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주혜 Aug 17. 2023

거의 모든 것의 마음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 세상이 지금의 세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하필 이 넓고 넓은 우주 중에서, 아니, 우주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다. 바다도 아닌 지금 이곳에서 대한민국에서 나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주어진 오늘은 오늘의 시간의 개념으로 인지하지만 만약 그 인지 또한 결국엔 인간이 만들어낸 생각일 뿐이라면 그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배운 역사는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그저 찰나의 순간. 인간의 생은 짧기에 그 생에 관한 찰나의 일들을 모두 기록한다 해도 우주적인 관점에서는 짧은 서사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역사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은, 동물과는 다른 사고, 욕망이란 단어로 불리는 인간 고유의 속성 때문이리라.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기록된 문장들은 이 욕망의 움직임, 그리고 그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그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대한 것이다. 특히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서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곳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고, 아주 조금에 불과했던 그 무엇이 어떻게 우리로 바뀌게 되었으며, 그 사이와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너무나도 방대하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을 감히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고 붙였다. 실제로 모든 것의 역사를 살펴볼 수는 없겠지만, 운이 따른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서문 중에서


살다 보면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 경우가 있고,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보통 후자의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전자의 기록은 생각의 회로에 깊이 각인되지 않기 때문이며 후자의 기록은 도려내고 싶어도 상처 또는 아픔으로 새겨진 탓에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좋고 나쁜 일들이 딱 5대 5의 비율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그렇게 객관적인 잣대로 그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 인간의 기억이란 결과다. 이런 이유로 기록은 중요하다. 얼마큼 좋았고 나빴는지, 그 횟수는 어떻게 되는지 조금은 객관적으로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기록이 완벽한가. 우리의 기억만큼은 아니더라도 기록이 모든 과거를 그대로 대변해주지 않는다. 과거는 사라지고 말뿐, 남기고 싶거나 때론 붙잡고 싶어 애를 쓴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과학자는 말했다. 과거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람이 이야기할 뿐이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일. 인간은 끊임없이 이렇게 미지의 세계에 남기를 원한다. 끝까지 다다르지 않아도 그 생각만으로 위안을 얻으며 말이다. 


어리석은 일이다. 잡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영역에 대해 탐구하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어리석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어리석음을 내 삶으로 언제나 끌고 와 글을 쓴다. 어리석음이 나의 글쓰기의 출발, 때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유한함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한 번 더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없을까... 이렇게 탄식하며.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절망과 용기의 간극에서 치열히 싸우며 나아간다. 나의 경우는 글쓰기라고 하지만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이 이미 짊어지고 있는 우주를 벗어나려 한다. 누군가는 신에게 기도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세상에서 조금 더 유명하고 부유해지기 위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정했던 건지 그 시작을 명확히 알지도 못한 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로 만들어진 시간을 따라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이 삶의 가치관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가치관이란 상황에 따라, 삶에서 절망의 순간을 몇 번 지나왔느냐에 따라 그 농도와 깊이, 모양이 달라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는지 조차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 채 급급한 하루를 채워간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과학적 사실과 증거에 기반해 인간이 역사라 칭한 모든 것들을 아주 짧은 구간씩 정리해 놓은 글이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이를 짧다고 말하는 것은, 과거라고 불리는 모든 시간을 책 한 권으로 담아내려는 논리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도 단 한 줄로 정리할 수 없듯. 인류의 역사를 책 한 권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저자는 이 유한함을 인정하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모든 영역에서의 역사적 관찰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이 위대하다고 여기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본다. 모든 것의 역사를 담아서가 아니라, 모든 것의 역사를 담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면서 시작한 연구. 그리고 글쓰기의 모든 과정. 그렇기에 아마도 한 사람이 담고 싶었던 이 세상의 모든 역사란, 단순한 과학적 결과를 쏟아내고자 함이 아닌,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결국엔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소위 말하는 개개인의 가치관이란 어떻게 적립됐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던 글쓴이의 의도와 노력이 보였다. 삶을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대로 보내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했던 자세. 오늘날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결국에는 한 사람의 역사가 보였다.


이 책의 중반부에 가면 '존재의 풍요로움'이란 소제목을 만난다. 이 글은 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그 생명을 둘러싸고 있는 겹겹의 역사와 생물론적 접근은 단순히 하나의 현상에 그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한 생명이 이 땅에 생명으로 존재하기까지 수많은 생명의 연결고리가 있으며, 그 연결고리 속에는 더 작은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은 이 작은 단위의 연결고리를 파헤치며 결국에 단 하나로 존재하는 생명에 대해 설명하려 하는데 그 파헤침의 결과를 놓고 본다면 결국에 모든 생명은 단 하나의 우주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대한민국만을 놓고 생각하더라도 홍수같이 쏟아지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가 닿았는가를 놓고 가치를 판단한다. 물론 공감대 형성과 좋은 문장, 탄탄한 스토리는 그 가치의 발현이 의심 없도록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소외되는 이야기가 없도록, 쓸모없다 여겨지는 생명이 없도록 말이다. 모든 상황을 알아차리고 생각하며 유명해지는 반열에 둘 수는 없겠지만, 의미 없다 여겨지는 영역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존재의 풍요로움은 존재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빌 브라이슨은 '대부분의 생물은 매우 작아서 간과하기 쉽다.'라고 표현했는데, 이 문장의 출발은 진드기의 배설물이라 할지라도 지구의 영역에 존재하는 풍요로움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아주 작은 영역으로 파고드는 생명의 존재에 대해 알아갈수록 인간이 간과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오만함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알아차리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과학적 지식을 조금씩 도모하기 위해 이 책을 펼쳤다. 그 어떤 것도 무조건 믿어라, 하는 식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았던 나는 신을 대하는 마음도, 과학을 대하는 마음도 단 한 번에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의 유무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증명되어 왔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평생을 연구하고 글을 쓴  어느 과학자의 삶이 오늘날 내 삶에도 의미 있는 도약이 되었다. 우리는 과학을  읽지만 결국엔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신을 이해하지만 그것은 또한 결국에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 된다. 모든 이들은 이 과정을 멈춰서는 안 된다. 내가 가진 오늘날의 생각은 아주 작은 영역일 뿐이며  억울하지만 우리는 이미 주어진 환경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언젠가 사라지고 없어질 그저 또 하나의 작은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이 위대하다, 대단하다고 여기는 모든 호화스러운 말들은 그저 흩어지고 사라질 역사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하프 타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