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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반짝 May 22. 2023

흩날린 결말

아버지의 무덤


 아버지, 당신의 무덤이 파헤쳐졌습니다. 3월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네 아빠 무덤 파냈단다. 네 할아버지가 윤달 되면 산소 정리한다고 전부터 얘기는 했었는데… 3월 되고 지금이 윤달이잖아. 지금이 윤달이거든…. 그래서 지금 이장한다고 다들 예약이 꽉 찼다고 하는데….”

 엄마는 토씨 하나하나에 휴지를 두며 유구하게 설명했습니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의중이 소복하게 담겨 있는 장황한 설명은 엄마의 오랜 습관입니다. 곪은 습관의 원인은 아마도 당신이겠지요. 나는 그 장황함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찬물을 뿌리듯 한 마디를 끼얹었습니다. 

 “그래서 뭐 어떻게 됐다는 건데?”

 “아니… 그게… 그런데 그걸 윤달 되자마자 바로 했다는데 네 아빠 무덤까지 다 파냈다더라. 비석도 뽑아서 버리고 없다는데 이게 말이 되니? 조상들 매장한 무덤 정리하는 거지 네 아빠는 화장해서 묻은 건데 그걸 왜 파내냐고? 우리한테 물어나 봤어야지. 네 할매는 묻은 지 아직 반년밖에 안 됐는데… 화장한 할매 자리까지 왜 벌써…. 아이고, 정말… 그 인간 불쌍해서 눈물이 다 나네….”

 기가 막힌 상황을 전달하던 엄마는 기어코 목소리가 뭉개졌습니다.      


 조상들을 모신 산은 입구가 의뭉스럽게 가려져 있습니다. 다람쥐들이나 알 듯한 입구로 들어서면 맨몸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오르막이 펼쳐지지요. 카펫처럼 깔린 낙엽의 깊이를 알 수 없어 첫발을 딛기까지 제법 용기가 필요합니다. 낙엽 속으로 발이 빠지는 두려움을 참고 산을 오르면 곧 땅 위로 솟구친 나무뿌리에 발이 걸릴 위험을 맞닥뜨립니다. 곧이어 아래로 늘어진 나뭇가지가 머리로 들이닥칩니다. 기억하세요? 어쩌면 당신은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것들은 당신이 그 산에 묻히고 난 이후 나의 경험들이니까요.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당신이 그 산에 묻히기 전까지 나는 십여 년이 넘도록 그곳을 오른 적이 없었으니까요. 산에 대한 당신과 나의 기억은 서로 생경할지도 모릅니다.     


 도처에 깔린 함정을 피해 산을 오르면 네 개의 봉분이 둘씩 자리잡고 있습니다. 맨 위 칸은 사진조차 본 적 없는 내 고조부모의 무덤입니다. 그들은 내게 구전동화 속 인물과 같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증조할머니가 빚은 막걸리를 어릴 때부터 훔쳐 먹었다고 했지요. 엄마는 당신의 증조할머니가 눈앞에 어릴 때가 종종 있다고 했습니다. 고조모가 당신에게 엄마한테 잘하라고 늘 나무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래 칸에는 은빛 비녀를 꽂은 쪽진머리에 등이 활처럼 굽었던 나의 증조할머니와 장날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내 손에 오천 원을 쥐여주던 증조할아버지가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스물한 살이었을 때 몇 달의 간격을 두고 고요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경험한 최초의 죽음이었습니다. 

 안부를 나누는 소리와 화투를 치는 소리, 밥을 먹는 소리가 뒤섞인 병원에서의 장례식을 마치고 우리는 증조부모의 집으로 갔습니다. 가마솥이 있는 ‘정지’와 외양간 옆 흙 마당에서 불을 피워 동네 사람들과 밥을 해 먹었습니다. 영정사진을 든 당신 뒤로 동네 사람들 여럿이 관을 둘러메고 흙길을 걸어 그 산을 올랐습니다. 구덩이를 파던 아저씨들이 봉분을 밟으라고 할 때의 놀라움을 기억합니다. 

 나는 그 말을 15년이 흐른 뒤 당신보다 한 살이 어린 당신의 외삼촌에게서 다시 들었습니다. 구덩이에 가루가 된 당신을 누이고 흙을 덮으며 땅을 잘 다져주어야 하니 꽉꽉 밟으라는 그 말을요. 그러나 당신도 알다시피 밤나무가 우거져 해가 잘 들지 않는 산은 힘껏 다진 봉분에 떼를 둘러주지 않았습니다. 떼가 둘리지 않은 봉분의 흙은 겨울에는 얼었고 여름에는 음습했습니다. 머리칼이 다 빠져 휑뎅그렁한 두상처럼 볼품없었지요. 가루가 된 당신은 4년 동안 떼 없는 봉분들 아래에 묻혀 자리를 지켰습니다. 당신을 찾아가느라 나는 전에 없이 그 산을 여러 번 올랐습니다.     


