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아파서 공부 못하니까 쓴 글
처음으로 한의원에 가봤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으면, 그게 소화불량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빈번하다. 그나마 수험생치고는 (치고는!!!ㅋㅋ) 정서적으로 안정된 편이라 여태까지는 큰 탈이 없었는데... 한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몸이 전체적으로 너무 긴장한 상태라고 하셨다. D-100이 가까워지는 터라 그럴 만하다.
아무튼 그렇게 진료를 받고 약 봉투를 봤는데 내가 단순히 공부뿐 아니라, 훗날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고민에 은연중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나는 20대 중반부터는 무난히 사회에서 한 역할은 하고 사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 사회생활에 접어든 사람들이 그렇듯, 나이에 대한 경계선이 머릿속에서 허물어졌고... 사실 그래서 입시 전까진 나이에 대해 거의 아예 생각을 안 하고 살았다. 나이를 더 먹거나 앞자리가 바뀌는 것에 대해 조금의 두려움도 없다는 것은, 버젓하게 살아가며 좋은 비전을 제시해 준 인연들 덕분인듯하여 감사함을 표한다.
그렇다고 걱정이 아예 없진 않았다. 내가 어린 나이에 이룬 금전적 성과가 더 이상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게 될 나이, 나의 실수가 더 이상 어린 친구의 귀여움으로 허용되지 않게 될 나이. 지금이야 너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커리어적인 의견을 나누고 자기 계발하는 게 똘똘하고 야무져 보이지만 그건 몇 년 더 일찍 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 ‘그게 뭐 어떻다고’의 때가 올 것을 알았다. 나이 먹는 데 미련은 없지만, 입시 때문에 그런 씁쓸한 과정에 대한 준비기간이 좀 깎인 거? 이건 약간 섭섭한데... 그래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오롯 내 선택인데 뭐 어쩌겠나 싶다.
아무튼, 내가 20대 후반 및 30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은 건 주변 사람들 덕이 크다.
나이 먹으면 즐거움 얻을 데가 없는 거 아니겠냐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보다 능동적으로 행복을 찾고 항상 새로운 걸 도전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엔 더 많았다. 감정에 치여서 무뚝뚝해지는 게 당연한 것인 양 변명하는 사람보다, 평일 늦게 갑작스럽게 만나야 했는데도 직장 생활로 힘든 티 한 번 내지 않고 여유롭게 웃어주는 사람이 내 머릿속에 훨씬 강하게 각인되었다.
내가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단어 하나하나 다 고려하면서 말을 내뱉고 머릿속에 쓰인 시나리오에 따라 미소를 보여줄 때, 좋을 때다- 하는 일그러진 표정을 못 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것을 봐도 지현 님은 뭘 해도 해낼 것이라고 치켜세워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미 내가 몇 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하고 있던 것들을 '얜 이거 모르겠지 ‘하며 초면에 말 놓고 가르치면서, 혼자 떠들면서 뿌듯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시선과 말투로, 나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존중하고, 공평하게 오고 가는 질답을 나누며, 실질적으로 안목을 넓혀주는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 그런 고마운 사람들이 하등 없었더라도 지금의 낙관적인 믿음을 견지할 수 있었을까? 난 잘 모르겠다.
일단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하면, 어디선가 반드시 누군가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에게도, 졸업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도, 보기 드문 나이대의 사람일 것이고... 나의 행동, 나의 가치관, 나의 태도 등이 상대의 무의식에 깃들어 그들에겐 특정 나이대의 삶이 주는 느낌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나 역시 그 영향을 (좋은 쪽으로) 많이 받았으니까 그걸 느끼지 못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성격상 나는 앞으로도 대충 살 수가 없다. 나의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겐 믿음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은 믿음이 끌고 가는 거다. 나조차도 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믿지 않으면 세상이 나를 믿어줄 리가 없다. 그러니까 보란듯이 더 열심히 진정성 있게 살아야지.
새삼 예를 들어 20대 중반 같은 애매한 나이가 아니라, 차라리 더 늦게 가서 더더욱 다행이고 좋다. 지금보다도 많이 어렸으면 이 부담을 잘 감당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아직은 애 취급 받고 싶은 미련도 많이 남아있었을 것 같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