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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반짝 Mar 18. 2023

숟가락의 교양

 압력솥에 달린 추에서 김이 솟아오른다. 집안은 사과즙을 머금은 돼지고기 냄새로 가득하다. 고깃덩어리 위에 사과 한 알을 쪼개 올린 뒤 통후추를 열다섯 알쯤 뿌리고 된장 한 숟가락을 풀었다. 대파 두 쪽을 잘라 이불처럼 덮었더니 월계수 잎이 빠진 것치고 다행히 누린내는 돌지 않는다. 찬장에서 손님용 수저 두 벌을 꺼내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장미 모양이 조각된 무광의 숟가락은 내 취향이 온전히 반영된 물건이다. 테두리가 레이스 문양인 도자기 접시를 앞접시로 꺼내 들다 제자리에 두었다. 메인 음식인 삼겹살 수육을 어떤 접시에 담을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릇장에는 주요리를 담아낼 두 개의 직사각 플래터 후보가 있다.     


 첫 번째 후보는 영국 시골 정원을 모티브로 한 로맨틱 플라워 패턴이 특징이다. 활짝 핀 장미꽃 패턴에 테두리가 핸드페인팅으로 도금된 ‘황실장미’ 시리즈는 1962년에 론칭해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영국 본차이나(Bone china)의 대표 브랜드다. 그중 우리 집 그릇장을 차지한 접시는 ‘황실장미’의 50주년을 기념해 새롭게 론칭한 시리즈다. 외관은 딸기우유 빛깔로 칠해졌고, 안쪽은 짙은 핑크색의 작은 장미꽃 봉오리들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으며, 테두리는 금박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름하여 ‘뉴황실장미’. 사모님 댁 체리색 장식장 안에서 자리를 지킬 듯한 기존의 ‘황실장미’와는 달리 아기자기한 게 맛이다. ‘뉴황실장미’를 꺼내 들면 빅토리안 드레스를 입고 꽃이 가득한 정원에 앉아 afternoon tea를 즐기는 19세기 영국으로 순간이동하는 것 같다.     

 두 번째 후보는 이탈리아 전통 핸드메이드 도자기다. 숙련된 장인이 높은 다공성을 가진 블랙 클레이를 ‘화이트 마졸리카 마감 공법’으로 빚은 정교한 무늬와 까다로운 형태는 빈티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진흙에 화산재를 섞어 구운 프랑스 도자기처럼 하얀색 유약이 발린 군데군데 비치는 거뭇거뭇함이 매력이다. 접시의 가장자리는 양각과 음각으로 정교하게 새겨진 레이스가 펼쳐져 있다. 손끝으로 만져지는 레이스가 섬세하게 화려하다. 시리즈의 이름마저 ‘레이스’. 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로코코 양식처럼 장식적 예술성의 극치를 달린다. 레이스 접시 위에서 유럽의 고전적 아름다움이 재현된다.     


 그릇을 고르는 사이 김이 빠진 압력솥을 열고 삼겹살 한 덩이를 꺼냈다. 집게를 든 왼손으로 도마 위의 고기를 고정하고 칼을 든 오른손을 놀려 덩어리를 조각냈다. 초대 손님은 0.3mm 두께로 얇아서 느끼하지 않은 수육을 원했다. 그러나 첫 조각부터 0.7mm를 웃도는 수육이 태어났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엄마의 고스톱판 명언이 생각났다. 본래 뜻은 초반에는 돈을 따도 종국에는 점차 다 잃는다는 의미지만, 엄마는 첫 피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 판이 끝날 때까지 피가 붙지 않아 결국엔 피박을 쓴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첫 손을 잘못 놀리면 그 덩어리는 끝까지 0.5mm 아래로는 썰리지 않는다. 첫 고깃덩이는 아이들 몫으로 돌렸다. 새빨간 직사각형 스톤웨어(stonewarw)를 꺼내 고기 조각들을 정렬했다. 선명한 빨간색이 매력인 접시지만, 흙으로 빚은 그릇이라 무겁다는 단점이 오늘따라 더 묵직하게 달라붙는다.      


