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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Sep 26. 2017

04 예류지질공원 & 지우펀

세계일주 3일차 : 타이완, 타이베이 3일차

3일차

타이완

타이베이


예류지질공원

대만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계획으로는 동북쪽 근교(예류-시펀-지우펀)를 여행하려 했는데, 세상에나, 계획을 짤 때 위치랑 거리만 보고 그렇게 묶어서 가면 편하겠거니 생각만 하고 교통을 알아보지 않아 문제가 생긴 것이다. 첫 번째 도착지인 예류 지질공원을 가는 버스 안에서 다음으로 생각했던 시펀(shifen)에 가는 교통 편을 찾으니, 웬걸, 세 시간이나 걸린다고 나오지 않는가. 게다가 가장 편한 길을 찾으니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가 기차를 타라고 알려주는 구글 지도. 사람들이 예스진지를 묶어서 갈 때 기차를 이용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왜 이렇게 바보 같은 계획을 했을까 생각하다 보니, 예류에 도착했다. 작은 어촌 마을 입구에서 사람들과 함께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예류 지질공원의 입구가 나왔다.

예류 지질공원은 흔히 버섯바위라고 부르는 기암으로 유명하다. 다른 대만 관광지처럼 한국 관광객이 굉장히 많았는데, 첫 느낌은 약간 제주도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기암 지대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곳이 제주도 뿐 이었으니.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공원을 둘러보니 크게 놀랍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예류가 부족하기보다는 제주도가 생각보다 뛰어난 관광지인 탓이었다. 바람에 풍화되어 허리 부분이 계속 얇아지는 버섯바위 지대가 신기하기는 했는데 예전에 제주도를 갔을 때처럼 감탄이 절로 나오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기대가 너무 커졌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 수도 있다(가령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든지, 전 날의 피로가 너무 많이 쌓여있었다든지)

물론 타이베이만의 독특한 지형이다. 자연스럽게 제주도와 비교하게 되긴 했지만 제주도에서 볼 수 없는 모습임은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류를 방문한 것이 시간낭비였다거나, 후회되지는 않았다. 비록 기대했던 만큼 크게 감동을 받지는 못했지만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스스로의 감상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여행의 진정한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 시간, 한 시간 반 정도 구경한 다음에 세븐일레븐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지우펀(jiufen)으로 향했다. 시펀은 그냥 포기했다. 언젠가 다시 갈 날이 있겠지.


지우펀

타이베이에서 곱게 출발했으면 한 시간이면 갈 거리를 굳이 예류에서 가는 바람에 세 시간이나 걸려버렸다. 게다가 시내를 나가기까지 사람들이 오르기만 하고 도통 내리질 않아 버스는 점점 가득 차 갔다. 예류에서 나가는 도로가 워낙 산길이고 오르막, 내리막, 커브까지 겹쳐있어서 다리와 허리를 혹사시키는 여정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한 시간 가까이를 나간 뒤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서 내리고 한 30분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내가 길을 잃었나",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버스를 잘못 내린 건가 싶으면서 십분, 이십분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 버스가 나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달려서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분노를 참으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지, 고민하다가 이곳을 출발지로 찍고 지도를 다시 검색하니 다른 버스 노선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조금 걸어서 다른 정류장으로 가서 기다리니 곧 기대하던 버스가 다가왔다. 배낭여행은 긍정의 마음으로 시작해서 긍정의 마음으로 끝난다고 했던가, 그래도 다른 짐 없이 카메라 가방만 있는 걸 감사하게, 또 색다른 곳에 떨어져서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해준 점에 또 감사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는 그래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다른 버스를 타니 약 삼십 분 후 지우펀에 도착했다. 폭우와 함께.

비가 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서 미리 우산을 준비해 갔지만 날씨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어둑어둑해져서 애써 가져간 필름 카메라는 사용하지도 못했고 이미 짜증이 이만큼 올라온 상태에서 앞으로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하나, 싶은 생각에 더 짜증이 솟구치려는 순간 비가 그쳤다. 잠깐 멈춰 서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했고, 다행히 그 이후로 우산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혼자 온 여행에서 상점가에는 큰 목적이 없었고 차나 마시고 휴식하면서 센과 치히로를 느껴볼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카메라 들고 슬슬 걸으면서 과거 부흥했던 탄광촌을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눅눅한 느낌이 싫었지만 걷다 보니 촉촉한 질감에 되려 기분이 좋아졌다. 하루종일 걷고 서서 가는 바람에 피로가 누적된 다리를 쉬어줄 겸 영화 비정성시에 나왔던 찻집에 들러 우롱차와 간단한 저녁으로 만두를 먹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 바람과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시니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깨끗이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찻집에서 잠시 휴식하며 홍등이 피어오르기를 기다렸다.

지우펀은 원래 탄광촌이었지만 폐광이 된 후 쇠락하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영화 비정성시가 크게 주목받으면서 그 배경이었던 지우펀도 다시 한 번 각광받게 되었고 이후에 우리나라 드라마 온에어에도 나오고,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로 사용되면서 이제 지우펀은 대만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었다.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지우펀 수치로의 가파른 계단길에는 홍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모두가 이 길에서 붉은 꽃을 기다리며 순간을 놓칠까,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이곳까지 오느라 너무 힘들었고 피로는 극에 달했지만 은은하고 달달한 향이 나는 따뜻한 우롱차 한 잔에, 또 밝게 불타오르는 홍등의 따뜻한 불빛에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굉장히 충만해진 마음을 안고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거기에 덤으로 타이베이에 도착해 내린 곳에 있던 화려한 도교 사원까지 뭔가 힘들었던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주는 것 같았다. 그 옆에 있던 라오허 야시장에서 뭔가 먹으면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홍콩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빠르게 빠르게 구경만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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