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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Feb 26. 2024

밀도있는 삶을 꿈꾼다

나의 모닝페이지

요즘 내 머릿속엔 밀도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닌다. 뽑아도 뽑아도 어느새 그자리에 다시 돋아나는 새치처럼,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어디선가 자꾸 삐져나온다. 내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이유다. 그냥 살던 대로 살면 안 된다는 생각, 내 하루를 좀 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것들로 채워야 한다는 욕심. 그래서 조급해지는 느낌에 잠을 설친 적도 많다. 회복에 집중해야 할 때 이게 무슨 짓인지 혀를 끌끌 찼다.


삶이 유한하다는 건 진리지만, 일상 속에서 그 사실을 실감하기란 쉽지 않았다. 가끔 책이나 주변 사람을 통해 자극받는 날은 하루 이틀 반짝하긴 했어도 금방 다시 별다를 것 없는 일상으로 녹아들었다. 생각과 계획은 많으나 행동은 굼뜬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을 가늠해 본 적도 없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냥 그냥 살았다. 그런 내가 이제 와 삶의 밀도에 대해 생각하는 건, 삶이 유한하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밀도 있는 삶이란 어떤 걸까?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다.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뒤를 돌아봤을 때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 하루가 흡족하며 가끔은 벅찬 마음이 솟아오르며 충만해지는 걸 말하는 것 같다.


그 충만한 마음은 여러 요소요소에 의해 생기지만, 대개는 평온한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이를 충실히 소화하는 가운데,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잊지 않고 해냈을 때 주로 일어난다. 가령 오늘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상념들을 붙들어 매 하나의 글로 완성했다던가, 별 기대 없이 펼친 책이나 영화에서 꽁꽁 숨겨져 있던 인생의 감동과 지혜랄 만한 것을 발견했을 때, 혹은 맞벌이하는 이웃의 아이를 대신 픽업해 주고 “아 나도 이제 도움만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구나”라고 느낄 때. 이런 때 나는 내가 어제의 나보다는 조금이라도 성장한 것 같다는 생각에 기쁘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써 내려가는 글을 통해 드러난다. 바로 ‘모닝페이지’다.


밀도에 대해 생각하던 차, 어떤 작가님의 글에서 본 ‘모닝페이지’ 내게 안성맞춤 처방전같이 느껴졌다. 일기처럼 쓰기만 하면 되니 부담도 없었다. 그래서 그날 바로 모닝페이지를 시작했다. 물론 빼먹은 날고 있고, ‘애프터눈 페이지된 적도 있지만, 나의 무의식을 풀어헤쳐 놓음으로써 마음이 편해지고 내 일상이 좀더 단단해지는 경험을 했다.


지금 내 기분과 상태가 어떻고 아이들 아침은 뭘 해 줄 것이며, 오늘 해야 할 일이 뭐라는 걸 다시 한번 정리하며 좀 더 쫀득한 하루를 만들 채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의지가 약하고 머리도 좋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강제하듯 활자로 박아 놓지 않으면 그게 무엇이든 어느새 녹듯 사라져 버린다. 모닝페이지는 내게 하나의 명약이었다.


오늘 내 모닝페이지를 요약해 보면 대강 이렇다.


“간밤엔 온몸이 간지럽고 식은땀이 나 몇 번이나 깨서 옷을 갈아입고 수선을 떨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간지럼도 참을 만하고 노트북을 켜 모닝페이지를 쓸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밖에는 귀여운 딸아이 둘이 아직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으며 조금 있으면 잠에서 깬 막내가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와 엄마 품에 쏙 들어와 안길 거라는 예감에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밖은 아직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어두컴컴 하지만, 남편은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해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아무 일 없이 무탈한 일상이 흘러가기에, 나는 오늘도 한량처럼 오늘 하루가 훅 지나가버리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겠다거나, 밀도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둥의 한가한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삶이라 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어떤 일이 생겨서 행복하고 기쁜 게 아니라 무탈함이 곧 행복이란 뜻일 것이다. 내가 지금껏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만 살아왔다면 이 말이 소극적이고 안일한 자들의 뜬구름 잡는 발언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긴 투병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지금의 나는 절절히 공감한다. 그리고 무탈한 나의 일상 앞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특별할 건 없지만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일상, 그 속에서 발견하는 나만의 소중한 시간, 들이 내 하루를 밀도 있게 만듦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밀도 있는 하루를 만들려고 애쓰는 나의 의지가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사사로운 욕심으로 마음이 불안한 적도 많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의욕은 많으나 몸이 안 따라 줄 때도 많다. 하나하나 차근차근해 나가면 될 것을 왜 그리 조급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의 이런 욕심과 조급함이 내 병을 불러온 건 아닐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난 술담배를 즐기지도 않았고 인스턴트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운동을 꾸준히 하진 못했으나 평생 적정 몸무게를 유지했다. 다만 이런저런 욕심과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룬 적은 많다. 뭔가 하고 싶다는, 뭔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 있지 막상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자괴감을 느끼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관성처럼 또다시 이런 마음으로 잠이 달아나려 할 때 나는 깜짝 놀라 심호흡을 한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덤일 수도 있다. 바보같이 전과 같은 마음상태로 내 일상을 허비하지 말자. 그러면 내 마음은 조금씩 평온을 찾아가며 홀가분해진다.


명상과 같았던 오늘의 모닝페이지를 마무리해본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 전에 몸을 움직여야 할 때다. 오늘 아침은 멸치와 계란을 넣은 주먹밥이다. 엄마찬스로 불뚝해진 냉장고 과일 칸에서 사과와 체리도 꺼내 예쁘게 담아야겠다. 맛있게 먹을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니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나에겐 오늘이 바로 "미라클 모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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