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반짝 Oct 04. 2023

목욕탕 이벤트

저울에 올라가면


 호텔 침구를 덮으면 거위의 가슴 털에 휩싸인 것 같다. ‘솜털 95%’ 태그가 달렸을 것만 같다. 이불 안에서 양수 속을 유영하는 태아처럼 누운 나에게 큰딸 아이가 말을 걸어온다. 

 “엄마, 목욕탕 가자.” 

 목욕탕이라니, 어제저녁으로 홍게 무한리필 가게에서 전쟁을 치른 후였다. 

 “네가 어제 엄마한테 산후조리원에 있는 사람 같다고 했잖아. 그래서 목욕탕 가기 싫어.” 

 “어젠 엄마 원피스랑 양말이 조리원에 있는 사람 같았는걸… 놀러 올 때마다 엄마가 생리해서 나만 목욕탕 못 갔잖아! 무조건 가야 돼! 나 때 밀고 싶다고!” 

 “때를 밀고 싶다고? 아프다고 싫어했잖아.”     


 여행지의 온천이나 사우나가 아니고서 아이와 나는 동네 목욕탕에 간 적이 별로 없다. 동네 목욕탕은 어린아이들과 걸어가기에는 멀었다. 목욕 바구니를 들고 차를 타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물을 틀면 온수가 바로 나오는, 창문 없는 욕실이 있는 아파트에 살고부터 목욕탕은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아이의 성화에 내키지 않는 몸을 움직여 호텔 사우나에 갔다. 주섬주섬 옷을 벗고 서둘러 수건으로 몸의 앞판을 가렸다. 열세 살의 아이는 어느샌가 저도 수건으로 몸을 가리는 것을 배웠다. 탕에 들어가기 전에 치러야 할 의식이 있다. 홍게가 몸에 얼마만큼 달라붙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체중계에 가붓하게 올라섰다고 생각했는데 계기판의 숫자는 남의 속도 모르고 빠르게 치솟았다. 쌀 서 말만 더 보태면 한 가마니였다.     


 수건으로 몸을 꼼꼼히 가리고 탕에 들어섰다. 탕 안에는 할머니 두 분만이 바데 풀에 나란히 앉아 계셨다. 수건을 쥔 손에 힘이 슬그머니 빠졌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탕에 들어갔다. 37.5도라 표시된 온탕은 미지근했다. 39.5도의 열탕으로 몸을 옮겼다. 한 발을 담그자 쩌릿함이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나머지 발을 담그고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쪼이는 열기가 배를 타고 올라올 즈음 한 단을 더 내려 앉아 목만 내놓은 채 물에 몸을 담갔다. ‘인중에 땀날 때까지만 참자.’ 저울의 숫자를 낮추려는 얕은수가 눈물겹다.     


 “준비됐어? 시작해볼까?”

 초록색 때수건을 오른손에 장착하고 아이의 한쪽 팔을 잡아끌어 내 허벅지 위에 올렸다. 아이의 표정은 어쩐지 비장하기까지 했다. 손목 안쪽의 여린 살부터 살살 밀어 올라갔다. 때수건의 운용이 제법 리드미컬해지자 팔 안쪽의 접히는 부분에서 국수 가락 같은 때가 밀려 나왔다. 반대로 팔 바깥쪽은 털과 때가 뭉쳐 오프로드를 달리는 세단처럼 때수건이 이리저리 튕겼다. 지지 않고 강도를 올렸더니 점도 있는 시멘트 반죽 같은 때가 후드득 떨어졌다. 

 “윽, 이거 13년 치의 때잖아!” 

 “으으, 엄마, 아파. 웃지 마. 기분 나빠.” 

 아이는 아파하면서도 때수건의 거친 손길을 참아냈다. 아이가 스스로 씻기 시작하면서 맨몸을 차근히 볼 기회가 없었다. 아이는 어느새 등이 훌쩍 길어져 있었다. 엉덩이는 여전히 작았지만, 제법 여자의 몸체를 띠었다. 아이의 민망해하는 얼굴과 후루룩 밀리는 때가 웃기면서도 어쩐 일인지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엄마는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 건물 외부에 부착된 조악한 인공 폭포에서 뜨거운 물이 연신 흘러내리는 곳. 바닥이 화강암처럼 울퉁불퉁해서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지압되는 곳. 일요일의 목욕탕은 콩나물시루 같아서 자리부터 찾아 나서야 했다. 엄마는 목욕탕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바디샴푸로 몸에 거품 칠을 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여기 다 씻었어요?”라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엄마는 그의 대야 옆에 목욕 바구니를 슬그머니 밀어 넣고 나와 동생을 온탕으로 데려갔다. 온탕 바깥에 한 단으로 둘러쳐진 자리의 틈새에 우리의 엉덩이를 디밀게 했다. 엄마는 목욕 바구니로 맡아둔 자리가 온전히 우리 것이 될 때까지 바가지와 대야, 앉은뱅이 의자와 우리 몸에 거품 칠을 했다. 온탕의 물을 한 바가지 떠서 차례로 쏟아부었다. “탕에 들어가서 때 불리고 있어.”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그랬던 것처럼 온탕의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몸에 끼얹고 탕에 들어와 세면장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았다. 

 “때 밀기 전에 냉탕에는 들어가지 마. 더우면 그냥 탕 밖에 앉아 있어.”     

