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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반짝 Apr 13. 2023

창문을 열어 주세요

온실 속 화초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는 동네 꽃집에 애니시다가 들어왔다. 가늘고 낭창한 줄기에 해바라기 씨앗을 닮은 작은 초록색 이파리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줄기 끝 꽃대 부분에는 샛노란 꽃이 쌀 튀밥 뭉치처럼 대롱대롱 터져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연두, 초록, 은빛 초록, 짙은 초록, 카키색의 거실 화단에 비비드한 색깔을 집어넣을 봄이 왔다. 관엽식물들이 장악한 녹음의 화단에 꽃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홀린 듯 애니시다 모종으로 내뻗는 손을 멈췄다. ‘지난봄에 산 애니시다가 어떻게 되었더라?’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이성이 웬일로 주인집에 큰소리를 냈다. ‘정신 차려!’ 지난봄에 만오천 원을 들여 산 애니시다는 새로운 꽃을 더 피우지 않은 채 그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완전히 말라 죽었다. 매일같이 들여다보며 겉흙이 마르자마자 빠짐없이 물을 주었지만, 애니시다는 어쩐 일인지 말라 죽어버렸다. 물이 말라 빛이 바랜 초록과 노랑은 흑백 사진 속 정물 같았다. 게다가 지난해 중품 모종이 만오천 원이었던 것에 비해 올해는 가격이 1.5배나 올랐다. 이성이 문간방에서 마당까지 나와 소리쳤다. ‘정신 차려! 이 똥손아!’     


 샛노란 애니시다 대신 한 개 4,000원짜리 노란 마가렛 모종 2개와 자색 마가렛 모종 1개를 샀다. 계란후라이 같은 흰색 목마가렛을 원했지만, 우리 동네 꽃집에서는 몇 년째 만날 수가 없었다. 목질화가 잘 되어 목마가렛이라 불린다는데 우리 집에서도 나무가 되어 줄까? 그동안 우리 집에 온 봄꽃 화분들은 분갈이를 하든 안 하든 달린 꽃을 한 번 피우고는 사그라졌다. 애니시다도, 호주매화도, 보르니아도, 칼란디바도 예외 없이 그랬다. 죄다 사그라지고 마는 것을 알면서도 봄이니까 마가렛을 향해 또 손이 뻗어나간다.      

     


 아침 7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거실로 나오자마자 창문을 모조리 열었다. 벚꽃이 만발한 봄이지만 아침 공기에는 여전히 찬 기운이 서렸다. 밤사이 갇혀 있던 온기가 방랑자처럼 빠져나가고 바깥을 헤매던 찬 공기가 서둘러 들어온다. 냉장고를 열어 계란 두 알을 꺼내고 국그릇에 깨트렸다. 새우젓을 한 티스푼 넣고 생수를 한 컵 부어 저은 뒤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완성된 계란찜을 두 그릇에 나눠 담고 밥을 비벼 식탁에 올렸다. 7시 40분. 서둘러 아이들 방으로 갔다. 곤한 얼굴을 만져줄 새도 없이 목소리로만 아이들을 깨웠다.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온 아이들은 거실을 휘감은 찬 공기에 몸을 말아 넣는다. 

 “엄마, 추워. 창문 닫아 줘.”

 “안 돼. 초록이들 바람 쐬게 해야 돼. 추우면 담요 덮어.”

 “엄마는 식물들이 우리보다 소중하단 거야?”

 “바람 안 통하면 목마가렛 죽어버린다고. 담요 덮고 밥 먹고 학교 갈 준비해.”


 아침 환기 때문에 오늘도 아이들과 한바탕 설전을 펼쳤다. 첫째 아이는 눈을 한 번 흘기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는 좋은 핑곗거리를 찾은 듯 밥그릇을 슬쩍 밀어내고 식탁 위로 널브러진다. 밥그릇을 힐끗 보더니 기어코 한마디를 더 보탠다.

 “나는 계란찜 싫어한다고 했잖아. 난 빵 먹고 싶어.”

 “그건 밥이 아니잖아. 밥이랑 단백질을 먹어야지.”

 둘째 아이의 뭉그적거리는 모습을 못 본 척 한마디를 던져 놓고 화단을 살폈다. 목마른 아이들을 찾아 물을 먹여 주었다. 전날 사들인 목마가렛이 꽃잎을 오동통하게 피운 게 기특해 두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엄지와 검지가 보들보들하다. 비단을 만지면 이런 느낌일까. 시계를 보니 어느덧 7시 50분. 아이들은 늦어도 8시 1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첫째 아이는 밥그릇의 절반을 비웠다. 둘째 아이는 여전히 식탁 위에 뻗은 팔을 베개 삼아 얼굴을 묻고 있다. 밥그릇 안의 숟가락은 미동이 없었다. 잠시 숨을 골랐다. 

 “아직까지 밥 안 먹고 뭐 해?!!” 

 목마가렛의 감촉만 남은 노여움이 부드럽게 식탁으로 뻗어나갔다.     


