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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Sep 04. 2023

세 번째 내린 커피

이동진, 김중혁 <질문하는 책들>

발표를 앞두고 그가 떨고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청중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온다. 사실 그런 구체적인 생각도 못하고 있다. 내 입술에서 나간 그 말들이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면 나는 그때부터 어떻게, 어디로 갈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혹시나 조금 더 떨리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오늘의 발표를 정말 망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발표가 시작됐다. 청중들은 발표자가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점검한다. 입을 한 번 크게 벌렸다가 다문다. 입술이 부르르 떨리도록 날숨을 크게 쉰다. 드디어 단 위에 섰다. 그는 떨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먼 곳을 바라본다. 청중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준비해 온 말들이 다 생각나지 않지만 처음에 어떤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한다. 발표를 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그 문장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기에 그 반복의 힘을 다시 한번 믿어본다.


그는 인사를 하고 그 첫 문장을 이어서 말한다. 성공이다. 이제는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청중을 바라보기로 했다. 시선처리도 중요하니까, 여유롭게 보이고 싶으니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들을 노력해 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고 올라올걸,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청중이었던 그녀는 그의 발표를 응원하고 있었고,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낯선 얼굴과 표정에 흔들린다. 다시 어떤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시선을 외면한다. 준비했던 원고를 살핀다. 혹시 몰라 밑줄을 쳐 두었던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흐름을 찾아간다. 그는 천천히 발표를 이어간다. 자신이 준비했던 이야기를, 그리고 청중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떨리는 순간이란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음과 동시에 언제나 꿈꿔왔던 순간이기도 하다.


발표하는 능력을 향상해 준다는 광고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을 알려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자존감을 향상해 준다고 말한다. 말하는 기술이 좋아지면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더불어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비교적 자유하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말을 잘하는 것이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교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말이란 쌓아 올린 삶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 허풍을 입에 달고 산다면 그는 허풍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고, 누군가 진솔함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의 말들도 진솔함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 세상 밖으로 쏟아지기 전에 형성되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리라. 나는 그것이 학습으로 인한 지성도 아니고,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형성된 감성도 아닌 삶으로 뒤엉킨 무언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 무언가는 저마다의 모서리가 다르게 찍혀 있는 마음이라고 본다.


마음은 말이 된다. 신기한 것은 어느 유능한 발표자가 단 한 번의 무대 위에서 마음을 감추고 기술로 배운 화려한 말들을 쏟아낸다 해도 언젠가는 마음으로 형성된 말로 인해 그의 진짜 말들을 청중들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 간의 대화에서도 마음보다 말이 앞서는 상황에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결국에 그 대화를 지속하게 하는 요인은 마음인 것이다. 우리에게 마음이 말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떨리는 마음을 조금 더 잘 다스리기 위하여 술을 먹거나, 또는 카페인을 먹지 않거나 하는 행위로 잠시 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겠지만 말은 마음이 준비한 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준비한 말은 다시 담을 수 없으며 언젠가 한 사람의 입술에서 세상으로 내 던져진 말은 또다시 그 말을 했던 한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에 서게 한다. 말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확인하게 하고 마음은 말로 인해 세상 앞에 평가받는다. 우리의 말들은 그래서 복잡하다. 마음을 말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다.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그들은 자존감이 얼마나 높기에 저렇게 말할 수 있는가, 싶지만 이런 종류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를 외면하거나 쿨한 척 하지만 내내 괴로워한다. 내가 괴로웠다는 사실을 되도록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 노력은 헛수고가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에 상대방이 듣고 느끼는 것은 말이 아닌 마음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자연스럽게 들키게 된다. 이로써 나의 결론은 다른 사람의 평가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듣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 평가로 인해 내 마음이 좌지우지될 수 있으니 조심해 달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는다.


물론 예술을 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고집을 밀고 나아가야 하는 약간의 오만함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것은 단순 교만, 오만으로 치부되는 마음과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진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별개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곧 내가 그동안 삶으로 갈고닦아 형성된 마음이 뚜렷한 사람이다. 그 마음은 '다른 사람의 평가'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바로 평가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말을 잘하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많다. 남녀노소 그렇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 욕망에 대하여 연습과 기술을 연마하려 한다면 그전에 반드시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무엇을 들여놓을지 고민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과정에서 어떤 지식이 필요한지, 어떤 감수성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직 나의 마음을 위해서, 마음으로 뻗어나갈 말을 위해서 쌓아 올려야 할 노력들이다.


한 번은 커피를 주문하는데 그 한 잔을 만드는 동안 세 번의 추출을 망설이지 않았던 바리스타를 만난 적이 있다. 이미 뽑을 샷을 그냥 버리는 바리스타를 보며 나는 말했다. '추출한 커피가 너무 아까운데 왜 버리세요.' 나의 질문에 바리스타는 친절하게 말했다. '제가 원하는 속도로 추출이 잘 안 됐는데, 가장 맛있게 해드리고 싶어서요. 금방 다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곳은 언제나 어느 때나 커피가 맛있다. 결과는 '맛있다.'로  같지만 과정은 같지 않을 때도 있다. 단 한 번의 추출로 완벽한 커피가 완성될 때도 있고. 어느 날 아침에는 조금 느리게 추출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속도는 빠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커피가 손님에게로 오는 속도가 느리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바리스타의 표정이 조금 더 진지하다. 어찌 됐건 한 잔의 커피를 위해 바리스타는 바리스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다. 커피 한 잔을 내놓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의 생각과 정성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말을 마음의 그릇에 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다시 채우고 비우고 또다시 채우고 실패한 것을 진지한 태도로 버려버리고 새롭게 다시 채우고를 반복하는 일이다. 맛있는 한 잔의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유능해 보이는 말은 누구나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진실된 마음으로 꽉 찬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기도 하는데, 그것은 반드시 마음이란 그릇을 자신만의 색과 맛으로 채워 넣은 누군가의 말일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유능한 지식인의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의 마음에 대하여 아주 조금이라도 부러워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며 조금이라도 그 유능함을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라. 또 한편으론 타인의 그 유능함을 바라보는 일에 대해 그저 지나가는 유희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쪽이냐.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데, 밝히고 싶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이쯤이면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한다.




위의 글, '세 번째 내린 커피'는

이동진, 김중혁 <질문하는 책들>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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