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을 떠났던 날
2016년의 추석, 중국 칭다오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형과 함께 중국을 다녀왔다. 중국여행을 하기에 이보다 좋은 시기가 어디있겠는가. 세계일주 준비를 핑계로 휴학도 했기 때문에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일을 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이 때 2주는 못 나온다고 말해 놓기도 했다. 여행 지역은 톈진과 베이징 일대. 친구들에게 여럿 물어봤지만 휴학생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중국은 내게 익숙한 나라였고, 이미 여행도 여러 번 하지 않았던가.
별다른 걱정없이 칭다오로 날아가 추석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형을 한국으로 보내고 근처의 칭다오 기차역으로 갔다. 차에서 캐리어를 내리고 창구에서 예약했던 표를 받아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부모님의 걱정어린 눈빛을 뒤로 하고 짐 수색을 마친 뒤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갔다. 이제는 뒤를 돌아봐도 부모님이 보이지 않았다. 그 때부터였다. 갑자기 미친 듯이 두려움이 몰려왔다.
중국이 너무 오랜만이었던 탓인가 싶기도 했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패닉의 원인은 처음 해보는 홀로 여행이었다. ‘함께’일 때 몰랐던 ‘혼자’의 무게감은 곧 두려움으로 엄습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혼자 해결해야 했고, 모든 장소를 혼자 찾아가야 했다. 밥조차 혼자 먹어야 했다. 평상시 혼자 하지 않던 것들을 모두 혼자 해결해야 했다. 대화 상대 없는 고독은 맞서야 하는 난제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혼자’의 공포는 생각 이상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두가 결국에 얼마나 미약한 두려움이던가. 경계심 듬뿍 안고 기차에서 내려 맞이한 톈진에서의 첫 날이 생각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숙소는 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 중국어 실력은 녹슬어있었고, 몸은 더 굳어버렸다. 긴장을 날려버릴까,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 목적지까지 조금은 먼 거리였지만 몸을 풀어야 했다. 한시간여 모르는 도시의 골목을 헤맸다. 그제야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이곳의 사람들은 내게 전혀 적대감이 없었고, 이곳은 그저 내가 조금 알지 못하는 동네일 뿐이었다. 카메라를 들어 거리를 찍었다. 비로소 여행이 시작됐다.
혼자하는 내 첫 여행은 그렇게 톈진을 시작으로 10일정도 더 이어졌다. 톈진에 이어 베이징과 친황다오, 청더를 다녀왔다. 혼자라서 불편한 것은 없었고, 혼자라서 불이익을 당한 것도 없었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었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었고, 자고 싶은 곳에서 잘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 급하게 찍을 일도 없었다. 동행의 빈자리에 고독을 벗삼고, 여행지를 동행삼아, 도시의 소음과 대화했다. 거리의 모든 여행자들이 나의 자유로운 피사체들이었다. 여행은 자유로 가득찼다.
“시작이 반이다”는 격언이 있다. 과연 그러한 것이, 처음에는 마냥 두려웠던 일도 막상 맞닥뜨리고 나면 별 거 아닌 일이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군입대하는 첫 날의 떨림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두근거림에 부모님은 먼 길 떠나는 아들, 뭐라도 먹이기 위해 산해진미라도 눈 앞에 대령할 기세지만, 어찌 그 맛이 느껴지기나 하던가. 그 두려움 역시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군대라는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리라. 두려움은 곧 알지못함이고, ‘처음’이란 이름의 두려움 역시 단지 시작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들이다.
혼자 여행하는 것 역시 그렇다. 다녀온 여행의 빈도에 비해서 혼행의 시기가 꽤나 늦어졌던 이유는 주변에 같이 갈 수 있는 여행동반자가 꽤나 많았던 탓도 있었다. 그렇게 혼행의 시기가 왔을 때, 두려움은 역시 나를 피해가지 않았다. 하지만 미지에 대한 긴장감은 익숙함의 멋진 먹잇감일 뿐이다. 그 이후에 찾아오는 진정한 ‘자유’여행의 풍미는 만끽하는 자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