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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2017)

인간 선의에 대한 치열한 믿음

by 이멱여행자

재미 1.0/ 연출 1.0/ 배우 0.8/ 각본 1.0/ 만족도 1.0
총 점 4.8 / 5.0


기억의 불완전성, 상징의 완성, 꿈의 설계, 그리고 오차원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에 대한 서사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사물을 통해 이야기하는 이 시대의 천재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그가 처음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그것도 여태까지 흔히 다뤄지지 않았던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의아한 생각을 가졌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3년 만에 돌아온 그의 신작, 덩케르크. 의아함과는 달리 영화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본능에 대하여

절망적인 해변 앞으로 위태롭게 뻗어있는 잔교는 40만 영불 연합군의 유일한 생명줄이다. 적의 폭격에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는 잔교는 적군 폭격기의 손쉬운 표적이 됨에도 그 위는 생존하기 위해 조밀 조밀하게 몰려있는 병사들로 가득하다. 생존과 죽음이 혼재되어 있는 잔교는 역설의 공간이다.

잔교에서 벗어나 해변으로, 아니 해변을 벗어나 덩케르크 전체가 죽음과 생존의 역설로 가득하다. 집(home)이 눈으로 보일 만큼 좁은 도버 해협이지만 채 손에 닿지 않는다. 뒤로는 독일군이 진격 중이고, 위로는 공군의 폭격이 끊이지 않는다. 어렵사리 바다로 나갔어도 상황은 여전하다. 적의 유-보트는 해저의 고요한 포식자다. 말 그대로 죽음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 병사들의 얼굴에도 죽음은 드리어있다. 살고자 하는 몇몇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기력이 만연하며 그 누구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지 않는다. 덩케르크 해변은 죽어있는 산 자들의 공간이다.

그들의 생환은 오히려 삶의 공간에서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드는 민간 어선들의 덕분이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영국 해안의 수많은 마을들에서 단순히 배를 내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그들의 자식들을 구출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한다. 어렵사리 군함에 구출되었지만 이마저도 어뢰에 맞아 격침되는 상황 속에서 선실에 갇혀 죽음을 앞둔 이들을 구하는 것 역시 갑판에 나와있던 병사다. 선실 안에서 탈출구를 미리 확인하고 자리 잡았음에도 그런 행동은 생존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삶 속의 사람들이 죽음의 사람들에게 생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태까지 수많은 전쟁영화에서 살고자 하는 본능은 주로 다뤄지는 단골 소재였다. 하지만 덩케르크는 죽음을 바라보는 산 자의 살리고자 하는 본능을 이야기한다. 이는 곳 인간의 선한 마음에 대해 감독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어쩌면 개인의 생존만으로 가득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현실 세계에 대한 감독의 작은 소망이 투영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것은 다시 올라가는 것을 배우기 위함이다."

추락과 성공의 이야기는 감독의 작품관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이는 실패와 성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 중간 과정에 대한 함의를 담고 있다. 위대한 슈퍼히어로의 절망적인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위와 같은 대사가 두 번씩이나 강조되면서 나타난다. 추락과 상승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는 마지막의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이것은 결국 추락의 절망에 빠지지 않고 버틴다면 언젠가 다시 상승하리라는 놀란의 믿음이 강하게 드러나있는 것 아닐까.

이러한 서사는 덩케르크에서도 사용된다.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패배의 치욕감이 찾아온 병사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고향의 사람들, 그리고 추락하는 전투기를 성공적으로 착륙시키는 영국군 조종사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영화의 끝을 장식하는 처칠 수상의 연설 내용이 동굴에 떨어져 절망에 빠진 어린 브루스 웨인을 다독이는 아버지 토마스 웨인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끝으로

예상한 바를 적절히 보여주는 것도 좋은 감독의 역량이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언제나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을 대단한 수준으로 묘사한다. 누구도 다루지 않은 소재와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그럼에도 영화의 텐션과 짜임새에서 완벽에 가까운 수준을 보여주는 그는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메멘토에서부터 수많은 영화를 접했음에도 언제나 새로운 영화가 궁금해지고 기다려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을 감히 21세기 최고의 영화감독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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