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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Jul 17. 2018

14. 융합 : 하나의 여행지, 두 개의 문화 (下)

[H]YBRID


인도, 콜카타
빅토리아 메모리얼

인도는 한 때 ‘빅토리아 여왕의 보석’이라 불리며 대영제국의 식민지 중 가장 소중한 곳이었다. 콜카타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 제국의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제국주의 정책의 최전선에 있었던 영국령 인도(British Raj)의 중심지였다. 캘커타(Calcutta)라는 이름으로 익숙할 이곳은 몇년전 영국의 흔적을 인도식으로 바꾼다는 명분으로 도시의 이름을 콜카타(Kolkata)로 바꿨다.

인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콜카타는 한 때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던 벵골 지역의 중심도시로서 아시아에서 서구 근대화의 중심지였다. 아시아 최초의 지하철과 박물관 등 영국의 영향으로 시내는 다수의 영국식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축물은 빅토리아 여왕을 위해 지은 빅토리아 메모리얼. 아그라의 타지마할에 비견할만한 건물을 만들기 위해 대리석으로 지었다는 빅토리아 메모리얼은 사진 속에서보다 현실에서 그 웅장함이 더 잘드러난다.

하지만 콜카타의 영광은 모두 과거의 것. 인도의 네 번째 도시라는 것이 무색할만큼 도시는 방치된 채, 차츰차츰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인도에서 만날 수 있는 서구식 건물들은 여느 아시아 도시들에서 볼 수 없을 만큼 멋진 외형을 뽐냈지만 군데군데 무너져내린 곳들이 안쓰러울따름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도로와 인도가 파해쳐져 있으면서도 보수 공사가 이뤄지지 않은 곳도 많았다. 거리는 걸인과 알 수 없는 쓰레기로 가득했다. 콜카타는 과거의 영광에 머무른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시간에 침식당하고 있었다.


인도, 파테푸르 시크리

아그라에서 근교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는 파테푸르 시크리는 무굴 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계획했던 새로운 수도였다. 아그라에 수도를 두고 있던 무굴 제국의 악바르 대제는 아들이 생기지 않아 고민이 극심했는데, 예언의 지시를 받아 도시를 세워 천도를 결심한다. 그렇게 수도를 옮기니 정말 아들이 생겼다. 하지만 새로 옮긴 땅이 너무 건조해서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지나치게 많았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악바르 대제는 수도를 다시 아그라로 옮기고, 파테푸르 시크리는 10년의 영광을 뒤로 한채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완전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파테푸르 시크리는 역설적이게도 그 덕분에 거의 온전한 형태로 발굴될 수 있었고, 그렇게 지금 수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여행지로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버림받은 궁전과 모스크의 모습은 처음 영광의 순간처럼 고고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그라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덕분에 사람으로 붐비지도 않아 신비로운 분위기에 취해 파테푸르 시크리를 둘러볼 수 있다. 승리의 문, 자마 마스지드를 비롯해 궁전 구역까지, 화려했던 그 날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지금은 다소 수수한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반긴다. 자마 마스지드는 델리에 있는 것과 거의 유사하지만 안뜰 한가운데 있는 이슬람 성인의 무덤이 약간은 이질적이게도 대리석으로 세워져 있는 것이 다르다. 이슬람 양식과 힌두 양식이 섞여있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궁전 구역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5층 높이의 뼈대만 남은 건물인데, 악바르 대제의 후궁들이 거주하던 건물이다. 다른 건물들과 같이 석조 건축물인데도 설계만큼은 목조 건축물의 양식을 따온 것이라 한눈에 보아도 다른 건물들과 다른 점이 보인다. 넓은 무굴 제국을 통치하면서 이슬람적인 것과 힌두적인 것, 또 중앙아시아적인 것을 모두 흡수하고 통합하길 원했던 악바르 대제의 염원이 파테푸르 시크리의 공기 깊숙이 느껴진다.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

고대 로마부터 가톨릭 바티칸의 시기를 거쳐 현대 이탈리아의 수도에 이르기까지, 로마는 다양한 시간대가 중첩된, 그야말로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그 중에서도 판테온은 고대 로마의 문화와 중세 가톨릭이 융합된 대표적인 사례다.

