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없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오세진 작가의 『흠흠신서』가 청소년에게 건네는 법과 인권의 질문

by coffeetrip

아래의 글은 인터넷 신문 맘스커리어(https://momscareer.co.kr/)에 게재된 본 필자의 2026년 3월 24일자 칼럼을 발췌, 일부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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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흠흠신서』에 새긴 "삼가고 또 삼가라"는 정신은, 검찰 개혁으로 사법 정의를 다시 묻는 오늘의 한국 사회와 우리 아이들의 교실 모두에 여전히 유효한 나침반이다.
다산정약용 포럼 포스트(www.nyj.go.kr).png 다산 정약용. 출처: 남양주시 홈페이지(www.nyj.go.kr)


“검찰청이 사라진다 ― 우리는 지금 어떤 사법을 원하는가”


2026년, 대한민국의 사법 지형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78년 역사의 검찰청이 올해 10월 공식 폐지되고, 그 자리를 수사 기능을 맡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기소·공소 유지를 전담하는 '공소청'이 나눠 맡게 된다. 수사와 기소를 한 기관이 독점해온 구조가 처음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이른바 '수사-기소 분리'를 핵심으로 한 검찰 개혁이다.

찬반 논란은 뜨겁다. 지지하는 쪽에서는 수십 년간 누적된 검찰 권한 남용과 정치적 편향 수사의 고리를 끊어낼 기회라고 말한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이름만 바뀐 '제2의 검찰'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당 내에서도 법조인 출신 의원들 사이에서 이견이 터져 나오고, 설계안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핵심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이 개혁이 진짜로 '억울한 사람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는가. 수사 권한을 누가 쥐느냐보다 그 권한이 어떤 태도로 행사되느냐가 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200여 년 전에 이미 깊이 고민한 사람이 있다. 조선 후기의 사상가이자 개혁가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다. 그리고 오늘, 작가 오세진이 현대어로 되살려낸 그의 책 『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는 이 오래된 질문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흠흠(欽欽)'이 묻는 것: 조심스러움이란 무엇인가


『흠흠신서(欽欽新書)』라는 제목에서 '흠흠(欽欽)'은 "삼가고 또 삼가라"는 뜻이다. 정약용은 재판을 담당하는 관리들에게 가장 먼저 이 태도를 요구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판단 앞에서 스스로를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법의 중심에 '처벌'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정약용이 가장 강조한 원칙은 '억울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범인을 반드시 잡는 것보다, 죄 없는 사람이 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흠흠신서』에는 이런 생각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벌하지 말고, 확실할 때조차 다시 살펴보라.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매우 닮아 있다.

이처럼 이 책은 단순히 "어떻게 하면 범죄자를 잘 처벌할까"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를 먼저 고민한다. 그 고민의 출발점은 언제나 사람이다.


고문과 자백, 그리고 오늘날의 수사 문화


정약용은 고문과 강압적 수사의 위험성을 강하게 경고했다. 고통 속에서 얻은 자백은 진실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흠흠신서』에는 실제로 억울하게 자백을 강요당한 이들의 사례가 여럿 등장한다. 정약용은 이를 기록하고 분석하면서, 제도의 허점과 집행자의 오만이 어떻게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지를 치밀하게 짚어냈다.

이것이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성급한 판단, 여론에 떠밀린 수사, 결과를 먼저 정해놓은 조사 방식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온라인에서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누군가를 순식간에 '범죄자'로 낙인찍는 현상, SNS상의 집단적 비난이 판결보다 먼저 이루어지는 현실은 정약용이 우려했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수사-기소 분리라는 제도 개혁도 결국 이 문화적 문제를 함께 고치지 않으면 반쪽짜리 변화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정약용은 일찌감치 물었다. 진실을 밝힌다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도서_흠흠신서-법은 누구의 편인가.jpg 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 편역 오세진. 출처:교보문고(product.kyobobook.co.kr)


오세진 작가는 『흠흠신서』를 현대어로 옮기며 이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고전 번역의 의미는 단순히 오래된 텍스트를 읽기 쉽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그 시대의 고민이 이 시대의 고민과 얼마나 깊게 맞닿아 있는지를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청소년과 법: 학교라는 작은 법치 공간


이 질문은 청소년에게도 결코 멀지 않다. 학교 규칙, 생활지도, 징계 제도 역시 작은 '법'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규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설명 없이 처벌이 이루어질 때, 그 경험은 청소년에게 법은 무섭고 불공정한 것이라는 인식을 남긴다. 억울하게 지목되어도 항변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다수의 주장에 밀려 사실 확인 없이 처벌이 내려지는 일은 여전히 학교 안에서 일어난다.

