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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Oct 26. 2021

Day 25 수망다원, 수애기 베이커리, 수월봉

한장요약: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 (김현승, 무등차)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인들과 함께 세 명이 움직이는 하루.

함께 보기 위해 아껴둔 코스로 이동한다.

떠나기 전, 맛좋고 영양좋은 전복죽으로 따듯하게 속을 채우며 든든하게 하루를 열어본다.

(센스있는 사장님께서 골고루 맛보라며 반찬을 다 다르게 챙겨주심)

이미 지난 여행에서 여러 번 다녀온 오설록을 대신해 조용한 다원을 찾아가기로 한다.

손으로 적은 어설픈 표지판을 따라 무슨 공장으로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여기가 정말 다원이 맞는 건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펼쳐진 초록초록한 차밭 풍경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알고 보니 현재는 가오픈 중이라 주차장 바닥 공사가 되어 있지 않아 임시로 우회한 것이라고 함)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녹차밭은 눈에 담고, 따듯한 차와 다식은 배에 담으며, 몸도 마음도 평온하게 가득 채워본다.

(인심좋은 사장님께서 오픈 전에 테스트 중이라며 홍차 스콘과 귤까지 챙겨주셨다.)

건물 뒤켠의 계단을 오르니 조금만 기면 루프탑이라 불러도 충분한 공간인데 한 층 더 높이 서니 먼바다가 한결 더 가까워 보인다.

녹차밭 구경도 하고, 차꽃도 처음 보고, 그렇게 차 덕후는 행복하게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달성한다.


아침에 먹은 전복죽에 다원에서도 주저리주저리 먹고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아 점심은 올레시장에서 간단하게 요기하기로 한다.

야시장에 왔을 땐 구름인파가 몰려있던 흑돼지김치말이에 도전, 바로 옆 전복김밥도 함께 맛보기로 한다.

한 번은 먹어볼 맛이긴 하지만 딱히 이걸 다시 먹으러 줄까지 설 정도는 아닌 듯.

디저트로는 지난번에 먹고 반죽 맛에 반한 꼬다만 도나쓰, 요번에는 사진도 잊지 않는다.

오늘의 피날레인 수월봉 일몰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어 뷰도 좋고 소금빵도 맛난 수애기베이커리로 또 먼 길을 나선다.

점심을 바로 먹고 온 탓에 빵은 내일 아침을 위해 포장하고 차 한 잔 마시며 바다멍을 때린다.

가끔 바다 한가운데 일어나는 하얀 거품이 과연 돌고래인가 한참을 쳐다보았지만 직접 돌고래를 보지는 못했다. (제주도 사투리로 수애기가 돌고래라고 한다. 참고로 다음날 아침에 먹은 소금빵은 쫄깃하고 조금 버터리했지만 간혹 알알이 느껴지는 소금 맛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제주 오신지 11년째라는 숙소 사장님께서 일몰은 수월봉이 최고라고 추천하셔서 참 먼 길을 왔다.

너무 일몰에 가까워지면 주차가 어려워질 것 같아 5시쯤 수월봉 정상 주차장에 자리잡기 성공.

잠시 돌아보니 바람은 조금 세지만 구름은 많지 않아 예쁜 일몰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차 안에서 귤을 까먹으며 기다린다.

드디어 5시 50분 일몰 시간이 다가오고 두근두근 기대하며 계단을 오르는 우리와 달리 매일 보는 일몰 따위 상관없이 칼퇴를 꿈꾸며 퇴근을 준비하는 기상청 직원분들이 보여 잠시 혼자 웃었다.

TV에서 애국가 틀어줄 때 나올 법하게 실구름에 걸쳐 동그랗게 바닷속으로 쏘옥 퇴근하는 햇님.

오늘 고운 모습으로 집에 가셨으니 내일 아침에도 고운 얼굴로 만나요, 우리~


수월봉 아랫 켠 지오 트레일도 잠시 들러본다.

180만 년 전부터 이루어진 화산활동의 흔적이라는, 켜켜이 쌓인 화산탄 지층을 보니 이 억겁의 시간 속에 한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소소하고 미미한 것인지 또 한 번 겸손해진다.


여행이란 사실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랑 가느냐가 더 중요한 듯하다.

어쩌다 모인 김이박이 함께 보낸 하루.

각각에게 다른 빛깔로 기억되겠지만 모두에게 따듯한 온기로 남았으면 좋겠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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