 땅속에서 시간의 지층에 스며들기를 기다리던 당신은 파내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이름과 생(生)과 졸(卒)을 기록한 비석 뒤편에 묻혀 있던 당신은 그 산의 어딘가에 흩뿌려졌습니다. 비석의 뒷면에는 나와 엄마와 동생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유일한 표식입니다. 비석마저 사라진 지금, 우리가 가족이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기억으로는 안 돼요. 추억으로도 안 됩니다. 기억 속 당신은 유해했던 적이 더 많으니까요. 당신은 고통을 공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정한 온기, 반짝이는 사랑 같은 것이 부족한 가족이었습니다. 당신이 가장 따뜻했을 때는 가루가 되어 내 두 손에 온 마지막 순간입니다. 그 겨울, 산으로 오르는 내 두 손을 당신은 따뜻하게 데워주었습니다. 그 마지막 온기로 나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마지막이었지만 처음인 것 같은 그 온기가 당신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게 해주었어요. 어쩌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 아주 어렸던 어느 날엔가는 당신도 이토록 따뜻한 아빠였을 것이라는.    

  

 엄마는 이제 산에 갈 필요도 없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것을 바란 것일까요? 아무도 산을 찾지 않게 되기를, 누구도 산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기를 말입니다. 당신이 떠난 다음 해, 할아버지는 제사상 앞에서 향을 피우며 말했습니다. “조상님들, 이게 마지막 제사입니다. 많이 잡숫고 가십시오.” 나는 그때까지 할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한평생 올린 제사에 종지부를 찍으며 절을 올리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어쩐지 눈물의 원형 같았습니다.     


 당신이 그 산의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생각하니 참담했습니다. 답답한 엄마는 선산을 관리 중인 둘째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삼촌의 대답은 가보니 그렇게 되었더라는 할아버지의 말과 같았습니다. 작년 여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자리도 갈아엎었는데 당신의 비석이 뽑힌 것쯤은 대수롭지 않겠지요. 엄마는 해명도 설명도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원가족에게도 유독한 존재였으니까요. 그럼에도 둘째 숙모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수십 년의 세월이 농축된 욕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이미 가루가 된 당신은 죽어서도 사람들의 입안에서 빻아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유순한 둘째 삼촌마저 엄마에게 상욕을 퍼부었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해 고래고래 지르는 목소리가 당신과 똑 닮았다고 엄마는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는 시인입니다. 그의 말끝은 ‘헤헤’ 웃음을 흘립니다. 깡마른 몸이 끔벅이며 헤헤. 큰 눈이 끔벅이며 헤헤. 그는 작년 여름,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죄인처럼 서 있는 나를 자리로 끌어다 앉혔습니다. ‘밥 먹어야지, 헤헤.’ 공허하지만 따스한 웃음을 흘리면서요. 어렸을 적 나는 연두부 같은 그의 가족이 부러웠습니다. 그와 그의 부인, 그의 아이들은 한 덩어리였습니다. 독특한 글자가 돌림자인 인형 같은 아이들. 그 아이들의 이름 끝 자만 떼서 부르는 인형 가족은 자기들만의 결계 안에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의 부인이 내 이름의 끝 자만 불러줄 때면 나는 양볼이 간지러웠습니다. 나도 그들의 막 안쪽에 안착한 기분이었습니다. 인형 같은 아이들과 같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담장 밖으로 나온 연두색의 살구와 석류를 따서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숙모는 며칠 머무르기로 한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그녀는 내 이름 한 자 한 자를 온전하게 발음하며 남의 물건을 함부로 따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도 한 덩어리로 보이겠지요. 유해한 덩어리로 말입니다. 인형들과의 소풍은 끝이 났습니다. 나는 연두색 석류를 방바닥에 던졌습니다. 동강난 풋석류는 입을 벌리고 속을 보였습니다.      


 지난봄, 연두가 초록이 될 무렵 나는 나의 아이들과 그 산을 올랐었습니다. 초록의 잎사귀와 풀이 무성한 5월은 의뭉스러웠던 산의 입구를 싱그럽게 꾸며주었습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아이들과 당신의 비석 뒤에 둘러앉아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 아이들이 둘러싼 막 안에서 생을 졸업한 당신의 결말을 다시 지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최후에 따뜻했던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겨울에 당신을 묻고, 다음 해 초록의 계절에 찾아갔을 때 당신의 비석 옆에 보라색의 제비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어딘가에서 날아와 그곳에 자리잡은 제비꽃 씨앗처럼 당신도 어딘가로 날아가 안착했을지 어딘가에라도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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