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에게 배우는 청소년의 회복탄력성

실패를 대하는 유연함, 주변의 지지를 흡수하는 능력, 인생을 즐기는 자

by coffeetrip

(아래의 글은 본 필자가 국가브랜드진흥원 산하 브랜드뉴스의 필진 기자로서 2026년 3월 22일에 게재한 칼럼을 발췌하였습니다.)

https://www.ibrand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802




[임준 박사의 청소년 칼럼] 영화 '왕사남'의 장항준 감독에게 배우는 청소년의 회복탄력성


입시와 경쟁에 짓눌린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장항준 감독의 '안 되면 말고' 식 낙천주의는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실패를 데이터로 보는 귀인 양식·도움을 자원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자본·즐거움에서 출발하는 몰입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기제로 이루어진 회복탄력성의 실천이다.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png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출처: https://cgv.co.kr/


최근 대한민국 영화계는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400만(3.20기준) 관객을 돌파하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비단 영화의 완성도 때문만은 아니다. 소위 '신이 내린 꿀팔자', '윤종신이 임보(임시보호)하고 김은희가 입양한 남자'라 불리는 장항준 특유의 사고방식, 이른바 '장항준식 낙천주의'가 이 시대의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학을 전공하고 3차 산업의 현장을 거쳐, 이제는 아동청소년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를 연구하는 필자의 눈에 그의 낙천성은 단순한 유머가 아닌, 고도의 심리적 기제이자 교육적 대안으로 읽힌다. 스크린 밖에서 더욱 빛나는 그의 태도는, 사실 현대 심리학이 말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교과서적 사례다.


1. 실패를 대하는 공학적 유연함: "에러가 나면 디버깅을 하면 된다"


공학에서 시스템에 에러가 발생하면 우리는 그것을 '실패'라 부르지 않고 '데이터'라 부른다. 어떤 조건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는 순간, 그 에러는 이미 시스템을 개선하는 자원이 된다. 장항준 감독의 사고방식도 이와 정확히 닮아 있다. 그는 결과가 나쁘면 "운이 없었네", "안 되면 말고"라며 훌쩍 털어버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 양식(Attributional Style)'의 차이로 설명한다.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의 연구에 따르면, 실패를 영구적이고 전반적인 자신의 결함으로 귀인하는 사람은 무기력에 빠지기 쉬운 반면, 실패를 일시적이고 상황적인 요인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더 빠르게 회복하고 다음 시도에 나선다. 장항준 감독의 "안 되면 말고"는 바로 이 건강한 귀인 방식의 생생한 언어적 표현인 것이다.


입시 지옥과 무한 경쟁에 매몰된 우리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한 번의 시험 실패, 한 번의 발표 망침이 자신의 전체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이들. 완벽주의라는 감옥에 갇혀 시도조차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실패해도 네 존재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는 것, 그것이 장항준식 사고가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실제로 필자가 만나는 청소년 상담 현장에서도 이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원래 못해"라고 말하는 아이와 "이번엔 좀 어려웠네"라고 말하는 아이의 이후 행동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포기를 선택하고, 후자는 다음 기회를 준비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결과를 해석하는 언어다.


2. 사회적 자본을 즐겁게 수용하는 '건강한 의존'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다문화 청소년의 부모지지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결정적인 영향을 분석한 바 있다. 연구 결과는 명확했다. 부모와 주변으로부터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인식하는 청소년일수록 자아존중감이 높고, 삶의 만족도 점수 역시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도움을 받는 것 자체가 긍정적 자원이라는 뜻이다.


장항준 감독은 아내 김은희 작가나 친구 윤종신의 성공에 기꺼이 무임승차하겠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주변의 지지를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능력이 탁월함을 보여준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그의 저서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라고 말한 바 있다. 타인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능력, 이것은 자존감의 결핍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활용할 줄 아는 성숙한 자아의 표현이다.


장항준 감독과 배우들.png 장항준 감독과 전미도, 유해진 배우. 출처: https://cgv.co.kr/


청소년기, 특히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나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청소년들은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움이나 열등감으로 치환하곤 한다. "내가 왜 도움을 받아야 해", "남한테 신세 지기 싫어"라는 말 뒤에는 종종 깊은 상처와 낮은 자존감이 숨어 있다. 그러나 장항준처럼 "나를 돕는 이들이 많으니 나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관계를 자원으로 바라보는 건강한 시각이다.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조건임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혼자가 아님을 배운다.


3.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즐기는 자의 무서운 뒷심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장항준 감독은 그 개념의 살아있는 구현체다. 그에게 영화는 숙제가 아니라 유희다. "인생은 어차피 한 번 노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철학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지닌다. 그리고 1,400만이라는 압도적인 결과는 역설적으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았을 때 찾아왔다.


장항준 감독의 필모그래피.png 장항준 감독의 필모그래피. 출처: https://cgv.co.kr/


긍정심리학에서는 이를 '몰입(Flow)' 개념으로 설명한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인간이 외적 보상이 아닌 활동 자체의 즐거움에 집중할 때 가장 높은 수준의 창의성과 수행 능력을 발휘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에 대한 불안이 사라질 때, 비로소 온전한 몰입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은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노력'만을 강요해왔다. 하지만 노력은 방향이 있을 때 의미를 가진다. 진정한 창의성과 지속 가능한 성취는 '즐거움'이라는 연료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할 때, "이게 나중에 돈이 될까?"를 먼저 묻기보다 "이게 나를 가슴 뛰게 하는가?"를 먼저 묻게 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은 아이는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파고든다. 그 깊이가 결국 경쟁력이 된다.


마치며: 우리 아이들에게 '장항준의 안경'을


장항준식 사고방식은 결코 게으름을 권장하거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몰아세우지 않는 '자기 자비(Self-Compassion)'이며, 결과보다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심리적 여유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는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일수록 실패 후 더 빠르게 회복하고, 오히려 더 높은 동기와 회복탄력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필자는, 이 유쾌한 낙천성이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될 수 있는 역량임을 매일 현장에서 확인한다. 실패를 데이터로 재해석하는 언어 습관, 도움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관계 감수성, 결과보다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태도. 이 세 가지가 모여 아이 안에 단단한 회복탄력성의 뿌리를 내린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느라 신음하는 청소년들에게 오늘도 전하고 싶다.


"실패해도 괜찮아. 주변의 도움을 기쁘게 받아들여. 그리고 무엇보다 너만을 가슴 뛰게 하는 재미를 찾아봐. 그러면 장항준 감독처럼, 예상치 못한 '대박'이 너의 삶에도 반드시 찾아올 테니까."


프로필 스케치_임준 박사.png

[필자 소개] 임준 박사(아동청소년교육) / IAM교육연구소 대표

다문화청소년이 지각한 부모지지와 이중문화수용태도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공학 엔지니어로서의 사고와 교육학적 이해를 융합한 미래 인재 양성 전문가이자 연구교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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