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9일차 : 인도 1일차
한때 British Raj(영국령 인도)의 중심지였던 콜카타. 동양 최초의 지하철이 들어서고, 최초의 서양식 박물관도 만들어지는 등 아시아 서구화의 최전선에 있었던 도시의 시간은 19세기에 그대로 멈춰있었다. 거리에 버려져있는 온갖 쓰레기들, 작동하지 않는 신호등, 구걸하는 걸인들 등. 인도의 첫 모습에 우리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의 시스템은 어디로 갔는가. 마치 도시의 생명력은 19세기 언저리 어딘가로 보내버린 채 지금의 도시는 죽어있는 듯하다.
콜카타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빅토리아 메모리얼을 가장 먼저 보러 갔지만 충격적인 인상은 이곳에서도 계속됐다. 대영 제국이 타지마할에 범접할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기념관은 드넓은 공터 위에 마치 버려진 것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공원이 엉성하게 조성되어 있기는 했지만 쓰레기가 나뒹구는 것은 기본이요, 정원도 너무 엉성해서 차마 정원이라고 부르기 창피한 수준이었다. 비록 제국주의의 잔재이지만 한때 빅토리아 여왕의 보석이었던 인도의 중심지로써 영국과 인도가 혼재되어있는 그런 도시의 모습과 기념관을 기대했었는데, 나의 기대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도시를 느끼기 위해 시내 중심지까지 3, 40여 분 정도 걸었는데 혼잡한 거리 속에서 마구잡이로 들려오는 온갖 굉음과 시선 폭력들, 그리고 삐끼들의 손길에 정말 공황장애라도 걸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조금은 한적한 지역으로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우리가 들어선 지역은 옛 영국 식민지 시절의 정부 건물 등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이쪽은 나름 정비가 잘 되어있는 편이기도 했고 건물들의 상태도 양호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건물들과 거리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여태까지 식민지 시기의 건물들은 다른 도시들에서 많이 봐왔지만 콜카타의 건물은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멋졌다. 규모와 정교함 면에서 상하이나 톈진, 홍콩 등과 비교할 수 없었다. 인도를 빅토리아 여왕의 보석이라고 묘사했을 정도니, 신경을 쓴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점은 아직도 건물들을 그 당시와 같은 모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려 150년 이상 된 건물을 큰 내부 공사 없이 사용한다니... 이걸 원건물에 대한 예의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그저 공사할 의지가 없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애초에 우리는 인도를 우리의 상식 선으로 판단하려 들면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을 잊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콜카타는 많은 실망을 주기도 했지만 인도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도시였다. 오히려 그 실망은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안일한 이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면에서 처음부터 나를 힘들게 했지만 한 가지 값진 교훈을 준 게 있다면 '인도는 정말 다르다'라는 점이다. 앞으로의 시간은 17일.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대되기도 하는 진짜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