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도 특별하고 재미있는 순간이 있었다고 말하는 게 우습지만, 나에겐 분명 그런 때가 있었다.
가령 나이 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거..
나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산 사람들과 만난다는 거..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입원을 하게 되면 같은 병실의 이웃과 금방 친구가 된다.(물론 도저히 친구가 될 수 없는 안하무인의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나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은 더 스스럼이 없다. 며칠만 같이 지내다 보면 그들의 가족사, 입맛, 취향 등을 저절로 알게 된다.
병원에 있으면 때때로 내가 참 무기력한 인간처럼 느껴지는데, 가끔 그들의 부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쇼핑이라도 도와주는 날이면 내가 좀 더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엄마아빠 심부름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듯 식품건조기, 족욕기 등을 대신 사드리고 식판을 대신 반납해 드리기도 했는데, 아픈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처음 혈액암 병동에 입원하여 여기저기 둘러보다 복도 끝에 자리한 작은 공간이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아늑하고 풀내음이 날 것 같은 그곳은 바로 한 부부가 호스피스 환자들을 위해 기부한 도서관이었다.
예쁜 카페처럼 은은한 조명에 클래식 음악이 흐르던 그곳은 통창 너머로 초록이들이 보이고, 작은 테이블 위로는 가지런히 세팅된 티백과 컵이 놓여 있었다.
병원에 이렇게 이쁜 도서관이라니..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나에게 책을 읽고 계시던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이곳은 원래 호스피스 환자들만 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건데 우리 같은 환자들도 조용히 책만 보고 가면 괜찮아요. 인심 좋은 간호사를 만나면 책도 빌릴 수 있으니 한 번 골라봐요.”
그리곤 나에게 몇 권의 책도 추천해 주셨다.
이렇게 얼굴을 튼 우리는 오며 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사정도 금방 알게 되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린 탓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던지 그분은 내가 젊은 처자인 줄 알았다며 놀라워하셨다. 게다가 아직 어린 두 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애들이 너무 어리네.."
재발로 7년 만에 다시 입원한 본인에 대한 서러움도 있을 터였다.
그분은 내 얼굴이 밝은 거보니 금방 나을 수 있을 거라며 매일매일 기도해 주시겠다고 했다. 본인도 처음에 주변 사람들 기도 덕분에 다 나으셨다면서…아, 독실한 신자시구나. 제 코가 석자일 텐데도 진심으로 날 걱정해 주는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3차 항암을 위해 입원했을 무렵 우린 다시 만났다. 퇴원해서도 날 위해 기도하셨다던 그분은 이식하려던 내 동생의 유전자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하자 많이 실망하셨다. 본인이 조금 더 기도했어야 하는 데 소홀했던 것 같다며.. 오잉? 기도 때문이라니..
내 투병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사람들은 "널 위해 기도할게"라는 말을 참 많이 해줬고 그때마다 나도 많은 위안을 받았다. 나 역시도 이 세상에 있을 법한 모든 신에게 이 모든 게 꿈이길.. 제발 이식만은 안 하길 빌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기도가 모자라거나 내 마음이 간절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어느 날 퇴원을 하루 앞둔 아주머니가 병실로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날 위해 꼭 기도를 해 주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어제 상서로운 꿈을 꿨는데 그게 날 위한 꿈인 거 같다고 내가 옆에 있어줬으면 하셨다. 순간 난 전도 대상이 된 건가 싶어 멈칫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친한 동생도 이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너무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통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휴게실로 이동한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아주머니는 내 손을 덥석 잡으시더니 기도를 시작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어린양 **를 불쌍히 여기시어 얼른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고...."
어찌나 청산유수 말씀을 잘하시는지 내가 하나님이라면 꼭 들어주고 싶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금방 끝날 것 같았던 기도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기도 중 복받친 아주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난 당장 그 손을 놓고 도망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 내 손을 잡고 눈물 흘리는 사람을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다. 게다가 난 아무리 쥐어 짜내려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곧 감정을 추스른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나에게 잘될 거라는 메시지를 주었고 나도 감사인사를 드리고 끝이 났다.
난 딱히 종교가 없다. 초등학교 시절 전도사님이었던 작은 아빠를 따라 한동안 교회에 다닌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믿음이 있어서라기보다 재미로 다녔다. 그 당시 많은 아이들이 그랬듯 교회는 선물 받고 과자도 먹을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한동안 성가대로 활동하고 연극을 한 적도 있지만 그게 나를 성령의 길로 인도하진 못했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 집은 일 년에 몇 번 차례와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집안의 장손인 우리 아빠는 아직도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지 않는 우리 집 기독교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서로의 종교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한 적이 없었고 난 자연스레 무교인이 되었다. 하지만 가끔 법륜 스님의 유튜브를 보며 감탄하고, 동네 뒷산을 걷다 곁가지로 보이는 작은 절을 지나치며 마음이 편해지는 걸 보면 불교에 가까운 무교인 것 같다.
내가 불교를 부담 없이 느끼는 건 무턱대고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교에 대해 깊이 알진 못하지만, 법륜 스님은 어떤 질문에도 부처님이 최고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빌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게 교회든 성당이든 절이든, 장소와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난 그 부분이 참 쿨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불교가 하나의 종교라기보다 하나의 수행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당시 그분의 기도와 눈물은 나에게 부담으로 느껴졌었나 보다. 그 순간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이 족쇄같이 느껴졌으니.
하지만 그녀 역시 나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지금 내 화장대 한켠에는 작고 파란 성경책이 하나 있다. 퇴원하시며 내게 선물로 주고 가신 그 책을 보면 그날, 그분의 기도가 생각난다.
그리고 바란다.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될 그 간절한 기도로 그녀의 몸과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