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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반짝 Mar 02. 2023

추억은 방울방울

 2월 중순, 평일 오후 두 시의 놀이공원은 적당함이 흐른다. 춥지 않은 적당한 날씨와 많지 않은 적당한 인파.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들과 함께 섞여 하루치 추억을 쌓기에 적당한 장소다. 오늘은 놀이공원의 연간회원권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날이다. 지난겨울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우리 가족의 여행 추억을 한 칸 더 채우는 날이었지만, 이제 막 열세 살이 된 딸아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마지막 방문, 가족 추억 쌓기에 방점을 둔 나와 달리 딸아이는 친구와 동행하기를 원했다. 결국, 우리는 딸의 친구와 함께 평일 오후의 놀이공원에 입장했다.     


 놀이공원의 정문에 들어서자 딸아이와 친구는 곧바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지금부터는 둘이서 놀겠다는 뜻. 사전에 딸의 의견을 들었고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지만, 그럼에도 손을 흔들며 유유히 사라지는 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은 미묘했다. 서운함보다는 무거운 감정의 알갱이가 또르르 굴러 나왔다. 커플 아이템으로 준비해 온 똑같은 인형 집게핀을 머리에 꽂고, 친구와 팔짱을 끼고 까치걸음을 뛰며 저만치 앞서가는 열세 살 딸은 모를, 이를테면 가벼운 배신감이었다. 오늘 하루는 성장기 자녀를 둔 미성숙한 엄마의 성장기록이 될 것만 같다.     


 지난가을,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3년간 금기시되었던 학교 소풍이 재개되었다. 장소가 놀이공원으로 확정되고 조가 정해지자 딸은 조원들과 놀이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놀이기구와 동선을 조사하고 소풍 계획을 짰다. 웬만한 회사원들의 제안서 수준으로 완성된 계획표에 딸의 설렘이 투영되었다. 몇 년간 놀이공원의 연간 회원을 하면서도 보지 못했던 들뜬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딸은 친구와의 동행을 허락받고 날짜가 정해지자 몇 날 며칠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며 계획을 짰다. 최종적으로 완성한 계획표에는 놀이공원이 개장하는 오전 10시부터 폐장하는 오후 9시까지의 계획이 그날의 시간을 올올이 품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딸의 계획은 상수인 나의 아침 운동 일정 덕분에 오후 한 시부터 실행되었다. 딸에게는 수용하기 싫은 변수였을지라도 나와 남편, 그리고 딸보다 두 살 어린 아들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한 독립변인이었다. 아침 열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놀이공원이라니, 멀리 용인이나 서울에 있는 놀이공원이 아닌 다음에야 실천하고 싶지 않은 계획이다. 2월 중순의 평일, 지방의 놀이공원. 오후 한나절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딸이 떠나고 남겨진 우리 셋은 마치 처음 와본 놀이공원인 양 길을 헤맸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뭐부터 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했다. 학교 소풍 이후로 익스트림 놀이기구에 푹 빠진 딸과는 달리 비자발적 겁보인 나, 자발적 아드레날린 억제자인 남편, 태생적 겁쟁이인 아들은 겨울의 놀이공원을 뜨겁게 즐기지 못했다. 단지 넷에서 셋이 되었을 뿐인데, 주인이 자리를 비워 오작동을 일으킨 수동 기계들 같았다.     


 우리의 걸음은 빠르게 놀이공원을 누비는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릴없이 놀이공원의 이쪽저쪽을 어슬렁거리다 그나마 만만한 범퍼카에 줄을 섰다. 우리 앞에 줄 선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입장하며 말했다. 

“많이 태워주세요~.” 

아이들의 애교 덕분인지 평소보다 운행 시간이 길었다. 아들이 쫓아와 내 뒤를 받고 남편이 앞서가다 돌아와 내 앞을 받고, 그들을 추격하다 다른 이들을 들이받는 반복 속에서도 범퍼카는 멈추지 않았다. 체감상 5분을 훌쩍 넘긴 것 같았다. ‘수동형 인간’ 세 명은 한나절 놀아야 할 에너지와 즐거움을 이 5분에 모두 쏟아부었다.     

 범퍼카에서의 넘치는 흥분을 길거리에 흘리며 돌아 나올 무렵 풍선 같은 솜사탕을 든 딸과 딸의 친구를 마주쳤다.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인해 반가움이 더 진해졌다. 그러나 딸은 어색한 미소를 띤 얼굴로 손을 흔들며 잰걸음으로 우리를 지나쳤다. 가벼웠던 배신감에 짙은 농도의 잉크가 한 방울 떨어진 것 같았다. 감정의 색이 바뀌었다. ‘남겨진 셋’에 또다시 방점이 찍혔다. 내가 딸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 엄마와 남동생과 셋이서 유원지에 간 날이 떠올랐다. 아빠와 동행하지 않았던 그날의 나들이. 투명한 유리병 속에 켜켜이 재워둔 레몬처럼 마음속 밑단에 잠재운 그날의 나들이가 떠오른 건 왜일까.          



 연보라색 반팔 티셔츠에 노랑과 주황의 큰 꽃무늬로 도배된 쫄반바지를 입은 나는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유원지에 갔다. 왜 아빠와 같이 가지 않는지, 유원지에 가는데 왜 신이 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몰라 초조했다. 흙먼지가 날리고 동물 냄새가 한데 섞인 유원지에 도착해서 우리는 돗자리를 펼쳤다. 엄마는 그대로 돗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고, 나와 남동생은 엄마가 싼 김밥 도시락을 꺼냈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동물 우리와 거리가 꽤 멀었지만 어쩐지 오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도시락의 뚜껑을 열자 김의 비린내가 뒤엉켰다. 김밥을 입에 넣고 소처럼 우물거렸다. 삼켜지지 않는 김밥 때문에 목이 멨다. 잠시 후 눈을 뜬 엄마는 줄어들지 않은 김밥을 보고 화를 냈다. 

