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중아 Oct 25. 2021

Day 24 제지기오름, 제주 유나이티드 직관

한장요약: Go, Jeju! Go, Gators!


오늘은 오후 일정이 있는 관계로 아침 일찍 오름 하나를 다녀오기로 한다.

사실 오름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민망한 비고 98m의 뒷동산 수준이지만 백록담 프로젝트를 위해 조금이나마 근육에 자극을 주기로 한다.

차 타고 20분을 이동했는데 막상 제지기오름을 오르는 데에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보목포구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타다다닷 계단을 오르는 길은 짧지만 경쾌하다.

얼마 오르지 않았어도 주차장에서 보던 전망과는 사뭇 다르게 섶섬, 문섬, 범섬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올랐던 길로 다시 경쾌하게 타다다닷 계단을 내려가는 길, 양 길 가에 노란 꽃들이 궁금해 앱으로 꽃 이름을 찾아보니 털머위라고 알려준다.

신고 간 노란 운동화와 깔맞춤인 것 같아 기념삼아 한 장.

털머위를 한 번 알고 나니 매일 다니던 길에 어제까지는 억새만 보였었는데 오늘은 억새 뒤켠에 키 작은 털머위의 노란 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듯하다.


숙소로 오는 길, 9시 오픈 시간에 맞춰 동네 빵집에 갔는데 화요일까지 휴가란다.

일단 숙소로 돌아와 언니와 성게미역국으로 아침 메뉴를 정하고 근처 강정 해녀의 집으로 이동한다.

바다바다한 미역국과 엄마가 해준 듯한 맛깔난 반찬들로 든든히 아침을 해결하고 티타임을 겸해 잠시 강정항을 돌아본다.

멋지게 지어둔 크루즈 터미널이 코로나로 인해 휴업 중인 걸 보니 새삼스레 또 속이 상한다.


오후 3시, 기대하고 기다리던 제주 유나이티드의 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 길.

숙소가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바로 앞인데 매일 경기장을 지나다니기만 하기 좀 겸연쩍어서 경기 일정을 알아보았더니 마침 재밌을 것 같은 경기가 있어 예매를 해두었다. (응원하는 팀이 있어 코로나 전까지는 야구장 직관은 1년에 한 번은 다녔고 미국에서 농구장도 가봤는데 축구장은 난생처음!).

오늘 경기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전북 현대의 경기.

현재 5위인 제주는 6위 팀까지인 파이널 A에 진출하기 위해 최소한 비기거나 이겨야 하고, 현재 2위인 전북은 1위와 승점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오늘 경기를 이기면 1위가 될 수 있기에 두 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전석 매진이 되었다는 걸 보니 미리 예매해두길 잘했구나 싶었다.

사실 축구는 보통 A매치만 보기 때문에 딱히 응원하는 팀은 없지만, 그래도 홈팀에 누가 되면 안 될 것 같아 미리 찾아보니 상대 전북은 형광연두색이었고 제주는 원래 귤색이었다가 바로 어제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새 유니폼은 파란 바다색이었다.

가진 옷을 털어보니 그나마 청남방이 파란 색이라 걸치고 경기장으로 출발, 걸어서 10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

코로나로 인한 좌석 제한으로 인해 자리 배정은 미리 할 수 없고 입장한 순서대로 선착순으로 앉는다.

한 시간쯤 일찍 온 덕에 괜찮은 자리에 앉아 선수들 몸 푸는 것도 보고 식전 이벤트를 즐기다 드디어 경기 시작.

2위와 5위 팀이었지만 나름 비슷하게 공방을 벌이다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전 시작 후 멋진 슈팅은 아니었지만 얼레벌레 제주팀이 일단 선취골로 득점.

홈팀의 응원단들이 정말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보는 나도 신이 난다.

그러다 잠시 마음을 놓은 사이 상대방의 헤딩으로 동점이 되고 만다.

하지만 꼭 승리가 필요한 전북은 마음이 바쁜지 골 세리머니도 하지 않고 경기를 속개한다.

그 간절한 마음 덕이었는지 후반전 추가시간 2분경, 전북팀이 드디어 역전골을 넣는다.

그제서야 카메라 앞에서 아주 신이 나는 세리머니까지 보여주며 1위를 자축한다.

내심 실망한 관중들에게 장내 아나운서가 "우리는 극장골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오늘도 할 수 있습니다. 다 같이 최강제주를 응원합시다!"라는 멘트에 모두 한마음으로 장단에 맞춰 응원을 보낸다.

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골을 먹고 2분가량이 남았고 제주의 거의 마지막 공격에 마음이 급한 전북이 핸들링 파울을 범하고 결국 제주의 페널티 킥 성공으로 극적인 동점을 만든다.

곧바로 이어진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에 전광판에서는 파이널A 진출을 축하하고 환호하는 관중들과 열심히 노력한 선수들의 인사가 이어진다.

자력 1위를 눈앞에서 놓친 전북 선수들의 아쉬워하는 모습들도 조금 안쓰럽긴 했다.

(덧. 집에 와 찾아보니 1위였던 울산이 져서 승점 동점에 다득점으로 어쨌든 전북도 1위 탈환)

정말 꿀잼 경기를 직관하고 나니 앞으로 K리그도 좀 챙겨봐야겠다 싶다 (기9ㅏ는 이제 미련을 버려야 하나...)


오늘 제주 유나이티드 전에 재미를 더한 포인트

1. 귤색 유니폼 + 새 바다색 유니폼이 Orange and Blue의 Florida Gators의 향수를 불러일으킴.

2. 제주의 용병 공격수 제르소의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를 눈앞에서 보니 피가 끓는 기분.

3. 아마도 부인에게는 출근한다고 하고 나온 것이 분명한, 양복 입은 앞좌석 아저씨의 진정성이 넘치는 응원.

도민 추천 식당에서 제주식 흑돼지 두루치기에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볶아서 오늘도 보람찬 하루 마무리!


매거진의 이전글 Day 23 보롬왓, 머체왓 숲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