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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Jul 12. 2018

13. 융합 : 하나의 여행지, 두 개의 문화 (上)

[H]YBRID


인류의 역사는 융합의 역사다. 어느 하나의 문화권은 변두리로 그 영역을 점차적으로 확장한다. 그 과정에서 외래 문화와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일련의 충돌은 그 강세와 강압성에 따라서 때로는 교역이라, 때로는 전쟁이라 기록된다. 그 과정의 폭력성과 자발성의 문제와는 별개로, 문화의 충돌은 융합의 결과를 낳아 이 세계에 다양성을 더한다. 복수의 문화권이 중첩되면서 형성되는 변방의 모습은 내륙 깊숙이 가장 전통적인 모습과는 사뭇 달라 과연 같은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가,기분좋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이번 화에서는 융합의 결과물로 복수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여행지 10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 청더 외팔묘
보타종승지묘
보타종승지묘 / 수미복수지묘 / 보령사

중국 하북성의 청더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의 만주족 황실의 여름별궁(피서산장)이 있던 도시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열하가 바로 이 곳이다. 청더는 청나라의 제2황궁이기도 했던 피서산장 외에도 외팔묘라 불리는 8개의 사찰로 유명하다. 만리장성의 일부가 청더의 피서산장 쪽으로 돌아나가는데, 이 성벽 밖에 지어진 사찰이라 해서 외팔묘라고 불리고, 창건 당시에는 총 12개의 불교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만주족을 비롯한 북방 유목민족들은 티베트 불교를 상당히 좋아했다. 외팔묘 역시 티베트 불교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사찰들이지만 이들은 특이하게도 한족 양식과 융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 보타종승지묘, 수미복수지묘, 보령사 등의 사찰을 보면 외벽은 벽돌을 쌓아 하얗고 붉게 칠한 것이 전형적인 티베트 양식이지만, 지붕의 기와는 전형적인 한족 양식을 띤다. 지배민족인 청 만주족의 티베트 불교 문화와 피지배계층의 다수 민족인 한족의 문화가 융합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중국, 마카오 역사지구
성바울 성당 유적
세나두 광장과 부속건물들

홍콩 옆의 작은 반도, 마카오는 100년동안 영국령이었던 홍콩과 달리 포르투칼령이었다. 그 덕분인지, 탓인지, 그곳에는 지금도 포르투칼풍의 건축물들이 다수 남아있다. 이들이 밀집돼 있는 구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카오 역사지구다. 그 중심의 세나두 광장에 들어서면, 그 때부터 작은 포르투칼이 눈 앞에 펼쳐진다.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자이크 장식부터, 노란빛의 포르투칼풍 건축물들과 온갖 가톨릭 성당들은 과연 이곳이 중국인지 눈을 의심케 한다. 곳곳에 걸려있는 한자 간판과 광동식 장식들이 단지 저 멀리 서역 너머의 건축물들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포르투칼 요리에 영향을 받은 마카오 요리를 부르는 매캐니즈 음식은 마카오에서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융합 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히랄다 종탑 / 성당 내의 콜롬버스 관 / 히랄다 종탑에서 내려다 본 성당 내 정원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기독교 왕국이 이베리아 반도를 재탈환하기 전까지, 남부 스페인은 오랜 기간동안 이슬람 왕국이었다. 리콘기스타의 과정에서 이슬람의 흔적은 가톨릭으로 씻겨져 나갔다. 하지만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 세비야 대성당도 그 증거 중 하나다. 세비야 대성당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고딕 대성당으로 유명한데, 그것은 평행하게 넓게 만드는 이슬람 사원(모스크)의 전통이 반영된 결과다. 세비야 대성당의 명물인 히랄다 종탑은 심지어 모스크의 미나레트를 그대로 재사용한 것이라, 그 모습이 다른 대성당의 종탑과 사뭇 다르다.


캐나다, 몬트리올 아를 광장
Place d’Armes
몬트리올 노트르담 성당을 노려보는 퍼그를 안은 영국 남자
몬트리올 은행을 노려보는 푸들을 안은 프랑스 여자

퀘벡은 꽤 오랜 시간동안 프랑스령 식민지였다. 지금도 퀘벡을 가면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더 많이 듣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쓰는 프랑스어는 마치 미국인과 영국인의 영어가 서로 다른 정도로 본토 불어와 다르게 들린다. 퀘벡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몬트리올은 영어권 문화와 불어권 문화가 절묘하게 섞여있는 도시다.
아름 광장(Place d’Armes)은 두 문화의 충돌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다. 광장을 중심으로 한 쪽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고, 그 맞은 편으로 몬트리올 은행이 있는데, 그 옆에 서있는 작은 동상들이 재밌는 이야기를 연출한다. 광장의 한 쪽에 잉글리시 퍼그를 안고 있는 영국 남자와 푸들을 들고 있는 프랑스 여자가 각각 노트르담 성당과 몬트리올 은행을 노려보고 있다. 이 모습은 대성당이 상징하는 프랑스 문화권과 은행이 상징하는 영어 문화권이 서로 화합할 수 없다는 것을 블랙 코미디로서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퀘벡은 끊임없이 분리독립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엘 푸에블로 역사공원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스페인어가 유독 많이 들렸던 여행지였다. 게스트하우스 가격을 따라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난 곳으로 가니 그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히스페닉 타운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하철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니 들리는 것은 스페인어였고, 보이는 것은 모두 히스페닉계 미국인들이었다. 내가 과연 멕시코에 온 것인지, 미국에 온 것인지 헷갈리는 하루였다.
로스앤젤레스는 서부 골드 러시가 있기 전, 스페인에 의해 먼저 개척됐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라는 이름도 ‘천사의 도시’라는 의미가 짧아진 것으로,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이름이다. 도시를 직접적으로 개척한 자들도 동부의 백인이 아니라, 히스페닉 이주민들이었다. 유니온 역 바로 옆에 있는 엘 푸에블로 역사 공원은 1781년 히스페닉 이주자들의 첫 정착지로, 엘에이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으로 보존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는 남쪽의 라틴 문화와 동쪽의 앵글로 문화가 서로 섞여 만들어진 미국적이면서도 굉장히 비미국적인 장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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