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사의 부탁

칭찬해 주세요

by 스돕


말 안 듣는 어린아이들에겐 선생님이 특효약일 때가 있다.

"우리 똥별이 이렇게 치카하기 싫어하면 선생님한테 얘기 좀 해야겠네."

"우리 하영이 이렇게 편식하면 내일 담임 선생님한테 얘기 좀 해야겠다."

내 경험상 이러한 협박은 때때로 효과가 있었다. 어린아이들에게 선생님은 거의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에게 의사 또한 이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 중병 환자일수록 더 그러할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인데 어찌 아니 그러겠는가? 내 주치의 선생님은 나와 겨우 한 살 차였지만 난 그녀를 꽤 묵직한 어른처럼 느꼈다. 그건 아마도, 그녀가 오랫동안 중병 환자를 돌보며 쌓은 배려심과 전문성, 그리고 환자에 대한 진심과 진중함을 보여준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내가 병원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의사는 주치의뿐만이 아니었다. 전공의라 불리는 그들은 회진 전 환자의 상태를 미리 체크해 보고하기 위해 한 번, 그리고 주치의의 회진 시간에 동반하며 한 번, 총 하루에 두 번씩 환자를 찾았다.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해 수련을 받는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일컫는 전공의들은, 보통 병원에 입사한 지 1~2년 차의 사회 초년생이기에 아직 앳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들을 일명 ‘새끼의사’라고 불렀고 보통 1~2달을 주기로 여러 과를 돌며 수련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 새끼의사 중에서도 내 주치의만큼이나 해박한 지식을 뽐내며 믿음을 주는 이가 있었다.

한창 이식실에서 다 죽어가는 몰골로 지내던 때의 내 담당의였다. 그는 병실을 들어올 때마다 항상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포개고 쭈뼛쭈뼛 내 앞에 서서 아주 조심스럼 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고열에 시달리다 겨우 잠든 아기를 깨워 어쩔 수 없이 약을 먹여야 하는 어머니의 숙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고 해야 하나.


느릿한 걸음걸이처럼 말투도 느릿느릿했던 그 젊은 의사는 항상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내 상태를 물어왔다. 꼭 본인 때문에 내가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조심스럽고 진중한 태도는 나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난 그를 만나는 시간이 편안하고 좋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내가 그동안 겪지 못했던 새로운 부작용들에 대해 의문을 제시할 때마다 그의 피드백이 너무 간결하고 명확했다는 점이다.


나한테 왜 이런 증상이 생기는 거지? 뭐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은 그의 일타강사와 같은 논리적 설명으로 쉽게 해결되었다. 내가 아프더라도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심리적으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의학적 지식이 풍부할뿐더러 환자에 대한 책임감과 연민, 게다가 예의까지 장착한 그를 볼 때면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알기 쉽게 설명을 잘하세요. 선생님 얘기를 들으면 속이 뻥 뚫려요."라고 칭찬해 주면 늘 심각해 보이던 그의 얼굴에도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이런 사람이 의사 하는 거지. 자신의 적성과 소양에 상관없이 성적만으로 의사가 된 이들은 자신에게도 환자에게도 불행일 터였다.


그를 보고 있자니, 1차 항암 때 만난 의사가 떠올랐다.

그는 전공의였지만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 회진을 돌 수 없었다. 그가 하는 일은, 방방을 돌며 채혈을 하거나, 항암을 위해 장착된 히크만 카테터(가슴부근 정맥에 관을 삽입해 채혈이나 약물투여를 쉽게 해주는 장치)를 소독하는 일이었다. 난 매일매일 채혈이 필수였고, 히크만도 이틀에 한번 소독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자주 만났다. 게다가 입원이 길어지면서 그와도 얼마쯤 스스럼이 없게 되었다.


항암 부작용으로 내 얼굴과 온몸에 울긋불긋 발진이 일어난 걸 보고 그가 던진 말은

“얼굴이 갑자기 왜 그래요?”였다. 주치의든 전공의든 나에게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이러한 증상이 항암 부작용의 일종임은 너무 뻔한 상식이었고 또 환자에게 왜냐고 묻는 게 아니라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게 의사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면역수치가 바닥이라 1인실로 옮겨졌을 때였다. 그날 그는 내 히크만을 소독하러 왔고, 뒤이어 회진을 위해 주치의 선생님과 전공의가 들어왔다. 잠깐의 대화가 오가고 그들이 돌아간 뒤 그는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의사인데, 회진 돌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맨날 피 뽑고 소독하는 허드렛일이나 시키고.. 벌써 1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어요.”

그는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 왔던 전공의가 부럽다고 했다.


“에이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의사가 어디 있겠어요. 처음엔 다 이런 소소한 일부터 시작하는 거지. 이렇게 기본을 쌓다 보면 회진도 돌고 전문의도 되는 거죠.” 나는 안따까운 마음으로 위로를 건넸다.

“그렇겠죠?” 그는 웃어 보이며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내가 퇴원을 하는 날 아침 그는 내게 부탁할 것이 있다며 찾아왔다. 환자인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는 거지? 너무 궁금했지만 그는 조금 있다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총총히 떠났다. 도대체 뭘까? 여자친구 선물이라도 골라달라는 건가? 하고 기다리는데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병실을 찾았다. 그의 손에는 작은 종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다른 환자들이 들을까 걱정됐는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실 제가 몇 년 전에 전공의 실습을 하다가 적응을 못해서 군대에 갔어요. 그래서 지금 다시 실습을 하는데 계속 성적도 안 좋고 너무 힘들어요. 여기 칭찬 직원 란에 제 얘기 좀 써 주실 수 있나요? 이거라도 잘 받아야 점수가 좀 나올 것 같은데…”


그제야 그가 회진도는 전공의를 그렇게 부러워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불평한 것도..

그리고 가끔 내 팔뚝에서 피를 뺄 때마다, 그가 부담스러워하며 손을 떨었던 기억이 났다. 간호사들이 할 때보다 훨씬 아팠던 기억도.. 그리고 내 앞침상 환자의 팔에서 주사를 여러 번 찌르고도 채혈을 하지 못했던 것도 떠올랐다. 참다못한 그 환자는 여러 번 주삿바늘을 찌르며 본인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그 의사에게 성공할 자신 없으면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결국 그는 마지막 시도를 했고 그게 실패로 끝나자 능숙한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가야만 했다.


그는 내게 혹시 본인이 아니어도 칭찬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써내도 된다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어쩌면 그게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학창 시절 내내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간의 병원생활을 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여전히 주삿바늘 앞에서 주저하고 환자의 심정을 헤아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그가 의사가 된다고 만족할까? 행복할까?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가 원한대로 내가 칭찬 메시지를 남긴다고 해서 그가 진정한 의사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전문의가 되어도 그리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을 판단하는 게 내 오만일 수도 있겠으나, 난 그와 의사는 참 맞지 않는 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난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써내려 간 나의 칭찬이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미래의 그에게나 그의 환자에게나..


그리고 이식실에서 만난 그 대역죄인 같은 전공의를 본 나는 그때의 내 행동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의사도 자격과 적성이 있는 거고 그에게는 의사 말고 더 큰 다른 행복이 있을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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