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에세이를 즐겨 읽던 나에게 소설은 손이 잘 가지 않는 장르였다.
더욱이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연재소설의 경우는 넘지 못할 산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가 무려 20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을 선택하게 된 데는 독서모임에서 만난 한 참가자의 말 때문이었다. 그녀는 올해의 계획과 포부를 밝히는 자리에서, 지금 토지라는 '인생책'을 만나 읽고 있으며 올해 안에 전권을 완독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토지라면 어릴 적 드라마로 봤던 것 같은데? 아주 앙칼진 모습의 여주인공이 대차게 호령하는 모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평소 책을 대하는 그녀의 시선이 참 날카롭고 신선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그녀의 ‘픽’에도 신뢰가 갔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 도서관에서 토지 1권을 발견한 나는 재빨리 책을 집어 들었다. 20권 중 유일하게 1권만 대출 중인 때가 많아 나에게 올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구한말, 평사리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최참판댁 가문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온다. 그래서 처음엔 윤 씨 부인과 최지수가 주인공인 것 같다가 다시 보니 용이가 주인공이고 또 고개 돌려보니 서희랑 봉순이가 주인공인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읽은 대부분의 소설이 주인공과 그를 중심으로 한 소수 인물들에 관한 서사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배경 묘사와, 내 옆에 살아숨쉬는 것 같은 인물들의 생생한 대화들이 갈수록 읽는 속도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1권을 덮었을 때, 난 다시 인물 소개를 찾아보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지만, 그녀가 왜 이 소설을 올해의 목표로 삼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토지에서 굳이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으면 꼽을 수는 있겠으나, 나는 그곳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주인공인 것 같은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역사의 질곡에 따라 여기저기 휩쓸려 가지만 자신의 뿌리와 신념을 간직하고 잡초처럼 살아가던 사람들. 그건 양반이든 평민이든, 농민이든 백정이든, 지식인이든 장사꾼이든 예외가 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치열하게도 살아가고 있었다.
구한말을 지나 일제강점기, 광복까지, 시절 따라 그들의 삶은 변화무쌍했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이 어디서건 뿌리를 내리고 기대 왔던 건 ‘토지’였다. 그 시대 토지라는 것은 땅, 대지라는 피상적인 의미를 넘어 자신의 뿌리, 조국, 끝내 찾아 돌아가야 할 인생의 종착지를 의미했던 것 같다.
만약 작가가 다른 시대, 다른 배경에서 태어난 소설가였다면, 토지 대신 다른 제목을 지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수백 년을 거슬러 불과 60~70년 전까지만 해도 토지의 의미는 재산 이상의 무엇이었을 것이고 난 읽는 내내 토지가 주는 묵직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매료시킨 건 어떻게 한 사람(작가)이 이렇게 많은 층위의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느냐였다. 극의 중심에 있던 서희, 길상을 위시한 양반들, 평범한 농민이었던 이용과 무당의 딸인 월선과의 애잔한 사랑, 이들 주변에서 도움을 주기도 하고 해악을 끼치기도 한 수많은 동네 사람들,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던 지식인들, 지리산에 숨어들어 독립운동을 하던 승려와 의병들, 중국 각지에 터를 잡고 생을 이어 나가던 실향민들.
그 수많은 인물들의 상황과 시선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독자로 하여금 그 시대 속으로 퐁당 유영해 함께 공감하고 눈물짓게 하는 작가의 능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녀는 살아가는 동안 도대체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고 어떤 삶을 산 것일까?
그동안 나름 평범하게 살아온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육아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급작스레 병을 앓고 투병생활을 하며 또 하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몰랐을 세상이었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글쎄, 몇십 년 후에나 이해할 그런 세상 말이다.
지금도 내가 모르는 세상은 얼마나 많을까? 내가 경험하고 겪지 못한 무수한 세상들이 존재할 터였다.
작가 역시 자신의 생애 동안 그 많은 층위의 경험들을 하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뼛속 깊이 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만약 이것의 그녀의 경험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상상력에 의지하고 있다면 더 대단할 노릇이었다. 아마 그녀는 세상 모든 사람들과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아주 기민한 관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관심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빈약한 인간에 대한 크고 넓은 사랑의 마음이었을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른바 악인들, 서희의 재산을 빼앗고 꼽추라고 자신의 혈육도 업신여기던 조준구,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아 끝까지 재물에 집착하는 임이네,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악행을 일삼는 거복이.. 이들의 끝은 분명 처참했지만 동정할 만한 여지도 있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것은 없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 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 색은 흰색을 포함하는 거지' 라고 말했던 한 소설가의 말처럼 그들의 삶에도 분명 흰색과 검은 색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았든 마지막 죽음의 순간은 다 애잔한 법이니까..
나는 이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몇 달에 걸쳐 읽었고, 그 마지막은 병원에서였다.
마지막 20권을 읽고 있던 중 입원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친구와 동행하는 느낌으로 책을 챙겨갔다.
밖에서 읽었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책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의 죽음이 주는 의미였다.
방대한 서사가 흐르는 이 소설에서 누군가 태어나 혼인하고 사고로 죽고, 늙어서 죽는 따위의 이야기는 쟈연스러운 일상 다반사였다. 하지만 냐 역시 언제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를 수 있다고 느꼈던 순간, 그들의 죽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생애와 수많은 죽음들. 어떤 인생을 살았든 결국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 하지만 죽는다고 해서 그들의 삶의 의미까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참 공평하다는 생각. 이런 상념들이 내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했다.
더욱이 갑자기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그 많은 인물들과 달리, 나에겐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차고 넘칠 테니 말이다.
몇 달 동안 동고동락하며 내 옆에 살아 숨쉬던 인물들은 이제 조금씩 회복중인 나에게 아직도 생생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어떤 상황에서건 자신의 삶을 놓지 않고 오롯이 지켜 낸 그들의 생애 하나 하나가 나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