 

 남동생이 여탕 출입을 거부당한 후부터 일요일 아침 목욕탕 방문은 엄마와 나 둘이서 수행했다. 목욕 중간에 세신사에게 열쇠를 맡기고 요구르트를 사 먹던 일이 중단되었다. 슈퍼보다 비싸게 파는 요구르트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은 남동생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일요일마다 콩나물시루 같은 목욕탕에서 엄마는 내 때를 불리고 밀었다. 손목 안쪽부터 밀기 시작해 엉덩이 밑과 복숭아뼈 밑의 주름까지 엄마는 껍질이 벗겨지도록 매매 때를 밀었다. 빨갛게 변한 가슴 윗부분은 따가웠고 화요일쯤엔 딱지가 점처럼 따닥따닥 생겼다. 딱지는 그다음 일요일에 때를 밀면서 떨어졌다. 나는 엄마에게 씻김을 받고 깨끗해진 몸을 다시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적셔 놓았다. 엄마가 등을 밀어달라고 부를 때쯤이면 냉탕의 구석에 숨어 눈을 감고 목욕탕의 메아리를 흡수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 엄마의 덩치를 진작에 넘어섰을 때도 목욕탕은 일요일의 한 마디였다. 고3이 되어 격주로 목욕탕에 가게 되자 엄마는 세신사 아주머니께 나를 맡겼다. 나는 황토색 장판이 깔린 세신대에 다리를 꼬고 어정쩡하게 누웠다. 그녀는 첫인사로 내 허벅지를 눌러 다리를 가지런히 폈다. 그녀의 노련함은 온몸의 거품을 씻어내는 데 한 바가지의 물이면 족한 것으로 알 수 있었다. 한 바가지의 물을 비스듬히 던지듯 뿌려 거품을 말끔히 걷어냈다. 그녀는 내 몸을 4면으로 나누어 한 면의 때 밀기가 끝나면 내 허벅지를 톡톡 쳤다. 나는 그 신호에 따라 큐브를 돌리듯 몸의 다른 면을 내보였다. 그녀가 세신대 위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내 팔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렸을 때 나는 도리 없이 그녀의 젖은 브래지어와 팬티를 보아야 했다. 실밥이 불거나온 검은색과 자홍색의 축축한 속옷 사이, 트고 늘어진 배를 나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수줍음과 수치를 넘나들었던 첫 세신 이후 엄마는 목욕탕 안에 들어서면 자리보다 세신사 아주머니를 먼저 찾았다. “앞에 몇 명 있어? 우리 애 좀 해 줘.” 나는 그녀의 오이 비누와 살구 비누로 한 달의 때를 떠나보냈다.   

  

 내 몸이 엄마에게서 세신사 아주머니로 옮겨 가는 동안 엄마의 등은 자신의 손에서 옆 사람의 손으로, 종내는 초록색 때수건이 감긴 원판이 돌돌 돌아가는 등밀이 기계로 옮겨 갔다. 내가 엄마 등에 무책임했음에도 엄마는 내가 대학생이 되자 오이 마사지를 추가했다. 세신사 아주머니는 때수건으로 내 얼굴을 얇게 민 뒤 강판에 오이를 갈아 얼굴에 빈틈없이 붙였다. 오이의 수분이 얼굴에 달라붙을 동안 그녀는 내 몸에 존슨즈 베이비 오일을 발라 어깨와 종아리 알을 꼬집듯 마사지했다. 엄마는 그녀에게 세신비 팔천 원에 이천 원을 더해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엄마가 내게 부려준 극강의 사치. 그때 엄마는 신데렐라의 요정 할머니 같았다. 그 후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와 나의 일요일 고정 스케줄은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펑크를 내면서 완전히 깨졌다. 요정 대모를 떠난 신데렐라가 친구들과 노느라 연애하느라 일요일이 바빠졌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은 십 년이 넘게 이어지던 고정된 일정을 불도저처럼 쉽게도 깨뜨렸다.      


 삼시 세끼처럼 일상의 한 마디였던 일요일의 목욕탕은 그 후 엄마와 내게 이벤트가 되었다. 결혼 후 임신을 하고 친정에 갔을 때 엄마는 나를 그 목욕탕에 데려갔다. “우리 애 임신해서 배불렀어.”라며 여전히 그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녀에게 이만 원을 내밀었다. 세신비 만 오천 원에 배 속 아이 몫으로 오천 원을 더해. 아빠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엄마와 나는 면회 시간까지 시간을 때우려고 병원 앞 목욕탕에 갔다. 아빠의 장례를 마치고 나선 여행에서 엄마와 나는 아침저녁으로 온천에 갔다. 마치 일상 같은 이벤트처럼.     


 배 속에서 오천 원의 몫을 냈던 아이의 팔이 어느새 훌쩍 길어져 나와 반 뼘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이의 팔이 때를 밀려 내 허벅지 위에 놓여 있는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와 내가 알몸으로 서로 겹쳐 있었던 그때가 지금은 나와 내 아이로 바뀌었다. 지금 내 몸은 그때의 엄마 몸이 되었다. 지금 엄마의 등은 그때의 등보다 작아졌고 좀 더 흐무러졌다. 종내는 엄마와 나와 내 아이의 어떤 일상이 또 이벤트로 바뀔까. 생각만으로도 어쩐지 아득해진다.

이전 14화 숟가락의 교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