 끗발이 붙지 않아 수육을 써는 데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간신히 0.4mm에 맞춰 고깃덩어리를 모두 썰어냈다. 선택의 시간. 희끄무레한 살색의 고기는 영국 왕실이 사랑하는 접시보다는 이탈리아 장인이 빚은 도자기와 조화로워 보였다. 메인 요리의 접시가 정해지자 곁가지 음식들의 그릇도 레이스 접시로 선택됐다. 식탁 풍경의 변주를 위해 앞접시는 ‘뉴황실장미’로 골랐다. 초인종이 울린다. 시간에 쫓겨 날뛰는 마음을 동여맸다. 볼에 마늘종 장아찌 국물을 한 컵 붓고 고춧가루 한 숟가락을 풀었다. 미리 씻어둔 참나물을 성기게 썰어 넣고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른 뒤 참깨를 쏟듯 뿌려 살살 버무렸다. 참나물 겉절이를 레이스 샐러드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렸다. 컵을 모아둔 찬장을 열어 하얀 레이스를 띠처럼 두른 유리컵을 4잔 꺼냈다. 장미 문양 수저와 장미꽃 봉오리 앞접시, 그리고 레이스 유리컵이 삼총사처럼 도열했다.     


 레이스에 나란히 뉜 수육은 촉촉했다. 뉴황실장미에 옮겨 담은 치킨은 바삭했다. 레이스 컵에 맥주가 따라지고 장미 모양 수저가 식탁 위를 분주히 옮겨 다닌다. 차 대신 맥주, 케이크 대신 고기로 오랜만에 만난 손님들과 식탁 위 로코코 정원을 거닌다. 배달시킨 생선회의 스티로폼 접시만 눈 감으면 식탁은 ‘로맨틱 빈티지’다. 내 집에 온 손님을 위해, 그들과의 시간을 좀 더 곡진히 하기 위해 다소, 아니 꽤나 부족하지만, 맛과 멋을 차리는 것이 나의 교양이다.          


 엄마 집 숟가락은 늙었다. 내가 열 살 무렵 ‘황실빌라’로 이사하며 새로 장만한 숟가락은 스물여덟 살에 결혼해서 떠나올 때까지 온 식구와 같이 살았다. 은빛 무광의 볼록한 자루를 가진 숟가락. 결혼 후 황실빌라에서 다시 만난 낡은 숟가락은 반가웠다. 그 후로 은빛 무광 숟가락은 엄마와 세 번의 이사를 동행했다. 유려한 곡선의 목은 낮아지고 등은 세월에 긁혔다. 무광이 바래진 자루에는 긴 시간의 때가 들러붙었다. 낯선 집에서 재회한 늙은 숟가락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숟가락은 낯선 집의 때마저 눅진하게 묻히고 나를 맞이했다. 


 집이 바뀔 때마다 짝을 잃고 홀로 남은 숟가락은 엄마 같았다. 엄마는 숟가락이 짝을 잃어도, 숟가락이 사라져도 살림살이를 늘리지 않았다. 가끔 엄마 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아기였던 아이들에겐 티스푼이 쥐어졌다. 아이들이 어른 숟가락을 쓸 만큼 자랐을 무렵에는 나는 젓가락으로 국의 건더기를 건져 먹고 그릇째 국물을 마셔야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새 숟가락을 데려오지 않았다. 사람 수대로 주어지지 않는 숟가락을 무람없이 차리는 엄마의 교양에 얼굴이 홧홧했다.     


 엄마가 여생을 안착하기 위해 이사한 지금의 집에는 내가 혼수로 장만한 수저 10벌이 들어가 있다. 장미 모양 수저가 우리 집의 수저통을 채우면서 서랍장 안에 처박혔던 민무늬 기본 수저가 엄마 집으로 갔다. 뉴황실장미와 레이스를 사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은 ‘한국도자기 웨딩 홈세트’도 지금의 엄마 집으로 보내졌다. 그럼에도 엄마는 황실빌라에서 쓰던 중국풍의 푸른 무늬 그릇을 여전히 쓰고 있다. 단 한 가지 접시만 써야 하는 형벌이 주어진 사람처럼.     