“똑바로 먹어! 여기까지 왔는데 뭣들 하는 거야?!” 

김밥을 입에 넣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무리에서 버려진 원숭이 가족처럼 쳐다보는 듯했다. 나들이에 응당 있어야 할 통닭이 없는 돗자리. 한 사람이 빠진 돗자리. 빈 것이 많은 돗자리를 보고 기름 낀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온전한 수로 채워진 그들은 당연하게 먹은 듯한 통닭, 나는 그 기름진 비웃음을 받아내는 액받이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의 화를 받아내기도, 사람들의 비웃음을 견뎌내기도 버거웠던 나는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원지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다른 사람들을 탐독했다. 엄마, 아빠와 아이, 그리고 아이 손에 들린 헬륨 풍선. 놓칠세라 손에 실을 둘둘 말아 쥐고 있는 풍선이 두둥실 떠올라 그 가족들을 감쌌다. 손에 쥔 것 없는 방랑자의 눈에는 그것이 유원지와 가장 이상적인 조합으로 보였다. 한참 동안 사람 구경을 하다 돗자리로 돌아갔다. 엄마마저 없었다. 그새 빈 것이 늘었다. 세 살 어린 남동생은 돗자리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김밥을 먹고 있었다. 

“누나 어디 갔었어?! 누나 없어져서 엄마가 찾으러 갔는데 나 혼자 얼마나 무서웠다고!” 

안 그래도 모자란 돗자리를 텅 비게 만든 것 같아 눈물이 났다. 곧이어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등짝이 후려쳐졌다. 

“말도 안 하고 어딜 갔었어?! 그러다 우리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화장실에 간다고 말했다고, 누구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건 나라고, 뒷말을 삼키려 목울대가 뜨끈했다. 

“화장실 간다고 했는데….” 

도리 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엄마는 나를 안고 한참 동안 내 등을 쓸었다.      


 남은 김밥 도시락을 챙겨 유원지를 나오는 길에 엄마는 솜사탕을 사주었다. 나는 신난다고 했다. 재미있었다고 했다. 집에 가서 아빠한테 자랑하자고 했다. 유리병 안의 레몬 조각처럼 켜켜이 쌓이는 거짓말들. 가만히 내 말을 듣던 엄마는 유원지 입구에 있는 장난감 리어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조악한 장난감들 사이에 둥실 떠 있는 헬륨 풍선을 사서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나는 손에 들린 헬륨 풍선을 보며 기쁘다고 했다. 거짓말의 거짓말로 만든 더께는 무슨 맛이 났을까. 혀가 절여질 만큼 단맛이었을까, 신맛이었을까. 그날 솜사탕은 거짓말처럼 달았다.           



 “엄마, 나도 솜사탕 사줘. 누나보다 큰 거 사줘!” 

질투가 가득 묻은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딸아이의 부재가 누구보다 크게 다가온 것은 아마도 이 녀석이 아닐까. 질투 혹은 질투하는 자신에 대한 짜증. 더불어 밀려드는 심심함. 아들은 지금 파도치는 감정에 멀미를 하는 것 같다. 둥실거리는 커다란 솜사탕을 사 들고 익스트림 놀이기구 쪽으로 가보니 공중에 딸과 딸의 친구가 매달려 있다. 이 땅에서 저 땅으로 허공을 통과해 왔다 갔다 하는 거대한 주황색 원기둥에 매달려 즐거워하는 아이들. 보는 것만으로 아찔해 진짜 멀미가 났다. 운행이 끝나고 벨트를 풀어 헤친 딸은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와 안겼다.

“엄마, 엄마. 이거 진짜 재밌다? 진짜 신나! 진짜 엄마랑 같이 타고 싶은데 엄마는 왜 못 타는 거야? 우리 가족이랑 메가스윙 추억을 못 쌓잖아. 이건 진짜 너무 아쉽다고~.”     


 그날 유원지에서 진짜로 울고 싶었던 건 어쩌면 엄마였을지도 모르겠다. 셋이었지만 그 속에는 아이 둘을 감당해야 했던 혼자인 엄마가 있다. 화목한 가정의 나들이 장으로 상징되는 유원지에서 남편과의 불화를 세상에 들킨 것 같았을 엄마. 엄마는 발가벗겨진 속을 덮으려 곧바로 돗자리에 누워 그대로 눈을 감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넷이 왔어야 할 유원지에 셋이 와서 모두의 마음이 쪼그라든 풍선 같았다. 그날의 빈자리를 메워준 헬륨 풍선은 한동안 내 방 천장에 달라붙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빠에게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았다. 아빠도 풍선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통닭을 시켰고 엄마는 남은 김밥 도시락을 꺼냈다. 통닭과 김밥을 상에 펼쳐 놓고 넷이서 저녁으로 먹었다. 아무 말도 흐르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젤라틴처럼 엉겨붙었다. 풍선은 빵빵한 볼이 핼쑥해질 때까지 천장 모서리에서 자리를 지켰다. 


 “엄마! 우리 연간 회원 연장하자! 다음에 와서 우리 다 같이 메가스윙 타는 거야! 친구랑도 또 오고 싶단 말이야! 연장! 연장!”

딸의 머리에 꽂힌 인형이 살랑살랑 춤을 춘다. 다시 만난 딸은 그새 한 뼘 자란 듯하다. 친구와 둘이서 놀이공원 구석구석을 탐독하며 어딘가 자라서 돌아왔다. 같은 날, 같은 장소, 각자의 추억이 방울방울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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