이런 장면에서 『흠흠신서』는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 규칙을 적용하는 어른의 태도는 과연 흠흠한가, 즉 충분히 조심스럽고 책임 있는가. 아이 한 명에게 내려지는 작은 결정 하나가 그 아이의 자존감, 공동체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청소년 시기에 경험하는 '소규모 법 집행'의 방식은 훗날 그 아이가 시민으로서 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처벌이 먼저이고 이해는 나중인 방식으로 규칙을 경험한 아이는, 법 앞에서 주체가 되기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끼는 어른이 되기 쉽다.


법보다 사람, 제도보다 태도


정약용은 법의 완벽함보다 사람의 자세를 더 중요하게 보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이 생명을 가볍게 여기면, 법은 쉽게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재판관에게 분노하지 말 것, 조급해하지 말 것,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 법조인뿐 아니라, 교사, 지도자, 그리고 미래의 시민이 될 청소년 모두에게 필요한 윤리이기도 하다. 자신이 확신하는 순간일수록 한 번 더 멈추고, 상대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정약용이 말하는 '흠흠'의 자세이며, 법치주의의 진짜 정신이다.

또한 정약용은 관리가 결론을 미리 정하고 수사를 끼워 맞추는 행태를 극도로 경계했다. 그는 수사관이 스스로 세운 가설에 사로잡혀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것을 '눈먼 수사'라고 표현하며, 이것이야말로 억울함의 뿌리라고 했다. 이 경고는 오늘날 수사 기관뿐 아니라, 학교에서 사건을 다루는 교사와 관리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오늘 우리 사회는 법과 제도가 과거보다 훨씬 정교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법 앞에서 더 취약해지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청소년, 이주배경 가정의 아이들, 사회적 약자는 종종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법의 언어가 낯설수록, 권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수록 그 사람은 더 쉽게 억울한 상황에 처한다.

『흠흠신서』는 이 현실을 향해 묻는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강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인가, 아니면 약자의 억울함을 막기 위한 안전망인가. 정약용은 후자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이 재판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담당 관리가 직접 사건 현장을 방문하고 증거를 살피며 여러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자세는 오늘날 우리가 청소년 인권 교육에서 강조하는 것과 맥이 닿는다. 규칙과 제도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규칙이 왜 필요한지, 누군가에게 불공정하게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함께 묻는 교육. 검찰 개혁의 논의가 어른들의 정치 언어로만 소비되지 않으려면, 우리 아이들이 일상에서 '공정한 절차'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억울함을 줄이는 것이 정의다


정약용이 꿈꾼 사회는 완벽한 사회가 아니었다. 대신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실수가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지 않도록 끝까지 조심하는 사회였다. 억울함을 줄이려는 태도, 한 번 더 살피는 용기,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 이것이 『흠흠신서』가 말하는 법치의 핵심이다.

청소년에게 법을 가르친다는 것은 조문을 외우게 하는 일이 아니다. 법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 법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함께 묻는 과정이다. 오세진 작가가 현대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 물음일 것이다. 200년 전 정약용이 쓴 문장들이 오늘 우리 아이들의 교실과 삶에서 다시 울림을 가질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정의로운 사회란 강한 처벌이 많은 사회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이 적은 사회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법 조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할 것은 규칙보다 그 규칙을 대하는 자세, 즉 '흠흠'의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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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스케치_임준 박사.png 임준 박사. 출처: IAM교육연구소 제공.

[필자 소개] 임 준 박사(아동청소년교육) / IAM교육연구소 대표

「다문화청소년이 지각한 부모지지와 이중문화수용태도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연구」로 박사학위취득. 엔지니어 출신으로 공학적 사고와 교육학적 이해를 융합한 미래 인재 양성 전문가이자 연구교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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