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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Oct 04. 2017

16 델리(3) : 꾸뜹 미나르 유적군 & 후마윤 능묘

세계일주 14일차, 인도 6일차

힌두 왕조가 융성하던 시기가 지나고 북부 인도는 이슬람 세력의 거센 공격에 시달린다. 이어지는 위기 끝에 결국 델리는 이슬람 세력에게 넘어가고 마는데 그중 남부 델리는 초기 이슬람 왕조의 중심지였다. 13세기 인도의 첫 이슬람 왕조인 노예왕조는 남부 델리를 중심으로 왕국을 성장시키는데 그 흔적이 현재의 꾸뜹 미나르 유적군이다.

꾸뜹 미나르 유적군

꾸뜹 미나르는 술탄 꾸뜹 우딘이 힌두 왕조를 격파한 기념으로 1193년에 만든 승전의 탑이다. 그 높이가 70여 미터에 달해서 멀리서도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그 높이가 더욱더 실감 난다. 붉은 사암, 사암, 그리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승전의 탑은 꾸뜹 우딘 시절에는 1층까지 밖에 만들지 못했고 이후의 왕들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기록에 의하면 상층부는 지진에 의해 훼손되었다가 다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하층부 표면의 섬세한 조각들은 세월의 흔적을 비껴간 듯 여전히 그 멋을 뽐내고 있다.

꾸뜹 미나르

꾸뜹 미나리 옆에는 인도 최초의 모스크라고 하는 꾸와뜨 울 이슬람 모스크가 있다. 이곳 역시 1193년에 건설된 모스크로 원래 힌두 사원이었던 곳을 파괴하고 그 위에 모스크를 지은 것이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형태가 파괴되고 외벽 일부와 석주들 정도만 남아있지만 남은 유적만으로도 당시의 모스크가 얼마나 멋지고 화려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석주들의 섬세한 조각들을 보다 보면 시간 감각을 잊을 정도다. 모스크의 안뜰에는 알 수 없는 철기둥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꾸뜹 미나르 유적군이 형성되기 한참 전인 4, 5세기 찬드라굽타 시절에 만들어진 철기둥이라고 하는데 철 함량이 너무 높아 긴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 녹이 슬지 않는다고 하는데 현재까지도 제조 방법은 알 수 없다고 한다.

꾸와뜨 울 이슬람 모스크

다른 한 쪽으로 가면 미완성된 형태의 낮고 넓은 탑이 눈에 띈다. 이 탑은 일라이 미나르로 알라우딘 킬지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탑인데, 애초 계획은 꾸뜹 미나르보다 2배가 높은 탑을 짓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전에 25미터까지 밖에 완성하지 못했고, 이후로 공사는 중단됐다고. 아마 너무 터무니없는 공사 계획이었기 때문에 후대에도 완성하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그 외에도 중요 인물들의 무덤들도 있고 이슬람 학교의 유적도 남아있는 등 델리의 초기 이슬람 왕조들의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파괴된 유적 속을 걸어 다니면서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참 묘했다.

일라이 미나르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했다. 꾸뜹 미나르 유적군에서의 감동을 뒤로하고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다. 딱히 여행 책자에서는 추천 코스로 넣어놓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인물과 관련된 곳이라 기대가 많이 됐다. 남부 델리에 있던 우리는 메트로를 타고 다시 델리 중심부로 돌아와 후마윤 왕의 능묘으로 갔다.

후마윤 왕은 무굴 제국의 2대 황제로 무굴 제국 초대 황제인 바부르 황제의 아들이다. 하지만 쿠데타로 인해 왕위를 찬탈당한 후마윤은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등지를 전전하면서 후일을 기약하는데 수년의 피난 생활 끝에 다시 왕위를 되찾고 무굴 제국의 2대 황제에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긴 피난 생활을 모두 보상받기도 전에 후마윤은 실족사하게 되는데 페르시아인이었던 그의 부인의 명령으로 건설된 곳이 바로 후마윤의 무덤이다. 우리의 인도 여행 마지막을 장식할 타지마할에 큰 영향을 준 건축물이기도 하고, 무굴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아크바르 대제의 아버지가 후마윤 왕이라는 점에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단지 안에는 후마윤의 무덤 말고도 다른 귀족들의 무덤도 있는데 메인 건물에 비하면 다소 초라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붉은 사암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후마윤의 무덤은 그 모습이 얼핏 보이는 순간부터가 감동의 시작이다. 때마침 붉게 물들기 시작한 노을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건축물의 붉은 벽을 더 강조하고 중앙의 돔 지붕 끝의 황금 피뢰침(뭐라고 해야하나)은 햇빛에 반사되어 더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덤 주변을 시원하게 흐르는 물줄기들이 마치 이곳을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같이 만들어줬다. 무덤 안에는 후마윤의 석관뿐 아니라 여러 석관들도 있는데, 왕실 가족의 석관과 함께 심지어 이발사의 묘도 있다고 한다.

돌아오면서 친구와 이런 얘기를 했다, "아그라(타지마할)를 가장 마지막으로 놓길 잘했다... 안 그랬으면 이후에 보는 모든 게 다 후져 보일 거 같아." 여행 책자에서 이렇게나 아름다웠던 후마윤의 무덤을 강조하지 않는 이유도 그런 이유 아닐까. 사실 후마윤의 무덤이 타지마할에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사람들의 인식에는 아무래도 타지마할에 가려서 후마윤의 무덤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면 많이 알려지지 않아 이 분위기를 이대로 유지시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석양빛을 받아 붉게 빛나던 무덤의 고즈넉함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아직까지도 그 은은함이 기억에 생생하다. 타지마할처럼 사람이 북적 북적 대서야, 이런 분위기를 절대 만들 수 없지.


해가 거의 다 지고, 우리는 서울로 치면 세종대로 같은 라즈파트로 갔다. 라즈파트는 '왕의 길'이라는 의미로 대통령궁과 인디아게이트를 양 끝으로 하면서 사이에 여러 정부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는 행정구역이다. 해가 완전히 다 지기도 했고 딱히 산책하기에는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인디아게이트의 야경만 보기로 했다.

인디아 게이트

인디아 게이트는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인도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로 그 높이가 매우 높고 위세도 압도적이다. 넓은 대로를 배경으로 높게 솟아 있는 그 모습이 파리의 개선문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굉장히 인도스러운 디자인이기도 했는데, 그 석조 건축물의 질감에서 특징적이었다. 인디아 게이트를 마지막으로 델리에 대해 꽤나 좋은 느낌을 가슴에 품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이어서>

밤의 빠하르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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