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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2017)

군함도가 아니었으면 좋았을 이야기

by 이멱여행자

재미 0.7/ 연출 0.6/ 배우 0.6/ 각본 0.5/ 만족도 0.5

총 점 2.9 / 5.0


군함을 닮은 탓에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하시마는 나가사키 인근의 탄광 섬으로 20세기 초 일본 제국의 근대화를 견인하면서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 등 근대 도시의 면모와 함께 굉장히 부흥했던 작은 섬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 채 버려져있는 무인도 하시마는 예전에 영화 007 스카이폴에 잠깐 등장하면서 그 독특하면서도 종말론적인 분위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영화적 영감을 주는 공간이 아닌, 실재하는 지옥의 섬이었다.


MBC 무한도전에서 하시마를 다루면서 하시마는 한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 크게 각인됐다. 그리고 때마침 군함도에 대한 영화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살짝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다.


엉뚱한 데서 찾는 군함도의 디테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름에 가볍고 재밌게, 나름 만족스럽게 볼만한 영화다. 류승완식 블록버스터가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고 앞으로도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하시마가 여름 블록버스터처럼 가볍고 재밌게 다뤄도 되는 소재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서 류승완 감독이 직접 뉴스에서 해명할 만큼 사실 고증에 힘쓴 것이 눈에 보이기는 했다. 탄광으로 강제 노역을 끌려가는 과정, 영화를 위해 완전히 제작하고 재현한 하시마의 거리와 갱도의 모습 등 디테일적으로 굉장히 신경 쓴 것이 엿보인다. 열악한 환경의 갱도에서 작업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오프닝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가슴이 찡-해지는 강렬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주인공이 악단장으로 갱도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영화상에서 강제 노역의 서글픔이라든지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 등은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광복군이 등장하고부터는 장르가 무엇인지 불분명해지기 시작하는데, 케이퍼 무비 형식의 탈출극인지, 아니면 잊혀있던 군함도에 대한 고발극인지 점점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분명 엄청난 스케일에 여태까지의 노하우로 무장한 액션신은 분명 여름과 어울리는 재미를 선사하지만 단순히 오락성으로 승부 볼 영화였다면 굳이 군함도라는 무거운 소재를 사용할 것은 또 무엇이었단 말인가.


감독의 열정은 이해가 가지만..

지난날의 작품들을 보건대, 또 언론에 노출된 그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분명 감독이 군함도에 대해서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느껴지는 것은 열정일 뿐, 그의 메시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그 불확실성은 깊은 우려를 낳는다.

무한도전의 이야기가 잊힐 즈음 때마침 개봉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던져준 것은 영화의 큰 순작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친일파 문제, 일제의 만행, 잠깐 등장하는 위안부 문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수동적 노예근성 등 각각 하나의 영화에서 온전히 표현하기도 어려운 문제들을 한 편의 영화에 다 담고 있으니 도저히 감독이 무엇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 집중해서 알아보기 힘들다. 설령 그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쟁점이라고 한들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할 때 그중 하나에 강조점을 찍고 영화를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아무리 하시마를 단순히 이야기의 영감으로만 사용했다고 해도 민감하고 역사적인 소재를 사용할 때는 적어도 역사적 팩트 내에서 창작을 해야 옳다. 하지만 군함도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실재하지 않았던 사건 속에서 일제를 지나치게 악마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마치 일본의 근본 심성이 악랄하다고 오해를 할 정도다. 설령 그러한 묘사를 하고 싶었다 한들 취재하는 과정으로 사례를 손쉽게 찾고 그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다소 과격한 이야기 진행 방식을 선택한 감독의 의중을 알기 어렵다.


남은 이야기

분명 류승완 감독은 고유의 특색으로 질과 흥행을 모두 잡을 수 있는 감독이다. 영화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등을 보면 때로는 무겁고 진중한 액션을, 또 거기에 적절한 풍자를 섞는 등 경중의 밸런스를 적절하게 맞추는 탁월함이 보인다. 하지만 역사를 다룰 때는, 게다가 민감한 사안을 영화로 만들 때는 그 탁월함은 엄청난 섬세함을 요하기 마련이다. 경계는 점점 좁아지고 어느 한 쪽으로 선을 넘는 순간 비난의 화살은 피할 길이 없다. 나는 오늘 분명 재밌는 영화를 보고 왔지만, 이 영화가 군함도가 아니었다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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