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위기는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될 수 있으며 진행돼 왔고 진행될 것이다. 첫째 과잉생산, 둘째 과잉대출, 셋째 과잉 신용. 위기가 도래했을 때는 세 가지 형태가 복합적으로 진행된 상태이지만, 역사에 있어 자본의 진화 단계에 따라 각각의 과정이 도드라지게 눈에 띌 것이며 산업자본, 상업자본, 화폐자본은 순서대로 세 가지 위기의 진앙지가 된다. 두 차례의 위기는 이미 경험되었으며 극복되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저서 '역사의 종말'처럼 사회체제의 진화가 끝나 더 이상의 진보도 없으며 필요도 없다면 좋으련만, 자본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고 필연적 위기도 남아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위기는 언제나 온다.
1929년 대공황은 기업의 과잉생산에서 촉발되었다. 호황인 경제 상황일 때 기업들은 과다경쟁 속에 내몰리며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더 많은 물건 생산으로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 팔리지 않은 물건은 재고로 쌓이며 기업은 도산한다. 극복 방법은 뉴딜과 전쟁이었다. 정부는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공공 일자리를 만들어 주며 가계에서 소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고,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과잉생산된 물자를 소비하고 군수품 생산을 위해 공장이 돌아가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과잉생산된 상품을 인위적으로 유통해 준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뉴딜만으로 대공황은 극복되기 힘들었을 것이며 극복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며 더욱 주기적이고 심화된 침체가 그 후에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 가계의 과잉대출이 발단이었다. 인간의 삶은 의식주를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중 집은 크고 비싸기에 욕망의 집적 태가 되기 십상이며, 땅은 감가상각이 없기에 집값은 경기가 성장해도 오르고 경기가 하락해도 오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재화이다. 그렇기에 부동산 가치 상승에 기반한, 수학적으로 거의 무위험 자산에 근접한 채권을 금융공학으로 발명해 냈다. 결과는 가계의 과잉대출에 따른 은행들의 파산이었다. 이번에도 정부가 나선다. 신용위험의 전이를 막기 위해 돈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듯이 막대한 유동성을 풀었고 사태는 진정되었다. 결과적으로 과잉대출된 돈들은 혁신기업들에 쏠리게 유도되었고 부동산이 아닌 주식이 욕망의 목적지가 되었다. 상품이든 돈이든 고이지 않고 물처럼 흐르게 만들어야 된다. 그것도 거대한 파도가 아닌 의도된 물줄기로 말이다. 만일 양적완화 정책이 없었으면 모든 것이 무너졌을 것이다.
아직 오지 않았고 앞으로 올 수 있는 위기는 국가로부터의 과잉 신용 문제이다. 저금리, 양적완화, 투기 조장은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을 풀었고 이에 도취되어 영구적 준호황 상태가 자본주의에 있어 가능하며 우리가 도달해야 할 유일한 역사의식이 돼버렸다. 장기간의 저금리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완전고용상태를 위한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는 여태까지 옳았고 실제로 다수의 혁신적 테크기업들이 이 기간 동안 전면에 등장하게 된 일은 인류에게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소득 재분배이다. 전체 경제성장에 있어 소비에 의한 생산의 비중보다 투자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지며 자본의 규모를 팽창시켰다. 결론적으로 투자는 승수효과로 인해 성장에 있어 어떤 요인보다 자본 확장에 기여한다.
자본 그 자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에, 실질적인 삶의 풍요는 내팽개치고 오로지 기술혁신만이 우리를 낙원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헛된 구원의 언약을 내렸다. 더 큰 투자는 더 큰 자본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될 것이고 더 커진 수레바퀴에서는 더 큰 부스러기가 떨어질 것이라며 소비로 갈 수 있는 몫조차 빼앗았다. 분명하게 인식해야 될 지점은 소비에 의한 성장보다 투자에 의한 자본 확장이 더욱 크다는 점이다. 기드브로의 성장을 멈춰라는 구호가 광인의 외침으로만 들린다면, 빈자의 처절한 고통 옆에서도 행복할 수 있거나 부자의 옆에서 커다란 부스러기를 기다리면 된다.
화폐도 결국은 상품이다. 인간은 평균적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자제할 수 있는 자는 얻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잃는 것이다. 그런 인간의 평균은 더 많은 욕망이기에 역사에는 흥망성쇠가 필연으로 따르는 것이다. 기업은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해 이익을 늘리려 하고 개인은 집을 더 비싸게 팔아 수익을 얻고 싶어 하며 국가도 화폐를 더 많이 풀어 이득을 보려 한다. 모두 다 자본에 있어서 대상화된 상품이다. 상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상품과 돈의 구조 속에 놓인 인간들의 군상이란 욕망 덩어리이기에, 그러한 평균을 지향하기에, 욕망의 파산은 반복된다. 달리말해 눈앞에 이익이 있는데 가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하기에 고삐가 풀리고 따라서 욕망의 역사는 형태를 달리하여 반복되는 것이다. 동일한 구조 속에 과잉은 필연이다. 과잉이 모순으로 드러날 때만이 진보도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