 엄마는 상을 정갈하게 차릴 ‘교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밥을 함께 먹을 ‘식구’가 없는 것이었다. 딸이 결혼해서 다른 도시로 떠나고, 남편이 세상을 등지고, 아들이 결혼으로 독립하면서 엄마에겐 여분의 숟가락이 필요하지 않았다. 새 숟가락을 사 와도 집에서 매일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없으므로 새 숟가락은 무용한 것이었다. 내가 통닭 한 번, 피자 한 번을 참으며 뉴황실장미와 레이스를 한 장 한 장 사 모을 때 엄마는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것보다 생계의 구멍을 메우는 데 치중했다. 내가 식구들의 취향과 그날의 음식에 따라 접시를 고르는 소꿉놀이를 하고 있을 때, 엄마에겐 취향과 음식을 나눌 ‘식구’가 없었다. 시간을 무감하게 때울 고스톱 멤버만 있을 뿐. 엄마에게 새 숟가락은 남루한 처지를 에는 것이었다. 나의 교양은 엄마의 곤궁함을 먹고 자랐다.           


  ‘로코코 정원’의 ‘로맨틱 빈티지’ 식탁에서 내 젓가락이 가장 많이 간 음식은 스티로폼 접시 위의 생선회다. 배달 용기 위에 열 맞춘 생선회는 회백색의 유령 도시 같았지만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접시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화려한 접시들이 식탁을 꾸며주는 것이 아니었다. 다정한 사람들과 다정하게 음식을 공유하는 다정한 시간. 이 다정한 것들이 레이스와 뉴황실장미를 오히려 매만져 주는 것이다. 


 뉴황실장미는 영국 왕실의 사랑을 받는 만큼 몸값이 높다. 왕실이 아닌 우리 집에서는 손님이 여섯 명 이상이면 밥공기와 국공기를 더는 조달할 수 없다. 찬기는 식구 수대로 있어 밑반찬을 4가지 이상 내놓을 수 없고, 아이스크림볼은 2개뿐이라 온 식구가 동시에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다. 화려한 레이스는 유약하여 조금만 부주의해도 이를 날린다. 레이스가 떨어진 부분은 화산재 같은 검은 속내를 그대로 노출한다. 이가 빠진 레이스 접시들을 차곡차곡 쌓으면 어쩐지 중세를 표방하다 실패한 폐건축물 같다. 숟가락에 엄마를 다정하게 담지 못한 나를 이 빠진 레이스가 비웃는다. 재가 섞여 거뭇한 속이 비루하다.          




*

 엄마의 환갑,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엄마의 생일상을 차렸다. 식탁 위는 시대와 국경을 넘나든다. 등갈비찜과 부라타 치즈 샐러드. 수육과 감바스처럼 결이 다른 음식들이 레이스와 뉴황실장미에 담겼다. 동생 부부와 함께 온 엄마 손에는 생선회가 들려 있다. 회를 옮겨 담기 위해 가로 44cm, 세로 32cm의 oval plate를 꺼냈다. 찬장의 한 면을 가를 만큼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접시를 꺼내려고 힘을 쓰는 나를 보고 엄마는 혀를 찼다.

“쯧쯔쯔. 또 또 쓸데없는 짓. 그냥 먹어!”

“엄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댔어!”

“그래. 어차피 설거지는 네가 하는 건데 네 마음대로 해라.”

엄마의 핀잔에도 나는 무구한 아이처럼 레이스 접시에 회를 옮겨 담았다. 스티로폼 접시 위에서 정갈하게 도열해 있던 생선회는 내 손길에 무참히 흐트러졌다. 정렬이 무너진 것은 회뿐만이 아니었다. 직사각 플래터 위에 가로로 뉠지 세로로 뉠지 몰라 조물조물한 수육은 살점이 바스라져 그 형체가 온전치 못했다. 맛과 멋을 부리는 교양만큼 솜씨가 따라주지 않아 번번이 맛도 멋도 놓치고 만다. 엄마는 비웃음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게 예쁘냐?”

“엄마 닮아서 이런 거거든! 아니, 엄마는 새 음식도 누가 먹던 것처럼 차리잖아!”

“아유, 비켜 봐. 이서방, 여기 나랑 식탁 잘 나오게 찍어줘 봐.”

엄마는 나를 사뿐히 밀고는 식탁 앞에 앉아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레이스 접시에 놓인 광어 지느러미가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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