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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Lee Feb 17. 2016

나, 술래

자폐스펙트럼장애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

J는 술래잡기할 때면, "너, 술래"라고 하는 대신에 "나, 술래"라고 말한다. 다소 괴상하게 들리지만 J에게는 나머지 세상과 소통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운이 좋은 날이면 놀이터에서 J와 술래잡기를 하고 싶어 하는 다른 아이를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그 아이들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놀이친구를 만날 가능성도 낮아진다. 하지만 J는 다른 아이들이 놀아주지 않아도 이상한 시선을 보내도 개의치 않는다.


내가 볼 땐, 자폐증의 장점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 같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복잡한 세상의 관계들과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상처를 받거나 괴로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궁극의 개인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J는 같이 놀기를 원하는 상대를 만나면, 혼신을 다해 놀이에 몰두할 뿐 상대방이 누구인가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는 우리들처럼 가식적이거나 위선적인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자폐성 장애아처럼 순수한 사람이 되어 보았을까? 요즘도 가끔씩 J가  재미있는 장소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면, 떼를 쓰면서, "나는 집에 가기 싫어."라고 하지 않고 "그는 집에 가기 싫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이 현상을 "대명사 전도(pronoun reversal)"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이들이 자신을 "그," "그녀," 혹은 "너"라거나 자신의 이름으로 지칭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그 지속 시간이 비정상적으로 긴 경우 자폐스펙트럼장애(ASD)의 신호가 될 수 있지만 정상적인 언어 발달 과정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유아들에게는 흔한 현상이다.[1] 대명사 전도는 메아리 언어증으로도 불리는 반향언어증(echolalia)과 가까운 현상이다. 반향언어증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동일인에게서 나타나는 경우에는 말되풀이 혹은 동어반복증(palilalia)이라고 부른다. ASD가 있는 경우 약 75%가 반향언어증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SD의 증상 중에는 자발적인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도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반향언어증이 자폐증을 가진 개인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순기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에 수행된 자폐아에 관한 연구에서는 지연된 반향언어증에는 그 맥락에 달려있지만 대화를 하려는 의사를 보이는 것일 수도 있음이 드러나 즉각적인 반향언어증을 치료하려는 행동 변경 프로그램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타 프리스(Uta Frith), 프리잔트(Prizant) 등은 반향언어증을 자폐아가 언어 습득을 포함한 "게슈탈트(gestalt)"[2] 심리작용을 수행하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1990년에 테이저-플러스버그(Tager-Flusberg)와 캘킨스(Calkins)가 문법 획득 연구를 통해 반향언어증은 자폐아가 문법을 발달시키는데 영향을 주지 않음을 발견했다.[3]



1. Gold, Kevin and Brian Scassellati, "Grounded Pronoun Learning and Pronoun Reversal", Yale University (2006)

2. 인간의 정신을 부분이나 요소의 집합이 아니라 전체성이나 구조에 중점을 두고 파악하는 독일의 심리학파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전체성을 가진 정리된 구조를 독일어로 게슈탈트(Gestalt)라고 부른다.

3. https://en.wikipedia.org/wiki/Echol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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