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VERNMENT
국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인류문명의 역사를 대략 6천년정도라고 했을 때, 국가의 탄생은 고작해야 3, 4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존재는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해있고, 더는 국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것은 분명 인류 사회의 가장 고도화된 형태의 국가가 얼마나 강력한 통제력을 갖는지 보여주는 현상일 것이다.
그 핵심에 있는 각 국가의 정부는 사회의 컨트롤타워로서 때로는 권위적으로, 때로는 친근하게 국민들에게 접근하며 사회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청사 건물들은 그러한 정부 내지는 국가의 역사와 성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이번 편에서는 세계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국회를 포함한 정부청사 건물 5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탈리아, 로마 퀴리날레 궁전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만난 퀴리날레 광장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저 여행지 추천목록에 있어서 지도에 찍고 갔을 뿐인 퀴리날레 광장에서 만난 것은 이탈리아의 대통령궁인 퀴리날레 궁전이었다. 순백의 멋드러진 건물 외관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게 뭔가, 기웃거리다가 입구 앞에 있는 경찰을 뒤이어 인지했다. 인터넷을 키고 장소를 확인하니 대통령궁이라더라. 당연한 일이겠지만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고, 안을 기웃거리는 관광객들의 틈에 껴서 혹시 뭐라도 보일까 기웃거릴 따름이었다.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대통령궁의 모습에서 청와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소 신선했던 점은 대통령의 집무실이 시민 공간과 가까이 있었다는 점이다. 건축 구조와 양식의 차이에서 오는 폐쇄성과 개방성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나은지를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목 자체가 비교적 더 폐쇄적이지 않을까. 위치적으로 앞으로 경복궁, 뒤로 북한산을 끼고 있어서 숨어있는 형세인 것에 비해, 퀴리날레 궁전은 트레비 분수 바로 근처, 관광객들이 주로 지나다니는 루트 바로 위에 있었다. 한창 대한민국 행정부의 광화문 시대에 대한 논의가 오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퀴리날레 궁전의 위치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독일, 베를린 붉은 시청사
유럽의 시청사 중에서 독보적으로 기억에 남는 곳은 베를린의 붉은 시청사였다. 아무래도 중앙의 높고 뾰족한 첨탑 모양을 주로 이루는 시청사 중에서도 붉은 벽돌의 뭉툭한 시계탑이 인상적이었나보다. 1861년부터 1869년까지 공사돼 완성된 베를린 시청사는 붉은 외벽 때문에 ‘붉은 시청사’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인상적인 시계탑은 역시나 프랑스의 라온 대성당을 본따 만든 것이라고 한다.
독일과 베를린이 동서로 분열됐던 시기, 붉은 시청은 동베를린의 시청사 역할을 했다. 붉은 외벽은 아무래도 붉은 사회주의 국가의 성격과 썩 잘 어울렸으리라. 독일의 통일 이후에도 계속 해서 독일의 시청으로서 역할하고 있으니, 베를린 시청사는 국가가 네 번이나 교체되는 격변의 시기동안(프로이센-바이마르 공화국-나치 독일-동독-통일 독일) 무려 150년동안 그 자리에서 꿋꿋이 역사의 순간을 지켜본 소중한 역사 유산이다.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아마도 전세계의 국회의사당 건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을 꼽으라면 런던의 국회의사당이 아닐까. 템즈 강변에서 잉글랜드의 의회 역사를 지탱해온 런던의 국회의사당은 영국 뿐만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다. 런던에 와서 가장 처음 보러 간 건축물이기도 한데, 템즈 강변의 멋진 고딕 양식의 의사당은 마치 오래된 궁전처럼 고고하고 우아하다. 거기에 더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탑인 빅벤 시계탑이 마치 거대한 망루처럼 궁전을 지키고 서있다.
다소 놀라운 점은 국회의사당이 다수 가까운 과거인 1870년대에 완성됐다는 사실이다. 고딕 양식의 외형 때문에 훨씬 중세 시기에 완성됐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중세의 의회시설이었던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1834년 화재로 전소된 이후 디자인을 공모했을 때 엘리자베스 양식과 고딕 양식의 기준을 못박아놨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그 역사성이 느껴지는 멋진 의회 건물이 완성되기는 했지만 어느정도는 사기당한 기분이 없지는 않다.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워싱턴은 정부 청사 건물의 건축 박람회장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멋진 정부 건물들이 상당히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단연 연방대법원이다. 가뜩이나 하얗고 거대한 외관에 특히나 날이 좋아 햇볕이 쨍했는데, 눈이 부실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건물이었다. 무엇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치 로마의 신전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었다. 거대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천년이 넘는 세월의 간극을 두고 있는 로마와 워싱턴이었지만, 워싱턴은 마치 제2의 로마를 꿈꾸는 듯 그 중심의 정부 건물을 로마의 모습으로 모방하고 있었다. 그런 국가의 정신과 방향성이 사법 권력의 최고 기관인 대법원 건물에서 느껴진다는 점에서 상당히 기억에 많이 남았다.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the Capitol)
제2의 로마에서 가장 웅장했던 건물은 무엇보다 미국의 국회의사당이다. 워싱턴의 주요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내셔널 몰의 가장 끝에 있고, 높이적으로 가장 높은 캐피털 힐(Capitol Hill)에서 내려다보는 형세의 위치는 국회의사당의 권력을 지리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내셔널몰의 거대한 공원 위의 직선상에 있는 조형물은 국회의사당과 워싱턴 기념탑, 그리고 링컨 기념관 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회의사당의 지위가 여느 주요 건물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셔널몰의 아래에서 약간 올려다보는 정면의 국회의사당은 다소 위압적이면서 경외하게 되는 반면, 주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연방대법원과 국회도서관 쪽의 후면은 그런 느낌이 덜하다.
미국은 영국의 민주주의 정신을 이어받아 그것을 강화함으로써 자유를 획득한 나라다. 개인의 자유는 건국의 이념이고, 국회는 자유민 개개의 자유와 권리를 동시에 보장하고 행사하는 존재다. 자유주의를 국가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나라의 국회가 세계최강자인 미국 대통령의 집무처인 백악관보다 더 인상적인 위치에 있고, 모습을 하고 있는다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