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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Oct 06. 2017

17 델리(4) : 떠나지 못하는 델리 & 라즈가트

세계일주 15-16일차, 인도 7-8일차


혼란스러웠던 델리를 떠나는 날이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굉장히 들떠 있었다. 델리가 나쁜 곳은 아니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과 우리를 귀찮게 하는 릭샤왈라들, 사기꾼들의 손아귀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음 행선지인 자이살메르는 어딘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지 않을까, 환상을 품게 됐다. 여전히 인도지만, 아무래도 색채의 나라 라자스탄이지 않은가. 그 중에서도 자이살메르는 황금의 도시로 불리며 불타는 사막의 로망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자이살메르, 하지만 계획과 로망이 흐트러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사실 장황하게 우리가 어떻게 기차를 놓치게 됐는지에 대해 적어놨었는데 그 이유가 뭐가 중요하리...

1) 교통권을 예매해주는 대행업소에서 예상보다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고,
2) 하우즈 카스를 다녀오는데 릭샤왈라와 싸우는 바람에 예상외의 도보 시간이 추가됐고,
3) 급하게 숙소로 돌아와서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올드 델리 역으로 릭샤를 타고 갔는데 말도 안되는 교통체증에 발이 묶였고,
4) 기차는 때마침 정시에 출발했을 뿐이다.

덕분에 비싼 돈 주고 산 교통권 중 자이살메르행 기차를 날릴 수 밖에 없었고, 델리에서의 하루 숙박 비용도 늘어놨고, 뒤에 묶여있는 교통권들 때문에 자이살메르를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한 몸 편하자고 사기인 걸 알고도 예매 대행을 이용한 우리의 안이함이 모든 계획을 망친 셈이었다. 누굴 탓하랴, 모두 나의 업보려니 생각해야지.

도로에 멈춰서 움직일 줄을 모르는 릭샤에서 뛰어내린 우리는 20키로 가까이 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2키로 가까운 거리를 뛰어야 했다.  이마에 땀은 송글송글 맺히고, 다리는 저려왔다. 한 발 늦게 부랴부랴 올드델리 역에 도착한 우리는 자이살메르 행 기차가 이미 떠난 것을 확인하고 망연자실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급하게 델리에서 하루 더 머무를 방을 찾았다.

화가 정말 너무 치밀어올랐지만 베개에 대고 소리 몇 번 지르고 침대에 누으니 기분은 좀 나아졌다. 어찌됐든 이미 지나간 기차였다. 단지 정말 가고 싶었던 황금의 도시 자이살메르를 못 가게 됐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그래서 우리는 자이살메르 바로 다음 일정이었던 조드푸르로 하루정도(정확히는 12시간정도) 일찍 도착하는 일정으로 변경했고 델리에서 졸지에 하루를 더 보내게 됐다


델리에서의 진짜 마지막 날, 뭔가 다른 곳을 갈 수도 있었지만 이 도시에 질려버린 우리는 와이파이를 잡아 기차도 예약할 겸 코넛 플레이스의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다행히 바로 빈 좌석을 예매한 후 아늑한 오아시스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으며 여유 아닌 여유를 즐겼다. 그래도 좀 어딘가 한 군데는 더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여행책자를 다시 한 번 살펴봤다. 마침 간디의 화장터가 있는 라즈가트(의미 : 왕의 무덤)가 눈에 띄었다.

왕의 무덤, 라즈가트
저 너머에 간디의 화장터가 있다

라즈가트는 델리에서 드물게 평화로운 곳이었다. 사실 화장터보다는 총격을 받고 사망한 장소를 가고 싶었는데 건너편의 간디기념관이 어딘지를 찾지 못해 가지 못했다. 하지만 화장터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뜨거운 감정이 올라왔다. 길가에는 생전에 간디가 말했던 여러 말들을 적어놨는데 가슴에 와닿는 글들이 많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인으로 칭송받는 간디, 제대로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참 알고 싶은 사람이다.

“오, 신이시여”

라즈가트 중심의 간디 화장터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켜져있고 석단의 정면에는 간디가 마지막 순간 말했다는 "오 신이시여"라는 말이 힌디로 적혀있다. 그 외에도 인디라 간디(참고로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인 인디라 간디는 마하트마 간디와 전혀 관련이 없다) 등 근대 인도의 중요 정치인들의 화장터도 라즈가트 단지 안에 있으니 여유롭게 산책하듯 돌아다니며 사색에 빠지기 좋은 곳이다.  

이번에는 늦지 않게 기차역에 제대로 도착했다. 무려 두 시간이나 일찍. 그래도 맥도날드에서 저녁을 느긋하게 해결하고 이래 저래 있으니 금방 기차시간이 됐다. 제 때 예약을 하지 못한 탓에 저번에 탔던 3AC등급보다 낮은 슬리퍼 칸을 타야했다.

좌석에 대해 잠깐 첨언하자면, 정말 다시는 타고 싶지 않던 슬리퍼 칸이었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슬리퍼 칸은 승객들이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고 달리는데, 객차의 문을 열고 달리는 탓에 객차 내 공기 중에 먼지가 정말 장난 아니다. 코를 뭐로 덮고 자지 않으면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슬리퍼 칸을 주로 이용한다는데 조금 돈을 더 주더라도 조금 부지런히 예약해서 꼭 AC칸을 타도록 하자.

슬리퍼칸. 돈을 더 주고라도 꼭 AC칸에 타고 싶다. 문을 열어놓고 다녀서 먼지 구덩이 속에서 자야한다는 게 좀 치명적이다

어찌됐든 다음 날 아침 무사히 조드푸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종욱의 도시, 블루시티, 조드푸르. 색채의 나라 여행이 시작됐다.
<이어서>

블루시티 조드푸르의 안 블루한 조드푸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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