만신전을 의미하는 판테온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신들을 위한 신전이었다. 로마에서 가톨릭이 국교화되고 로마 제국 멸망 후 가톨릭이 중세에 득세하면서 만신전은 단일 신을 위한 사원으로 탈바꿈했다. 건물을 허물고 그 위에 교회를 다시 지은 것이 아니라, 원상태에서 공간만 성당으로 사용한 덕분에 판테온은 지금까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로마 건축물의 흔치 않은 사례다.

커다란 콘크리트 돔을 머리에 얹고 있는 판테온의 자태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랍다. 천장화와 벽화로 치장하고 있는 기타 교회와 비교하자면 단조롭고 수수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 앞에서 그 누가 시시하다는 감상을 읊조릴수있겠는가. 거대한 석주 위에는 글자 하나가 사람만큼 크게 새겨져 있어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이름들이 현대인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거대한 돔천장은 지지대 하나 없이 온전히 그 기술력 하나로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돔천장 가운데 뚫려있는 작은 구멍 하나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 한줄기는 그 사람이 믿고 있는 신이 누구냐에 따라 그 신성의 주인이 달라지리라. 지금은 만신의 장식들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단일한 상징만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어 이곳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무게감만은 고대 로마 시절의 것을 온전히 유지하고만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시가지
다마스커스 게이트 / 통곡의 벽 / 로마 카르도 막시무스

전 세계에서 가장 신성하면서도 논란적인 곳을 꼽으라면 누구나 예루살렘을 이야기할 것이다. 예루살렘을 두고 일어난 갈등은 구약의 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천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대교는 물론 이슬람, 가톨릭, 개신교 등의 사연이 모두 얽혀있는 예루살렘은 그 갈등의 기간만큼이나 또한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있는 다양성의 땅이다.

성벽으로 둘러쌓여있는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유대인들의 성전시대 유적인 통곡의 벽과 유대왕국 유적부터, 고대 로마 시대의 중심거리(Cardo), 오토만 투르크 시절에 지어진 성벽과 다마스쿠스 게이트 등 시간과 문화를 가로지르는 살아있는, 역사의 용광로다. 실제로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에 속해있지만, 원칙적으로 그 누구의 땅도 아니면서, 내부는 아르메니아 인, 가톨릭, 이슬람, 유대인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인 성전 산은 이슬람 구역에 속해 있어
비무슬림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는 아마 개인의 차가 클 것이다. 땅은 저마다의 아우라가 있다는 믿음 하에 도대체 예루살렘이 무엇이길래, 그 긴 세월동안 수많은 피를 흘리게 했는지,너무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땅의 아우라가 아닌, 사람들의 아우라였다. 예수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곳에 세워진 성분묘 교회에서 느껴진 수많은 사람들의 열기는 비종교인에게도 전달되는 엄청난 에너지였다. 종교는 설명할 수 없기에 종교라고 했던가.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그들의 신실함을 의심했던 지난 세월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짐을 느꼈다. 예루살렘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이슬람 영웅 살라아딘은 “예루살렘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아무것도 아니고, 동시에 전부지요”라고 답한다. 그 짧은 문답에 내가 찾던 진실이 숨어있었다.


한국, 서울 광화문 광장

서울의 정치 문화 중심은 누가 뭐라해도 광화문 광장이다. 조선 개국 초기 정도전이 한양에 수도를 건설한 이래로 광화문 광장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서울, 그리고 조선의 중심지였다. 그렇게 7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광화문은 역사의 축적과 함께 신구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중심지로 거듭났다.

여전히 웅장하게 그 자리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광화문과 경복궁을 한 쪽에 두고, 서울정부청사, 세종문화회관 등은 전근대와 근대를 잇는 광화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그 맞은편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미국 대사관은 한국 보수주의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다. 그와 함께 광화문 광장 자체 역시 다양한 담론이 오고가면서 현대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겨울의 촛불은 광화문 광장의 아고라로서의 역할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한복판에서 수백년의 역사를 한데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박물관처럼 박제되어 단지 여행자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거나, 아니면 완전히 현대화된 곳만이 흔히 만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다. 서울은 먼 과거와 가까운 근대, 현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의 모습까지 모두 섞여있는 독특한 도시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모습이 다소 정돈되지 않아 좋지 않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항상 가슴 깊숙이 울컥하며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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