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커리어를 시작한 2010년대 초반에는 트래픽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BEP를 달성하고, 그 이후 영업이익을 내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프로덕트가 뛰어나고 이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늘면 BM은 반드시 따라오니 적자에 연연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마케터에게 요구되는 것도 명확했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유저를 늘릴 수 있는가?'
퍼포먼스 마케팅에 능하고, 바이럴을 만들 수 있으며, MAU 그래프를 우상향시킬 수 있다면 훌륭한 마케터였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성장해왔고요.
하지만 코로나 이후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는 투자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많은 스타트업들이 IPO를 시도했다 철회했습니다. 서비스는 성장하고 있으나 이익을 내고 있지 못한 스타트업들은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폐업과 구조조정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시장의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는가?"에서
"이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로 말이죠.
이제 마케터에게도 완전히 다른 역량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젠 광고 성과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우리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이번 달 신규 가입자 목표를 달성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됐다면, 지금은 "CAC 25% 절감하면서도 양질의 유저를 확보했고, 이들의 3개월 리텐션은 45%로 기존 대비 10%p 상승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케터가 CAC, LTV, Payback Period, Unit Economics 같은 지표를 깊이 이해하고, 이것이 회사의 손익분기점과 현금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죠. (저도 이 부분이 많이 부족합니다.)
마케팅 예산을 단순히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재무 상황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케팅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오너'의 관점을 가져야 하는거죠.
과거에는 마케터가 마케팅 팀만 잘 이끌면 됐습니다. 캠페인을 기획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광고를 집행하는 것이 핵심 업무였죠. 하지만 지금은 마케팅 환경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ATT(App Tracking Transparency)가 도입되고, 구글도 서드파티 쿠키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면서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되었습니다. 과거처럼 유저 데이터를 자유롭게 추적하고 타게팅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광고 플랫폼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각 채널마다 다른 전략이 필요해 졌습니다. Attribution, CRM 같은 마테크 툴도 복잡해졌고, 이 모든 것을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케팅팀만의 역량으로 성과를 내는 것이 불가능해 진거죠.
개발팀과 협업해 서버 투 서버 트래킹을 구축하고, 데이터팀과 함께 퍼스트파티 데이터를 활용한 타게팅 전략을 수립하고, 디자인팀과 각 채널 특성에 맞는 크리에이티브를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디자인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을 준수하면서도 효과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보안팀과 논의해야 하고, CS팀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고객 페인포인트를 파악해야 합니다.
각 직군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을 설득하며, 때로는 이끌 수 있는 크로스펑셔널 리더십.
"우리 팀 일만 하면 돼"가 아니라 "우리 프로덕트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 차별화 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12년간 마케터로 살아오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마케터의 역할이 점점 '비즈니스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 이상 마케팅이 한 부서의 일이 아니라, 회사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된거죠.
저 역시 완벽하지 않지만,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성장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시니어 마케터의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