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놀고 싶다. 그런데 방법을 모른다.
주 5일 나를 만나고 있는 8살 어린이. 이 아이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없다. 매일 엄마 아빠의 얼굴은 보지만 함께하는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아이는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부모님이 없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더더욱 중요하다. 말을 하기 시작하고, 옳고 그름이 생기는 시점에서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가장 가까이에서 알려주는 사람이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남들에게 사랑을 주는 법을 알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법 또한 알지 못한다. 이 아이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정하게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미리 숙제를 다 끝낸 아이가 나를 만나자마자 “우리 오늘 놀이터 가요!”라며 신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내가 살짝 피곤했던 날이라 놀이터에 갈 계획이 없었는데 해맑은 아이의 표정을 보니 굳이 그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집 앞 놀이터로 향했다. 6살 동생도 나가는 걸 알았는지 마스크를 씌워주자마자 현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양손에 한 명씩 손을 잡고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에서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그네를 타던 중 큰 아이와 또래 같아 보이는 아이 두 명과 그중 한 아이의 동생, 총 세명의 남자아이가 놀이터로 왔다.
사람을 좋아하는 큰 아이가 자신의 또래 같은 아이들을 보자마자 반가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그 표현이 다소 거칠었다. “야! 나랑 같이 놀 사람?”, “야! 같이 놀자!”라며 그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 말을 들은 한 아이가 “싫어.”라고 대답했다. 처음 본 아이가 다짜고짜 거칠게 말을 걸어오니 싫다고 말한 아이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그 후 큰아이는 “야! 너 몇 살이야? 난 8살이야!”, “나 저것도 올라올 수 있어!”라며 또다시 그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옆에서 지켜본 나도 살짝 황당했다. 난데없이 처음 본 사람이 자기 나이를 거들먹거리며 자랑을 하는 상황이라니... 그 아이들은 얼마나 더 황당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큰 아이에게 잠시 와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그 상황해 대해 이해를 시켰다. “처음 봤는데 네가 “야! 나랑 같이 놀 사람?”이라고 하면 친구들은 기분이 나쁠 수가 있어, 네가 가서 “얘들아, 우리 같이 놀래?”이렇게 물어봐봐, 네가 예쁘게 말하면 친구들도 너랑 같이 놀고 싶을 거야.”
처음에는 친구들이 같이 놀지 않겠다고 해서 억울한 듯한 말을 하던 아이가 차분히 설명을 해주고 나니 “네!”라고 씩씩하게 대답을 한 뒤 다시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 “우리 같이 놀까?” 라며 한층 부드러워진 말을 건넸다. 그러자 이 아이의 마음을 알아준 아이들이 “그래 좋아!”라며 함께 놀기 시작했다. 한 번 놀기 시작하니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신나게 놀기 시작한 아이들이었다.
이후에도 큰 아이의 서툰 표현과 독단적인 행동은 보였지만 재밌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흐름을 방해하고 싶진 않아서 그저 지켜만 보았다. 좋게 말하면 리더십이 있었고, 반대로 말하면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이러한 부분은 한 번에 고쳐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날 변화의 첫걸음을 보여준 아이는 앞으로도 잘 알려만 준다면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어른들이 변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흡수가 빠르다. 흔히 문제가 있는 아이라고 하는 아이들 역시 충분히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 대신 변화하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어른들이 옆에서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를 한번 제대로 가르쳐 보려 한다.