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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Feb 16. 2024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소소한 기쁨

난 지금 시계를 노려보고 있다. 조금 있으면 피아노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우리 집 아이가 아니다. 옆동에 사는 아이다.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생각한 시간보다 조금 빨리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돌아오는 길에 주려고 작은 사탕도 몇개 챙겼다.


작년까지 나는, 1학년인 우리 집 2호의 등하교는 물론, 학원 셔틀, 놀이터 죽순이 엄마를 거치는 중, 입원과 함께 그 타이틀을 무겁게 내려놓았다. 마음에 한가득 걱정과 미안함을 안고서...

하지만 아이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을 거라 믿었던 들이 마음 약한 엄마의 기우였음이 금방 들통났다.


어쩔수없이 육아휴직에 돌입한 남편은 아이 혼자 학원과 놀이터를 오가게 했고 스스로 목욕하는 법도 가르쳤다. 병상에 누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는 마음이 아팠다. 가끔은 아직 어린 아이를 혼자 놀이터에 보내는 남편의 직무유기(?)에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잘 해냈다. 가끔 머리칼에 미처 헹구지 못한 비누가 눌어붙어 미끌거렸고, 다른 친구 엄마는 있는데 우리 엄마는 없는 놀이터에서 기죽지 않고 잘 지내는 법도 터득하면서...


내가 얼마나 아이들을 그리워하는지 알기에 남편은 매일 아침 아이들 사진을 보내 주었다. 주로 부스스한 얼굴로 눈곱도 떼지 못한 채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는 모습, 등굣길 현관 앞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원에서 그렇게 아이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반가움에 한번 웃고 그리움에 한번 울컥하고 또 근본 없이 묶은 아이 머리와 옷차림참을 수 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남편이 참 창의적인 인간이라는 걸 아이 머리를 보고 알았다. 창의적이지만 묶인 건지 아닌건지 헷갈릴 지경인 아이 머리는 하교 후 놀이터에서 한바탕 뛰어놀고 나면 대책 없는 산발로 변해 있었다.


하교 후 사진은 보통 두어 명의 동네 엄마들이 보내주었다. 아무리 산발이어도 친구와 뛰노는 아이의 얼굴은 참 밝게 빛났다. 망아지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어느 날은 놀이터 어귀에서 나뭇잎들을 주워 모으는 고사리 손도 찍혔다. 그리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오리고 다듬어 날개나 뿔이 달린 나뭇잎 요정을 만들었다. 가끔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야무지게 간식을 먹었다. 나는 그들이 보내주는 사진과 영상에서 뿜어져나오는 아이의 생기와 온기를 느끼며 마음의 허기를 채웠다.


그 고마운 몇몇 엄마들 덕에 아이의 일상을 두눈으로 체감하며 세상이 아무리 험하다고들 해도 아직은 참 살 만한 곳이라는 따뜻한 생각도 품었다. 하지만 입원이 길어지고 신세 질 일이 많아질수록 고마움과 함께 마음의 부담도 커져갔다. 그래서 소소한 먹거리를 보내거나 기프티콘으로 마음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늘 부족함을 느꼈다. 내 아이 챙기기도 바쁜데 남의 아이까지 거둬 돌본다는 얼마나 큰 마음을 내어주는 일임을 알기에..


그러다 오늘 드디어 나도 도울 일이 생긴 것이다. 아직 회복 중에 있는 나에게 부탁하는 게 망설여졌지만, 달리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고 한다. 맞벌이를 하는 그 동생에게 아무리 학원 셔틀을 돌려도 엄마찬스를 쓰려 해도 맞춰지지 않는 시간이 있는데 그게 오늘이었던 것이다.


난 기꺼이 오케이를 했고, 정성껏 저녁상을 차려 아이들을 먹여주었다. 내 면역력 때문에 집에 친구를 초대하는 것도 나중으로 미뤄두었는데, 갑자기 친구가 놀러 오니 우리 아이도 즐거워했다. 둘은 거실을 놀이방처럼 만들어 놓고 깔깔대며 잘도 놀았다. 별 것 아니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생겨서 기뻤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행복했다.


예전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일상적인 일들이 지금 나에게는 또 하나의 세상을 여는 문 같다.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고 혼자 나가는 일을 시작으로 지하철을 타는 일,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밥먹고 차를 마시는 일, 우리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일..게다가 이제 내게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저녁마다 쌓인 설거지를 보며 엄두를 못내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뜸을 들이던 엄마가 오늘은 유난히 가벼운 손놀림으로 춤추듯 헤치우는 모습을 보인 이유가 뭔지 우리 아이들은 알까?

그릏다. 엄마도 이제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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