영화 속에 삽입했는지 말해보려 해요. 각각의 장면들에는 감독 본인의 현실적 처함에 기인한 생각의 반영들로 읽히네요. 그의 사생활에 비판을 했던 분들은 영화의 메시지에 굉장히 불쾌할 수 있고요. 대중들의 비판이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도덕적 힐난이었다면 홍상수의 비판은 고상하고 현학적인 존재론적 돌려 까기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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