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인가 보다.
퇴원을 하고 보니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 같았던 불면의 밤들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별 것 없지만 소중한 일상이 자리를 잡았다. 가끔은 내가 환자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였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였으리라. 긴 입원 생활을 일단락하고 돌아온 나는 금의환향이라도 한 듯 스스로를 뿌듯하게 느꼈다. 아마 이 험난한 여정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임을 믿어서 였던 것 같다.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입원 짐을 꾸려야할 시간이 왔다. 분명 여유가 생긴 줄 알았는데 막상 집을 나서자니 저 깊은 곳으로부터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첫 휴가를 나왔다 다시 군대로 복귀하는 이등병의 심정이 이럴까? 살짝 쥔 신랑의 손에서, 배웅을 나온 엄마 아빠의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져 제대로 눈을 마주볼 수 없었다..
새로 입원한 병동은 혈액종양 내과였다.
익숙한 장소가 아니어서 실망한 것도 잠시, 날 깜짝 놀라게 한 건 내가 바로 암환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오래 입원하고도 이 병이 뭔지 몰랐다니…항암의 뜻이 뭔지 생각도 안해 봤다니.. 백혈병은 일종의 혈액암 이었다. 내가 걸린 병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종국에 열에 일고여덟은 걸린다는 암이었다니...
미디어의 힘인지 내 무지와 선입견 탓인지, 그동안 내가 엄청나게 드라마틱하고 희귀한 병에 걸린 비운의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걸 떠올리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새 병동엔 나처럼 머리가 홀랑 빠진 환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처음 입원한 곳은 위암 병동이었고, 그곳에서 내가 백혈병이라고 하면 주변 환자들은 순식간에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 이게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레퍼토리였다.
간호사들도 나를 블랙리스트처럼 자주 들여다 봤고, 조무사님들이나 청소 아주머니들도 하루가 다르게 대머리가 되어 가는 내 모습을 보고는 짠한 눈빛으로 위로를 건넸다. 그 때 그분들이 응원해주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따뜻하고 힘이 됐는지..그래서 난 내가 유난히 엄청난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었나보다.
병실은 전보다 쾌적하고 조용했다.
위암 병동은 수술 환자들이 많기에 밤낮으로 비상벨이 울리고 여러 관계자들이 동분서주하며 시끌벅쩍했다. 하지만 이 곳은 장기 입원을 반복하는 환자들의 성지답게 여유가 있었다. 간호사들 역시 항상 바쁘고 피곤에 쩔어 있던 이전 병동과는 달리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내 마음도 더 좋았다. 밥 먹듯 끼니를 거르고, 밤새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간호사들을 보면 내가 다 미안했기 때문이다.
‘공고’라고 불리는 두번째 항암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항암제 종류도 하나로 줄었고, 24시간이었던 투여 시간도 절반 이하로 줄었다. 약을 맞으면 깔아지고 어지럽고 메스꺼운 등의 경미한 증상은 있었지만, 1차때 겪었던 극심한 고통들은 많이 비껴갔다.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래서 난 병원에서도 내 나름의 루틴을 만들며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식사 후에는 병원 복도를 돌며 걸었고, 컨디션이 좋아지면 병원 밖을 돌기도 했다. 병원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걷기 동선도 좋고 한적한 3층을 주무대로 삼았다. 핸드폰에 설치된 만보기의 숫자가 올라갈수록 기분이 좋았고, 만보를 채우는 날은 스스로를 대견하게 느꼈다.
잠이 안 오거나 고통이 심할 때는 책을 보려고 노력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선을 땨라 가다 보면 그 감정에 푹 빠져 내 신체적 고통도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1차 때는 너무 고통스러워 책 볼 엄두를 못 낸 적도 많았으니, 이번엔 그만큼 살만 했던 것이다.
병실에서 만난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곳엔 내 또래의 환자들이 꽤 많았다.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다 급작스레 환자가 된 우리들은 서로 할 말이 많았고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단톡방을 만들어 매일 서로의 상태를 체크하고 걱정하며 위로해주었다. 밥을 먹고 같이 운동을 했다. 내가 만보를 채울 수 있었던 건 그들과 함께 해서였다. 그들은 나보다 입원 선배이기도 했지만, 큰 일을 겪은 사람들 같지 않게 입맛도 좋고 활기가 넘쳤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병원밥을 맛있게 먹었다. 1차 때는 그렇게 맛없던 병원밥이 점점 맛있어졌다. 병원에선 매 끼니마다 기본식과 선택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나오는데 그 종이를 보며 내일 어떤 밥을 먹을지 고민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3층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같은 환자복에 같은 머리스타일을 한 우리는 그 날도 만보를 채우겠다며 나란히 걷고 있었다. 시간도 늦고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우리와 도플갱어 같은 사람들이 보이는 게 아닌가.
뭐지? 한덩치에 똑 같은 환자복, 자신감 있는 민머리, 씩씩한 발걸음. 난 뭔지 모를 포스를 느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우리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다가왔다. 눈이 나쁜 나는 그들이 우리 옆을 바로 스쳐 지나갈 때 멀리서 느꼈던 그 포스와 뜨거운 눈빛이 내 오해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요즘엔 항암을 하더라도 왠만해서는 대머리가 될 정도로 머리가 빠지지 않으며, 우리가 묵는 신관 말고 본관에도 혈액암 병동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아닐 수도 있지만)
서로를 지나치며 우리가 주고받은 눈빛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몰라도 난 상당히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웃음이 빵 하고 터져나왔다.
민머리에 모자도 쓰지 않은 세 여자가, 헐렁한 환자복을 힘차게 나부끼며 두 팔 벌려 씩씩하게 걷는 모습이라니…
서로 거울을 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언니, h야, 지금 우리가 딱 저런 모습인거지? 저런 느낌인거지?
이건 비실비실 삐쩍 꼴은 암환자 이미지에 대한 배신이지. 누가 보면 조폭인 줄 알겠어.
우리 모두 한바탕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