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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Jan 05. 2022

Prologue. 나는 왜 산을 오르는가

한장요약: 등산, Brain detox!


어차피 도로 내려올 거 왜 고생스럽게 올라가냐며, 사당동 등산로 초입에 4년을 사는 내내 단 한 번도 관악산에 갈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던 저질체력이 난데없이 제주의 오름에 홀려 한 달 동안 1일 1오름에 도전했다.

남산도 헉헉거리며 간신히 오르던 내가 매일 오름을 찾아다니고 급기야 한라산 영실 코스로 윗세오름을 오른데 이어 남한 최고봉인 백록담까지 등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호적메이트인 동생들과 친한 지인들조차 신기해하는, 스스로도 낯선 등린이가 되었다.


제주 한달살이 이후 돌아온 서울에서의 일상.

분명 내가 꽤 오랜 시간 바지런히 살아왔던 곳이었는데, 회색빛 빌딩과 차가운 아스팔트, 네온사인 휘황찬란하게 밝은 불야성의 한복판에서 나는 외려 캄캄하게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걷는 것도 먹는 것도 모든 것이 빨리감기인 서울.

그 속도에 멀미가 나 잠시 숨을 고르고 있자면, 반짝이던 서귀포 앞바다의 윤슬과 흙내음 가득했던 곶자왈, 조금만 올라도 제 속살을 쉬이 보여주던 오름들이 하나하나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물론 그렇다.

제주를 둘러싼 푸른 바다가, 어느 순간 시퍼런 벽처럼 느껴져 일순간에 숨막히는 갑갑함이 몰아쳤다는 어느 귀도인 고백처럼, 지금 내게는 아름답게 기억되는 제주라도 그 역시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제주란 고향 같은 곳, 상한 마음을 위로받고 지친 몸을 회복했던 그런 안온한 공간으로 기억될 뿐이다.

물론 앞으로는 한 달씩 훌쩍 떠나기 더 어려워질 테니, 나는 이제 이곳 서울에서 나의 안온함을 찾아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산을 찾았다.


"우리는 산에 길을 잃어서도 가고 길을 찾으려고도 갑니다."

길을 잃어 산에 갔고, 길을 찾기 위해 산에 간다.

한걸음 한걸음, 오롯이 내 몸 하나로, 내 두 다리로만 이룰 수 있는 정직한 운동.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지고 근육이 터질 것 같으면 오히려 생각이 단순해지고 머릿속이 맑아진다.

독소와도 같은 머릿속 잡념 비우기, Brain detox를 위해 나는 오늘도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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