 한 숟가락 먹고 쉬고, 두 숟가락 먹고 딴생각하고, 세 숟가락 먹고는 배 아프다며 일어서는 데 10분. 양치는커녕 고양이 세수만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가방을 메고 거실로 돌아와 식탁 위에 있는 물병을 집는다. 짧은 팔은 등 뒤의 가방까지 닿지 않아 결국 가방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물병을 꽂는다. 다시 가방을 메고 소파 앞으로 가 양말을 신으려고 등을 구부린다. 가방이 머리 위로 쏠려 가방을 벗고 소파에 앉는다. 양말을 신고 다시 가방을 메고 화장실에 들어가 뻗친 머리에 물을 묻힌다. 현관 앞에서 가방끈에 낀 점퍼의 모자를 꺼내며 운동화를 찾는다. 운동화 끈이 바짝 조여 있어서 발이 안 들어간다고 짜증을 내다가 크록스 슬리퍼를 꺼내 신는다. 현관문을 열다가 뒤돌아서 실내화 가방을 찾아 들고 마스크를 꺼내 쓴다. 현관을 완전히 빠져나가는 데만 남은 10분을 모조리 쓸 것이란 가까운 미래가 눈앞에 그려진다. 효율성을 모르는 동선, 시간 개념을 무시한 채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는 11세 아이의 앞으로의 20분을 가지치기해야만 한다. 

 “빨리 밥 안 먹고 뭐 해?!!”     


 숨을 고르고 내지른 나의 타박에 아이는 “나는 계란찜 싫은데 왜 엄마 마음대로 하면서 잔소리야?” 한마디 말을 내던졌다. 아이의 한마디는 내가 엄마로서 구축한 반듯한 온실의 한쪽 축대를 끊었다.

 “지금 몇 시야? 학교 가는 거 네 의무 아니야? 아침에 일어나면 시간 생각하면서 준비하라고 했어, 안 했어? 언제까지 엄마가 따라다니면서 ‘밥 먹어라. 옷 입어라. 세수해라’ 해야 돼?! 네가 스스로 안 해서 알려주는 게 잔소리야?! 넌 언제 스스로 알아서 네 할 일을 똑바로 할 거야?! 너 그러다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 될 거야? 그래서 어른이 될 수 있겠어?”     

 엄마의 단죄는 아이를 ‘스스로’ 감옥에 가두었다. 효자손을 손에 들고 맹렬한 간수처럼 아이가 조금만 퍼덕여도 등짝을 제압했다. 밥이 싫으면 먹지 말라고 밥그릇을 멀찍이 밀었다. 학교에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가방을 치웠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방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독방 수감을 명령했다. 숙련된 고문기술자처럼 아이의 통점을 건드렸다. 아이는 서향 동백이 꽃을 떨구듯 식탁 위로 눈물을 툭툭 뿌렸다.          


 꽃 화분을 사들일 때마다 거실 창가 앞에 화분을 두고 찬 바람이 부는 밤에만 창문을 닫았다. 겉흙이 조금이라도 말랐다 싶으면 물을 주었고, 시든 꽃대는 바로바로 정리해주었다. 매일같이 들여다보았지만, 어쩐 일인지 꽃 화분은 늘 초록별로 건너가고 말았다. 

 지난겨울에는 첫 반려식물인 오렌지 자스민을 떠나보냈다. 열매를 맺은 적은 없지만 2년 가까이 잘 자라 주었다. 그런데 두 번째 겨울을 맞아 갑자기 이파리가 끈적하게 말라갔다. 화단 앞에 가습기를 틀고 몇 날 며칠 수증기를 쐬게 했다. 감기에 걸린 아이를 밤새 돌보듯 며칠을 지켜보았다. 오렌지 자스민은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나는 다른 화분들에도 물과 수증기를 쉴 새 없이 공급하고 예정된 여행을 떠났다. 

 이틀 후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죽어있는 오렌지 자스민과 칼란디바를 발견했다. 식물들은 같은 화단에서 다른 죽음을 맞이했다. 오렌지 자스민은 목이 말라서, 칼란디바는 얼어 죽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들여다보았다. 이파리 한 장 한 장을 살폈고, 물을 말리지 않았다. 매일같이 들여다보면서 정작 식물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화단의 무엇을 매일 살펴본 것일까? 과잉 공급된 애정은 유해하다. 오렌지 자스민의 목을 마르게 하고 칼란디바의 몸을 춥게 했다. 오렌지 자스민의 마른 가지를 잘라내고, 칼란디바의 동상 입은 이파리들을 꺾어냈다. 그럼에도 제 모습을 찾지 못하는 화분들을 더 기다려주지 않고 베란다로 내몰았다. 애정을 뱉어내는 화분들을 눈앞에서 치웠다. 거실 화단의 빈자리는 금세 채워졌다. 구니로, 딜바타아카시아로.     


 온실 속 화초로 자라고 싶었던 어린 마음은 웃자라 유독 가스로 가득찬 온실을 마련했다. 아침으로 빵이 먹고 싶은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애정을 준 것처럼 독을 뿜었다. 웃자란 마음은 아이가 스스로 자라는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눈앞에서 치우고 바로바로 채워나갔다. 숟가락을 쥐여주고 옷을 입혀주고 운동화 끈을 매주었다. 유해한 애정이 아이마저 웃자라게 하는 것을 모르고. 어쩌면 아이가 유독한 애정을 뱉어내고 다른 온실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목마가렛의 꽃이 시들었다. 이파리와 꽃대를 정리해주었다. 받침대를 넓고 깊은 것으로 바꾸고 물을 부어 놓았다. 목이 마를 때마다 필요한 만큼 스스로 마시라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게 하고 햇빛을 쐬게 한 채 볼품없는 시간을 기다린다. 일주일쯤 지나자 마가렛에 오돌토돌 꽃망울이 올라왔다.     


 아침 7시 30분. 창문을 열었다. 두 손으로 아이들의 양 볼을 늘이며 한 명 한 명 깨웠다. 

 “일어나.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오늘 아침은 메이플 시럽 뿌린 식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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